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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Aug 30. 2023

사랑과 실연의 멜랑콜리 노래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노래 '에어'

16-17세기 영국의 세속적 노래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엘리자베스 시대의 노래 "숙녀의 음악" 

연주자: 엠마 커크비(소프라노), 앤소니 룰리 (류트)

레이블: 루아조 리르 L'Oiseau-Lyre

 



지난 글에서 영국 스튜어트 시대의 궁정 가면극과 영국식 오페라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면, 오늘은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튜더 시대의 노래 '에어(ayre)'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시대의 노래는 문학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 셰익스피어의 빛나는 업적을 포함해 영국 문학의 걸작이 창작되었던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시대에 문학, 특히 시와 연극의 사회적 영향력은 강력했고 시를 노랫말로 삼은 예술가곡 '에어'는 시 문학과 긴밀히 교류하며 발전했다. 에어는 주로 류트(lute) 반주로 불려졌는데 '류트 에어'는 이 시기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직접 류트 연주도 하며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미지 메이킹'하기도 했는데 여왕이 류트를 연주하다는 것은 "여왕의 국가는 류트 음악처럼 조화로워야 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니콜라스 힐리어드(Nicolas Hilliard, 1547-1619)는 그 당시 가장 보편적인 악기였던 류트를 연주하는 여왕의 모습을 미니어처 그림으로 남겼는데 류트는 그 시대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보편적인 악기였다. 16세기 중반 이후 영국에서 사랑과 욕망을 그리는 수준 높은 연애 시가 창작되기 시작하면서 류트는 사랑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필요한 연인의 악기가 되었고 노래는 연애시의 감미로운 문장을 따르기 시작했다.


힐리어드 <류트를 연주하는 엘리자베스 1세> c. 1580


소개하는 음반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를 대표하는 '에어'라고 불리던 영국의 예술가곡 12곡을 담은 음반이다. 주로 사랑과 실연, 내면의 어두운 감정을 다룬 노래가 많으며 담백하고 간단한 선율, 옥타브 변화가 크지 않아 쉽게 노래할 수 있는 선율, 류트 한대만 있으면 어디서든 부를 수 있는 서민적 특성을 갖춘 노래였다. 흥미로운 점은 에어의 노랫말의 원천이 시 또는 연극이었다는 점, 에어의 작곡가들은 시인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에어는 시에서 영감을 취하기도 했고 연극의 한 장면에서 대사처럼 불리기도 했다. 이 음반에는 이 시대 최고의 에어 작곡가로 칭송받는 존 다울랜드(John Dowland, 1563-1626), 음악가이자 뛰어난 영시를 다수 남긴 토머스 캠피온(Thomas Campion, 1567-1619)을 비롯해 모두 8명의 영국 작곡가들의 에어가 담겨있는데 이들은 모두 작곡가이자 시인이었고 가사는 곧 그 시대의 문학이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유명한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Emma Kirkby)가 노래하고 앤소니 룰리(Anthony Rooley)가 류트 반주를 맡았다. 에어의 가장 큰 매력은 꾸밈없는 간단명료한 선율에 있는데 커크비의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가 노래의 단아한 느낌을 십분 살려내고 있어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음악을 맛보기엔 이 만한 음반이 없다고 본다.


중세 이래로 영국에서는 웨이츠(Waites)라 불리는 밴드가 공공장소 연주를 통해 서민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또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불리는 음유시인들이 전국을 돌며 '버스킹'을 했는데 이들의 음악문화는 16세기 이래 번성하기 시작한 연극의 인기와 극장 문화의 발달로 극음악으로 흡수되었고 자연스럽게 음악 연주의 중심은 극장이 되었다. 음악은 연극에 흥을 더하는 부수적 역할을 담당했는데 류트 반주로 부르는 에어는 주로 희극에 많이 등장했고 이 노래들은 다시 독립적인 에어 작품으로 극장 밖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16-17세기 영국음악의 발전은 연극의 융성과 함께 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에어는 작곡가가 지은 시 이외 많은 경우 시와 연극에서 노랫말을 취했는데 소네트, 가면극의 텍스트, 발라드의 대중적인 노랫말, 연극에 등장하는 노래, 성경의 내용, 영시 앤솔로지 같은 출판물은 에어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17세기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공연된 글로브 씨어터


