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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Jul 27. 2023

영국의 궁정 가면극과 퍼셀의 음악

헨리 퍼셀의 음악 드라마 <요정의 여왕>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헨리 퍼셀 <요정의 여왕>

연주자 : 존 엘리엇 가디너(지휘), 제니퍼 스미스(소프라노), 애쉴리 스태포드(카운터테너) 등

            더 몬테베르디 합창단, 더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레이블 : 아르히브 ARCHIV




프랑스 루이 13세 시대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는 궁정 발레(Cour de Ballet)였다. 이와 비슷하게 비슷한 시기 16-17세기 영국 왕실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는 궁정 가면극(The Masque)이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가면극과 가면극 요소를 오페라와 결합해 영국식 오페라(English opera, semi-opera, dramatic opera)를 창작한 영국 바로크 음악의 위대한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과 그의 음악극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는 퍼셀의 모든 음악극이 오페라라고 느슨하게 통용되지만 엄밀히 분류하면 그의 음악극 모두가 오페라는 아니다. 퍼셀의 오페라는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ias>(1689) 한 편이며 그 외 음악극은 가면극 혹은 세미-오페라(or 드라마틱 오페라)라는 명칭으로  분류된다. 오늘날 오페라 표준인 '이탈리아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퍼셀의 대표작인 <요정의 여왕 The Fairy Queen>(1692)은 세미-오페라 혹은 드라마틱 오페라라고 불리우는데 어떻게 불리던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다른 영국식 음악극이라는 의미는 확실하다. 왜 이렇게 분류되는 걸까? 퍼셀의 음악극은 오페라인가 노래극인가 가면극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국 왕실의 오락거리였던 '가면극'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면극  The Masque

가면극은 16-17세기초 유행한 영국의 무대극으로 춤, 음악(독창, 합창, 챔버 앙상블), 시 낭독, 대화, 가면과 의상, 특수 무대장치가 어우러진 화려한 연극적 퍼포먼스였다. 이 시기 영국의 문학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벤 존슨과 같은 거장을 배출하며 창작력을 절정을 자랑했고 가면극도 그런 위대한 영문학 전통 속에 위치했다. 가면극의 스토리는 대화, 이야기, 상황이나 캐릭터 설명 등의 대사로 진행되었고 신화적 알레고리나 군주 혹은 후원자를 칭송하거나, 엘리자베스 시대의 경우엔 국가적 단합을 의미하는 내용을 보여주기도 했다. 궁전의 연회장에서 왕실 행사로 열리기도 했고, 귀족 후원자의 사설 극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88-1603) 시기에는 사설 극장이 유행했는데, 그 당시 음악은 연극에 부수적으로 따라다녔으며 연기의 감정적 측면을 전달하는 효과로만 사용되었고 여기에 춤과 가장행렬이 더해지며 가면극의 대략적인 형태가 만들어졌다. 음악은 각 막 사이에 연주되어 향후 전달될 스토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역할 정도로 활용되었는데 매튜 로크(Matthew Locke, 1621-1677), 토머스 캠피온(Thomas Campion, 1567-1620)이 당시 뛰어난 극 부수음악을 남겼다. 또한 17세기 가면극은 연극의 한 장면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가장 흔한 예로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도회 장면, <한 여름밤의 꿈>의 아마존 여왕의 결혼식 장면, <템페스트> 4막 1장에 등장하는 가면극이 극 중에 활용된 대표적 사례다.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중 가면극(masque) 장면


