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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un 16. 2023

사랑, 네가 승리했다!

비발디의 이탈리아 칸타타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비발디 협주곡과 칸타타 (Vivald Concerti e cantate)

연주자: 리날도 알레산드리니(지휘), 사라 밍가르도(알토)

레이블: NAIVE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95~1741)의 칸타타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두 곡 <사랑, 네가 승리했다 Amor, hai vinto, hai vinto RV 683>와 <멈춰라, 이제 끝났다 Cessate, omai cessate RV 684>를 담은 음반이다. 두 곡 모두 눈먼 사랑의 실연을 노래한 칸타타인데, 칸타타라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실연을 노래하는 오페라 같은 노래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외에도 두 곡의 현악 협주곡이 음반에 실려있지만 위 칸타타 2곡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음반을 녹음한 이탈리아 출신의 지휘자 리날도 알렉산드리니(Rinaldo Alessandrini)와 그가 이끄는 콘체르토 이탈리아노(concerto italiano)는 고음악 연주에 정통한 음악가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에서 뛰어난 음반을 다수 남겼다.


비발디는 걸작 <사계>를 비롯해 수많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이 장르를 완성을 보여준 대가이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작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지만 그의 성악 작품에 대한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비발디의 오페라 그리고 칸타타는 성악곡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이탈리아의 음악계를 반영하고 있다. 18세기 초 베니스에는 8개의 오페라 극장이 있었고 유럽에서 가장 많은 오페라 극장을 가진 도시가 베니스였다. 그만큼 오페라가 성행했고 상업적으로도 장사가 되는 음악이었다. 모든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통해 자기의 명성을 알리려 노력을 경주했으며 동시에 파리넬리, 세네시노, 파우스티나와 같은 수퍼스타 성악가들이 베니스에서 활동하며 흥행을 주도했다. 명실상부 베니스는 유럽 촤고의 오페라 무대였다. 비발디는 90여 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현재 전해지는 작품은 50여 편 정도다. 그나마 20세기 중반까지 거의 잊혔다가 1970년대 고음악 부흥 운동 그리고 최근의 바로크 음악 유행을 타고 다시 무대에 활발히 올려지고 있다. 비발디는 오페라 소재를 <파르나체 Farnace>(1727), <광란의 오를란도 Orlando Furioso>(1727)처럼 고대/중세의 영웅적 이야기에서 취했고 <그리젤다 Griselda>(1735)처럼 왕이 목동 처녀와 결혼하는 류의 로맨스 전원문학의 영향도 나타난다. 이것은 세속적인 칸타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발디 오페라 <광란의 오를란도>의 한 장면


비발디의 세속 칸타타는 오페라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그 노래하는 방식이 오페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짧고 강렬한 오페라 독백극으로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레치타티보(대사)-아리아-레치타티보(대사)-아리아로 이어지는 15분 남짓한 짧은 악극에서 사랑의 탄식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어 압축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보통 우리는 칸타타라고 하면 J.S 바흐가 남긴 교회 칸타타를 주로 떠올리는데 사실 칸타타는 17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세속적인 노래로 처음 시작된 장르이고 교회가 아닌 귀족의 저택에서 고상한 즐거움을 위해 연주된 노래였다. 시작 부분의 레치타티보 대사를 통해 자신이 처한 비극의 배경을 설명하고 이어 아리아에 들어서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 양식이었다. 교회 칸타타는 주로 독일에서 금욕적 프로테스탄트의 미덕을 반영해 경건한 종교적 이벤트로 발전해 나갔지만, 이탈리아의 세속 칸타타는 18세기에 유행했던 연극 소재인 아르카디아 문화, 이상화된 사랑, 목가문학의 영향 속에서 세속적 이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칸타타 <사랑, 네가 승리했다>와 <멈춰라, 이제 끝났다>는 오페라적인 효과가 뛰어나 바로크 성악의 화려한 기교가 눈부신 곡이다. 또 가수의 연기력이 얼마나 극적인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그래서 가수의 문학적 감수성과 해석 또한 매우 중요하다. 표정, 제스처, 목소리 모두가 실패한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알토 성부로 작곡되었지만 소프라노, 카운터테너도 자주 부르는 곡인데 이 음반에서는 이탈리아의 알토 사라 밍가르도(Sara Mingardo)가 불렀다. 알토의 풍성하고 낮은 음역이 실연의 드라마를 중후하게 꽉 채운다. 또한 두 곡 모두 18세기에 유행한 목가 문학의 영향을 받아 님프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양치기의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소재는 이탈리아의 지오반니 과리니의 전원소설 <충실한 목동 Il Pastor Fido>(1590)이 전 유럽에 유행한 이후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는데 프랑스의 오노레 뒤르페의 <아스트레 Astree>(1607), 영국에서도 월터 롤리의 <양치기에 대한 님프의 대답 The Nymph's Reply to the Shepherd(1600)>과 같이 실연한 목동의 이야기를 다룬 유사한 이야기가 유행했다.