16세기 중반 이래 시인 필립 시드니(Philip Sidney, 1554~1586)를 필두로 영국 연애시의 수준이 높아졌고 이상적 여인으로서 엘라자베스 1세를 칭송하는 정치적 내용과 겹치며 연애시가 널리 유행했다. 특히 이 시기 연극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이었고 셰익스피어(1564-1616), 벤 존슨(Benjamin Johnson, 1572-1637)과 같은 천재들의 재능으로 최고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이러한 풍요로운 문학적 환경 속에서 극음악의 창작도 활성화되어 에어 장르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전통은 르네상스기를 지나 18세기까지 유지되어 존 에클스(John Eccles, 1668-1735), 니콜라 마티스(Nicola Mattias, 1650-1714),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과 같은 뛰어난 음악가들도 연극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을 남길 정도였다. 마치 프랑스에서 발레의 영향력이 오페라 등 음악 속에서 지속되었듯이 영국에서는 연극의 영향력이 음악 속에 지속되었다.


그런데 12곡의 에어를 듣다 보면 그 정조가 모두 어둡고 우울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 조성도 똑같아 동일한 노래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온통 고상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당대 최고의 에어 작곡가이자 류트 명인으로 활동했던 존 다울랜드(John Dowland)의 곡을 들어보면 그 시대 에어의 전형적인 멜랑콜리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 떨리는 그늘 속에서 In This Trembling Shadow>와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내 여인이 우는 것을 보았네 I Saw My Lady Weep>는 다울랜드가 직접 쓴 시를 재료로 삼았다. 이 시들은 모두 "내 마음속의 어둠 Darknesse From My Minde"을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비치는 그늘의 심상과 병치시키기도 하고,  한숨(sigh), 슬픔(sadness, sorrow, griev), 근심(woe), 눈물(tears)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시대의 지배적 정서인 '멜랑콜리'를 직접적으로 그린다. 심지어 <내 여인이 우는 것을 보았네>에서는 사랑과 근심이 함께 공존한다.


She made her sighs to sing,

And all things with so sweet a sadness move,

As made my heart at once both grieve and love.