궁정 가면극의 예술성이 절정에 달한 때는 제임스 1세(1566~1625) 시대였는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벤 존슨(Ben Jonson, 1572-1637)은 <클로리디아 Chloridia>(1631) 등 32편의 가면극을 창작해 가면극을 문학의 한 장르로 완성시킨 대가였다. 벤 존슨과 많은 작품에서 협엽한 천재적인 건축가이자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한 이니고 존스(Inigo Jones, 1573-1652)는 가면극의 시각적 예술성을 최고조로 올려놓으며 스펙터클로서의 가면극을 완성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음악은 가면극의 중심 역할을 했지만 드라마를 끌고 가기보다는 주제나 감정을 묘사하는 부수적 요소로 활용되었는데 간단한 앙상블이나 류트 반주의 독창(air)처럼 단출하게 구성되었다. 춤은 전문 무용수들이 췄으며 특별하게 안무된 댄스 시퀀스는 시각적 쾌감을 자아내거나 스토리텔링을 강화하는 퍼포먼스로 사용되었다. 시각적 스펙터클도 빼놓을 없다. 값비싸고 화려한 의상, 극적인 조명, 움직이는 무대 장치 등으로 관객을 홀리는 오락거리는 최고의 여흥을 제공했다. 배우들은 가면을 쓰고 공연했는데 전문 배우나 귀족, 궁정인들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왕이 등장해 춤을 추기도 했고, 모든 귀족 관람객들이 참여해 빠른 춤곡인 가이야르(Gaillard)나 쿠랑트(Courante) 같은 춤을 단체로 추며 노래를 부르고 화합을 이끌면서 끝을 맺었다. 이것은 프랑스 궁정발레에서도 긴장의 완화와 화합의 요소로서 국왕과 왕비가 궁정인들과 함께 춤을 추는 연대적 춤과 동일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 제임스 1세는 튜더 왕조 때부터 내려온 가면극 전통을 혁신했는데 그는 프랑스 궁정발레가 가진 정치적 알레고리, 군주제 강화를 위한 효과적 프로파간다 방식을 알고 있었고, 프랑스 궁정발레의 일부를 영국의 가면극에도 적용하여 구시대적 가면극을 개혁하고 신화적 알레고리 속에 스튜어트 왕조를 위치시키려 했다. 일반적으로 궁정 가면극은 영국 왕실을 고대 로마의 위엄, 혹은 아더 왕의 위대한 전설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가면극이 벤 존슨의 <기쁨의 비전 The Vision of Delight>(1617)이다. 이 작품 속에서 제임스 1세는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표현되며 영국의 군주는 로마의 황제들과 대등하게 견주어진다. 또 당시 가면극 개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프랑스 발레의 전 유럽적 영향력이었다. 1582년 파리에서 <르 발레 코미크 Le Balet Comique>라는 자료집이 출판되었는데 이는 1581년 루브르궁에서 결혼축하연으로 공연된 궁정발레의 안무, 의상, 무대장식, 연기 그리고 공연 기획과 의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호화로운 기록물이었다. <르 발레 코미크>는 당시 주불영국대사가 구입해 그 복사본이 극작가 벤 존슨의 손에 들어갔으며, 이니고 존스도 이 자료집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 둘은 스튜어트 가면극을 쇄신한 주역들이었다. 학자들은 벤 존슨 작 <더 마스크 오브 퀸스 The Masque of Queens(1609), 존 밀턴이 쓰고 이니고 존스가 디자인한 <복원된 템페 Tempe Restored>(1632)에서 <르 발레 코미크>의 영향을 지적한다. 획일화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스튜어트 통치 기간 동안 무대에 올려진 가면극은 프랑스 발레의 특징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고 동시대 사람들도 "특히 춤 동작 측면에서 프랑스인"으로 보였다는 기록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두 장르 사이의 이종교배가 일어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것은 비단 춤이라는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작품이 가진 정치적 의미에서도 그랬다.  


이니고 존스가 디자인한 가면극 캐릭터 의상 - 토마스 캠피온 작 <he Lord's Masque>, ca. 1610-1613



프랑스 궁정발레는 영국 가면극에 통합되어 극의 시각적 화려함을 배가시키는데 기여했다. 프랑스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때때로 가면극을 공연하거나 참여하기 위해 영국 궁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국왕 찰스 1세와 프랑스의 공주이자 루이 13세의 누이인 헨리에타 마리아(Henrietta Maria)의 결혼은 양국 간의 문화적 유대를 더욱 강화해 마리아의 프랑스 수행원들이 프랑스 발레의 예술적 요소를 가면극에 도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요소의 조합으로 가면극은 스튜어트 시대의 세련된 궁중 오락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졌다. 이후 잇따른 내전과 1649년 찰스 1세의 처형으로 가면극 전통은 중단되었지만, 왕정복고기 찰스 2세 치하에서 가면극의 복원이 시도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 의미의 중요성을 잃은 구시대적 유물이 되었고 전통적인 양식의 마지막 가면극은 존 드라이든(John Dryden, 1631-1700) 각본의 파스토랄적 제목을 가진 <사랑의 신전 The Temple of Love>(1690)이었다. 이후 가면극은 오페라, 연극과 같은 다른 무대극의 일부로 흡수되어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창작의 중심에 헨리 퍼셀이 있었다.  



영국식 오페라 <요정의 여왕>과 헨리 퍼셀

퍼셀의 <요정의 여왕>(1692)은 가면극 장르를 흡수한 세미-오페라로 1692년 5월 2일 런던 도싯 가든의 퀸즈 씨어터(Queen's Theatre, Dorset Garden)에서 첫 상연되었다. <요정의 여왕>은 엄밀한 의미에서 가면극도 아니고 오페라도 아니다. 가면극 요소를 포함한 '영국식 오페라' 혹은 '드라마틱 오페라'라고 분류되는데, 이 혼합 장르는 왕정복고 시대에 등장했으며 가면극의 볼거리 요소를 음악극과 종합적으로 결합하되 그 결합방식을 더 긴밀하게 조율해 오페라의 의미에 가깝게 조정했다. 하지만 가면극의 화려한 연극적 요소, 기악 앙상블이나 춤이 스토리에 녹아들기보다는 디베르티즈망(divertisemnet)처럼 독립적 즐거움의 특성 역시 포함하고 있어 완전한 오페라로 보기 어렵고, 왕정복고 시대 음악극의 특징인 하이브리드적 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주인공의 주요 메세지는 대사로 처리되고 주변인물들이 주로 노래를 부르는 형식도 오페라라고 보기 어렵다. 16세기 부터 연극이 가장 인기있는 예술장르였던 영국의 전통에서 음악 형식에도 연극의 전통이 깊게 배여있기에 다른 유럽의 오페라와는 다른 전통 속에서 발전했다.