      카라바지오, <사랑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1601                                 

목동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읽을거리는 그 당시 고단한 삶의 위안거리였고 시골은 아르카디아와 같은 도피처였다. 이런 이야기는 사회적으로도 크게 유행해 비슷한 류의 작자 미상의 노래들이 시중에 유통되기도 했다. 비발디의 세속 칸타타가 주로 저택에서 연주된 사실만 보더라도 이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원하던 사랑과 이상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1690년 '아르카디아 아카데미'라는 문예원이 세워져 예술 전반에 걸쳐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통에 바탕을 둔 목가적 문예운동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는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문학대본에 기초한 오페라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바로크 성악곡의 대다수는 고대의 소재에 더해 목가 문학의 텍스트를 취했으니 비발디의 칸타타는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아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사랑, 네가 이겼다>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 네가 이겼다 Amor hai vinto


사랑 네가 이겼다. 이겼다. 여기 내 가슴이 너의 화살에 찔렸으니 누가 고통에 버림받은 내 영혼을 지탱할까? 핏줄에 차가운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오직 근심과 고통만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 새로운 충격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잔인한 클로리스,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가혹하고 엄격하게 대할 건가?


나는 파도에 부딪히는 배처럼 고통에서 고통으로 넘어간다. 하늘엔 천둥이 번쩍이고 바다는 온통 폭풍우다. 항구는 보이지도 않고 배를 댈 곳도 모른다.


내 마음은 낯설고 어지러운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는가? 진정하고 화를 내고 그런 감정이 멈추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돌로, 먼지로 변하고 싶다. 오 신이시여! 나의 믿을 수 없는 간사한 마음은 도대체 무엇을 원망하는 건가요? 무엇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건가요?


내 사랑하는 보물이 눈을 내게 돌리고 다시 숨을 쉬어 본다. 더 이상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움과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영혼은 고요한 바다처럼 평안해진다.



<사랑, 네가 이겼다>에서 실연의 주인공은 원망의 대사를 쏟아내다가도 결국 "영혼은 고요한 바다처럼 평안해진다"며 희망으로 노래를 끝낸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바다의 폭풍에 휩쓸리던 사랑의 격정이 운명과 화해하고 순종하며 사라진 셈이다. 이런 류의 감정은 18세기 문학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던 비극적 감정이었는데 예술사가 아널드 하우저는 이를 '비극적 생활감정'이라고 불렀다. 17세기의 웅장하고 파멸적으로 이상화된 고전 비극과는 다른 일상적인 느낌이 묻어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사랑을 바다, 항해, 폭풍으로 비유하는 방식은 그 당시 문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학적 비유였는데 네덜란드의 문인 얀 크룰(Jan Harmensz Krul, 1601–1646)이 남긴 아래의 엠블렘을 보면 사랑의 큐피드가 배에 타고 있고 그림 맨 위에 "당신이 멀리 있더라도 내 마음 속에선 멀리 있지 않다 AL ZYT GHY VERT, NOYT UYT HET HART"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아마도 무역이 활발하던 시기 위험한 바닷길을 나서는 연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엔블렘이리라.  


얀 크룰 <사랑의 이미지> 1640


이는 해상무역으로 돈을 벌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상황과도 맞물려 만들어진 '항해와 사랑'의 엠블렘이지만 마찬가지로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니스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은유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비발디 역시 협주곡 <바다의 폭풍 La Tempesta di Mare> 등 폭풍을 주제로 여러 편의 곡을 남겼으며 폭풍의 박력 넘치는 묘사는 그의 주특기이기도 했다. 특히 비발디 오페라 <그리셀다> 중 아리아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gitata da due venti'에서 콜로라투라 기교로 날려버리는 회오리바람의 묘사는 탁월한 경지에 이른 비발디의 격정적 스타일을 보여준다. 폭풍과 바람은 비단 자연현상에 대한 묘사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 격렬한 사랑에 대한 은유로 작동했다. 한편 <사랑, 네가 이겼다>는 체념과 평화로 끝을 맺지만 그다음 곡 <멈춰라, 이제 끝났다 RV 684>는 실연의 주인공이 하데스의 저승으로 내려가 복수심에 불타는 맹세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멈춰라, 이제 끝났다 Cessate, omai cessate 


멈춰라, 이제 끝났다. 잔인한 기억, 폭군적인 사랑! 당신은 야만적이고 무자비하게 내 행복을 끝없는 고뇌로 바꾸어 버렸지. 그만두어라. 오 이제 끝났어. 내 가슴을 찢고, 내 영혼을 찢고, 내 마음의 휴식과 평화를 앗아갔다! 괴롭고 버림받은 내 불쌍한 마음처럼 네 평화도 잔인하게 빼았을거야. 오직 잔인하게 인정사정없이 믿음없는 마음을 품고서.