다울랜드는 성공한 에어 작곡가였지만 시인으로서도 그 시대의 시적 언어와 그에 맞는 음악 기법(반음계, 열린 화음 등)으로 매우 심상적이고 표현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특히 그가 사용한 반음계는 의혹, 불안, 망설임 등 모호한 감정을 탁월하게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많은 경우 에어에 등장하는 우울의 원인은 짝사랑, 실연으로 그려지지만 그 정확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노래도 많다. 우울은 단지 '무드를 위한 무드'로 사용되면서 노랫말과 함께 비탄의 시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이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유행한 멜랑콜리(Elizabethan Melancholy) 정서의 사회적 문맥에서 창작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멋스럽게 채색된 우울은 그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정서였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큰 즐거움으로 가득 찬 열정"이라고 이탈리아의 작가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glione, 1478-1529)가 저서 <궁정인 The Book of the Courtier>(1528)에서 언급한 대로였다. 16-17세기 영국의 문화계에서 멜랑콜리는 어떻게 작동했을까? 이에 관해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자연이 쇠락하듯 인간도 쇠락한다는 멜랑콜리한 세계관은 그 당시 영국 지식인계를 지배한 사상이었다. 하지만 멜랑콜리가 비단 르네상스기의 발명품만은 아니었다. 사학자 호이징가가 말했듯이, 중세부터 멜랑콜리는 "(비참한 삶에 대해) 숙고하다"라는 의미와 "(숙고를 통해) 창작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관조와 명상, 비관적 사고에 사로 집힌 "Contemptus Mundi 세계에 대한 경멸"의 세계관으로 가혹한 자연, 가난과 병에 찌든 짧은 삶이 대다수였던 중세의 삶에 눈을 감고 어찌 되었건 어려운 생을 예술적으로 포장하고 격상시키려고 한 중세 및 르네상스인들의 절박한 태도 중 하나였다. 물론 이것은 예술을 발달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상류층의 문화인 것은 당연하다. 또한 16세기 이래 케플러,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등에 의한 새로운 천문지식의 발견은 우주의 변화와 질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왔고 세계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숭배받던' 고대의 지식도 영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 불안감이 등장한다. 그것은 곧 존재의 불안감과 연결되어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문화계에 널리 퍼지며 우주의 가변성과 유한성이 곧 세계와 인간의 쇠락이라는 지적 논쟁이 벌어졌다. 종교인들은 물론 벤 존슨, 에드먼드 스펜서, 존 던과 같은 작가들 역시 쇠락하는 자연과 그 속에서의 인간 운명을 주시하며 비탄에 잠긴다. 이를테면 존 던의 시 <첫 추모일 The First Anniversarie>에 나타나는 염세적 정서 "그들은 (세계가) 또 한 번 원자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다. 모든 것은 조각나고 일관성은 사라진다 they see that this Is crumbled out again to his atomies. ’Tis all in pieces, all coherence gone,"라고 노래하는 멜랑콜리는 이 시기의 예술의 대표적 감정이었다. 시인 스펜서 역시 서사시 <Faerie Queene>에서 "...그리고 한번 어긋난 것은 나날이 악화되고 악화된다. and being once amisse growes daily wourse and wourse." 고 읊으며 시간, 변화의 기운을 관조하는 상심의 어조를 드러낸다. 이는 시대적 정서였고 예술과 그 예술을 즐기는 영국인들의 일상적인 정서 속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따라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음악에서 멜랑콜리는 이런 문화적 맥락에서 작동하면서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한 연애시의 빈번한 소재였던 사랑과 슬픔의 정조와도 섞여 들여간다. 대중들은 노래에서 존재의 불안보다는 사랑의 근심을 보았다. 에어는 곧 연애시였다. 대다수의 에어에서 마음속의 우울감은 주요 소재로 다루어지며 아름답게 표현되는데 그 슬픔의 근원은 '경멸적 세계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또 현실적으로는 짝사랑과 실연이기도 했다. 화가 힐리아드의 그림 중 하나는 그 시대 유행한 사랑의 열병을 '힙'하게 표현하고 있다. 힐리어드가 그린 <화염을 배경으로 한 무명의 청년 Unknown Young Man Against a Background of Flames>(c.1600)은 셔츠 사이로 가슴을 드러내고 섹시한 자태로 서있는 잘생긴 청년을 묘사한다. 그는 불타는 사랑을 드러내듯 화염 속에 서 있다.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목걸이 펜던트에는 아마도 그의 연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으리라. 그 연인의 얼굴을 들어 보이며, 마치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혹은 애인의 시선)을 의식하듯, 뜨거운 연정을 드러낸다. 펜던트의 그림이 곧 연인의 사진 역할을 했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았을 때 이 사내의 사랑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랑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불타지 않는 사랑은 쉽게 식는다. 어디에서든 소멸의 감성이 배어있다.  


힐리어드의 또 다른 매력적인 펜던트 그림인 <헨리 퍼시 Henry Percy>(1595)는 퍼시 백작이 텅 빈 표정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있다. 꽃과 장갑, 분홍색 리본이 달린 책, 셔츠를 풀어헤치고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아 철학적 명상보다는 멜랑콜리한 사랑의 근심에 빠져있는 듯이 보인다. 힐리아드의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인 <장미 속의 청년 Young Man Among Roses>(c.1587)은 <구애자>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펜던트 상단에 '고귀한 사랑이 괴로움을 가져온다 Dat poenas laudata fides'는 라틴어 문구를 통해 로맨틱한 청년의 자태 속에 어딘가 우수에 젖은 듯한 미묘한 사랑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기쁨과 슬픔이 함께 하는 것, 즉 '멜랑콜리'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런 사랑의 멜랑콜리의 유행은, 갓프리 굿맨(Godfrey Goodman, 1582~1656) 주교가 설파했듯이, 인간의 소우주적 불행은 대우주의 불안정한 가변성으로까지 확장되어 유비적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힐리어드, <헨리 퍼시 Henry Percy>, c. 1595


힐리어드, <장미 속의 청년 Young Man Among Roses>(c.1587)