퍼셀은 가면극 전통을 오페라 양식과 일부 통합하여 영국식 극음악의 정체성을 확립했는데 <디오클레시안 Dioclesian>(1690), <아서 왕 King Arthur>(1691), <요정 여왕 The Fairy Queen>(1692)이 대표적이다. <요정의 여왕>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 Midsummer Night Dream>(1595)을 각색해 일부 내용을 변형해 사용했다. 노래와 극이 결합한 방식에서 얼핏 오페라로 보이지만, 가면극의 요소를 취하고 대사가 등장하는 세미-오페라는 엄연히 오페라와는 다른 예술이었다. 영국에서 이탈리아식 오페라는 헨델에 의해 18세기에 이식되었고, 17세기 후반 세미-오페라는 철저히 영국식 엔터테인먼트였다.


<요정의 여왕>은 스튜어트 시대에 유행한 가면극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가면극보다는 플롯의 구조가 더 정교하고 막간에 연주되는 기악곡의 의미와 노래들이 광범위하게 스토리와 연결되며 탄탄한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어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음악극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음악(아리아, 레치타티보, 기악앙상블)이 극의 중심에 서있기보다는 음악과 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 오페라라기보다는 '음악이 있는 드라마(music drama)'라고 분류된다. 퍼셀은 <요정의 여왕> 1막을 제외하고 나머지 4개의 막에 가면극을 추가하였고 이것은 스토리하고는 관련 없는 시각적 즐거움으로 기능했다. 음악을 들어보면 <이브닝 하임 Ebenibg Hyme>과 같은 곡에서 느낄 수 있는 퍼셀 특유의 감성이 살아있지만 전체적으로 진행이 느리고 노래와 중창, 합창이 나열되며 음악보다는 대사를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무대를 직접 본다면 화려한 시각효과가 흥미롭겠지만 음악적으로는 오늘날의 오페라에 비교하자면 느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퍼셀의 <요정의 여왕>은 분명 영국적 가면극 전통에 기반한 영국 오페라 양식으로 당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 비해 음악의 변방이었던 영국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낸 독자적 오락물이자 바로크 음악의 대표작으로 꼽힐만한 걸작이다. 굳이 근대 선진 오페라와 연결짓지 않아도 영국 문학, 연극, 음악의 독창성을 인정할만하다.


<요정의 음악> 전곡 연주에는 2시간이 걸리는데 다 감상하기는 어렵다. 그중 추천할 만한 노래로 2막의 <come all ye songsters of the sky>는 씩씩하고, <when I often heard>는 소프라노의 맑은 음성이 그리는 밝고 하늘거리는 선율이 아름다운 곡이다.  2막의 <Dance of the Followers of Night>은 가면극의 춤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4막의 첫곡을 여는 심포니는 팀파니의 당당한 울림과 팡파르가 우렁차며, 5막의 유명한 아리아 <O, let me ever ever weep>의 단조는 매우 쓸쓸한데 17-18세기 영국음악의 멜랑콜리함을 잘 담고 있고 퍼셀의 장기인 한탄조의 아리아를 들을수 있다. 그리고 5막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는 <They shall be happy as they're fair>는 춤곡 리듬으로 시작하는데 가면극의 마지막 대단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흥겹다.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by William Blake, c. 1786


그런데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과 가면극은 어떻게 공존했으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가면극과 세미-오페라에 영국성(Britinshness)이라는 것이 있을까? 17세기 영국의 대중적 예술은 연극이었고 극장은 여러 계층이 모이는 계급혼합적 장소였는데 궁정 가면극은 타 계층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단순히 궁정인을 위한 극이었을까? 프랑스 <르 발레 코미크>의 영국 내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마지막으로 이 음반을 지휘한 영국의 대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 경(Sir John Eliot Gardiner, 1943~  )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몬테베르디 합창단,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악단을 지휘하며 잊힌 옛 음악을 발굴하고 바로크 레퍼토리를 확충하며 당대의 악기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숱한 명반을 만들어냈다. 에라토 레이블에서 헨리 퍼셀의 무대 음악을 모아 <아서 왕>, <메리 여왕을 위한 장송음악>, <성 세실리아 축일 송가>, <아테네의 티몬>, <인디언 여왕>, <템페스트>를 9장의 CD에 녹음한 경력이 있다. 영국인 지휘자가 해석한 헨리 퍼셀의 음악. 남달리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sl_QbqKAXEQ

Purcell Fairy Queen - Act 2: Dance of the Followers of Night




https://www.youtube.com/watch?v=qFwYBt4gsNg

The Fairy Queen: 'Now the night is chas'd away' – Glyndebourne




https://www.youtube.com/watch?v=O-McDItFgrc

The Fairy Queen: 'O let me weep' - Glynde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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