배은망덕한 도릴라는 왜 내 슬픔 외엔 원치 않을까? 왜 끊임없이 가련한 눈물을 흐르게 만드나. 고통의 치료법이 없어. 없다. 없어. 희망도 없고 야만적인 순교와 고통의 죽음만이 나를 위로한다.


그래 도릴라야, 피신하노니 음침한 동굴이여, 고요한 어둠, 고독한 후퇴, 그리고 환영의 그림자. 나는 네 잔인한 마음 속에 어떠한 동정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슬픔을 가지게 되었다. 가노라, 사랑하는 동굴이여, 내가 간다, 환영의 소굴, 지상에서 진 짐으로 내 고통을 네게 묻을 것이다.  


여기 공포스러운 곳에서 고통의 쉼터를 발견했고 내 슬픔을 풀어 놓으련다. 무정한 사랑을 탓하며 소리 높여 울 것이다. 신의없는 도릴라. 여기서 나는 죽는다. 지옥의 강의 어두욱 둑을 통과해 그 물줄기를 순결한 피로 물들일 것이다. 그늘 속을 배회하며.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여기서 도릴라는 비발디의 오페라 <템페의 도릴라 Dorill in Tempe>(1726)에 등장하는 양치기와 사랑에 빠진 도릴라 공주일까? 비발디가 쓴 텍스트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소스는 확인되지 않았다. 여하튼 주인공인 목동은 저승의 "음침한 동굴"로 내려가 "내 고통을 네게 묻을 것이다"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이라며 비정한 연인에 대해 섬뜩한 복수심을 드러낸다. 이 칸타타 중 아리아 '왜 나의 슬픔 이외에는 원치 않나요 Ah, ch'infelice sempre'(위 시의 2연)는 비발디 칸타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 중 하나이다. 주인공이 복수심에 몸을 떠는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으로 그려내는데, 흥미로운 점은 시작 부분의 현악기 연주가 떨어지는 눈물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을 손으로 튕기는 피치카토 주법의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눈물을 묘사하며 이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애통함을 표현한다.


자, 이제 도입부의 신세 한탄이 끝났으니 애인을 향한 차디 찬 결의를 보여줄 차례이다. 높은 음성과 드라마틱한 가창이 저승으로 내려가는 자의 분노를 단호히 표현하고 있는데 마치 연극을 하듯 표정과 제스처를 동원해 감정을 표현해야 하며 체념에서 복수심까지 그 감정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격렬하다. 서정적으로 노래하다가 악기들의 총주와 함께 외치는 부분은 꽤 극적이다. 이로써 이 노래의 주인공은 비극적 운명의 희생자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게임의 승리자가 된다. 이 균형잃은 증오를 묘사하는 음악이 참으로 '이탈리아적'인데 그 시대 어느 유럽의 음악도 이렇게 일그러진 감정을 표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비발디의 현란한 기교는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지오반니 티에폴로의 1770-90경 스케치로 눈을 가린 큐피드는 눈먼 사랑의 운명과 우연을 의미한다.


비발디의 칸타타는 주로 귀족의 저택에서 공연되었다. 그 방에 모여 이런 사랑 노래를 듣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저택에서 연주된 사실만 보더라도 이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원하던 사랑, 추구하던 이상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다. 18세기에는 아르카디아를 연상시키는 목가적 문화가 예술 전반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어가 있었다. 음악을 통해 목가적 로맨스를 양분 삼아 덕성을 고취하려 한 것일까? 복잡한 사교계를 떠나 목가 판타지 속으로의 도피?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주는 쾌락을 즐긴 것일까? 이것 역시 하우저가 말했듯이 18세기 문화에서 통용되던 일반적인 비극적 감정이었고 목가적 콘텐츠에서 그런 감정은 어느 정도 허구였으며 그 허구 속에서 18세기인들은 안도감을 느꼈다. 마치 목동의 옷을 입고 익명의 편안함을 느끼듯이. 여기에는 정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운명에 대한 더 큰 불안이 내재해 있었다. 연극이든 오페라든 칸타타든 정념의 포로가 되어 쓰러지는 주인공의 삶은 운명과 우연에 좌지우지된다. 마찬가지로 비발디의 음악은 감정의 선을 과감하게 넘어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성악적 기교와 제스처 역시 정념 비극의 극적인 요소를 모두 보여준다. 이 두 곡의 칸타타는 그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연극처럼 공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랑을 비롯해 인간사 모든 것이 우연이고 우연이 곧 운명이라는 그 당시 유럽인들의 사고를 잘 보여준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fe0DNcb3biI&list=RDWahWCWiwXN0&index=3

<멈춰라 이제 다 끝났다> 중 '왜 나의 슬픔 이외에는 원치 않는가'



https://youtu.be/LheBQWQ5va8

<멈춰라 이제 다 끝났다> 중 레치타티보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티저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hqUpHOo8o0


<사랑, 네가 승리했다>중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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