둘째, 어두운 정서는 인간의 가장 심오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문학과 음악은 그것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수사법과 작곡 테크닉을 가져야 했다. 이에 따라 수사학에 대한 관심과 시적 언어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음악적 기법이 고안되었다. 상류층에서 수사학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교양으로 여겨지던 시기에 시와 수사학에 대한 책 중 <영시의 예술 The Art of English Poesie(1589)>는 당대 지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었다. 이 책은 궁정인을 위한 수사학 교본이었고, 영국의 명시 모음집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이탈리아 연애시의 영향을 받아 감미롭고 수준 높은 연애시가 등장했으며, 사랑을 노래하는 감각적 언어와 시구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지식인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문학적 환경 속에서 시를 노랫말로 삼는 에어 역시 언어적 수사를 동등하게 음악에 반영할 수 있는 작곡 기법에 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어 작곡가들은 어두운 감정을 새로운 음악을 실험하는 도전적인 주제로 환영했고 우울한 감정 자체를 양식화하면서 관습적 프레임을 만들었다. 에어의 애조 띤 정서는 그 시대의 '힙스터'라면 갖춰야 할 스타일처럼 통용되었고 멜랑콜리한 에어는 히트곡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대의 많은 에어는 특정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멜랑콜리한 감정을 즉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조성과 화성을 개선했고 반음계, 열린 화음 등을 시도해 단호한 감정보다는 애매하게 환기시키는 무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 에어는 그 정서가 모두 비슷하게 어둡다. 그중 다울랜드의 <눈물이여 흘러라 Flow My Tears>는 17세기 초 대륙에서도 사랑받을 전도로 큰 히트곡이었는데, 1604년 다울랜드는 앤 여왕에게 이 노래를 기악 버전으로 편곡한 <눈물의 파반느 Lachrimae>를 헌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즐거움은 음악이 흘리는 눈물이고 슬픔 속에 눈물은 드러난다. 하지만 때때로 기쁨과 반가움 속에서도 드러난다 ... 쏟아지는 하모니에 대한 당신의 은혜로운 보호, 그것에 대해 적어도 찌푸리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진실한 눈물로 변신할 것입니다.


멜랑콜리에 대한 신비주의에 가까운 이런 정서는 이 음반에 실린 모든 에어를 관통하고 있는데, 이런 문화적 배경 없이 에어를 듣는다면 천편일률적인 단조 감성에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노래가 16-17세기 영국의 유행가였고 그 시대 사람들이 즐기던 일상적 감성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며 그 시대 영국만의 멋스러운 정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자 작곡가인 토마스 캠피온(Thomas Campion)의 노래 <자, 노래하자 Come Let Us Sound>는 캠피온의 1601년에 발행한 <에어 모음집 A Book of Ayres>에 실린 노래다. "목마른 내 영혼을 맑은 샘으로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단순한 멜로디를 계속 반복하며 선명하게 전달한다. 이 에어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선율이 아니라 문학적 재능이 반짝이는 문장이다. 프랜시스 피키턴(Francis Pilkington)은 작곡가이자 가수, 류트 연주자였다. <쉬어라, 사랑스러운 님프들아 Rest, Sweet Nymphs>는 "쉬어라 사랑스러운 님프들이여, 황금빛을 잠을 자게 하라"라는 시구처럼 전원시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잠에 대한 로맨틱한 상상을 그린다. <음악 친애하는 위로 Musick deare Solace> 역시 피키턴이 지은 시에 음악을 붙인 노래로 '위로하는 음악'이라는 그 시대에 유행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멜랑콜리를 위로하는 음악은 멜랑콜리한 음악이다. 위에서 언급한 에어는 모두 작곡가 자신이 지은 시에 바탕을 두었지만 토머스 몰리(Thomas Morley)의 <여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네 I Saw Lady Weeping>은 시에서 노랫말을 가져온 경우로 좀 경우가 다르다. 가사를 시 <로자문드의 불평 The Complaint of Rosamond>에서 가져왔는데 이 시는 사뮤엘 다니엘(Samuel Daniel)의 작품으로 헨리 2세의 정부인 로자문드 클리포드와 정실 왕비와의 갈등을 내용으로 삼았다. 클리포드의 갈등과 죽음은 민간 전설처럼 내려져오는 이야기로 당시 민중들에게 친숙한 이야기였다. 토머스 몰리는 이 소재를 노래에 사용했고 우수에 젖은 분위기 속에서 제 3자의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며 감정적으로 공명한다.


I saw my lady weeping

And sorrow proud to be advanced so

In those fair eyes, where all perfection's kept.

Her face was full of woe,

But such a woe, believe me, as wins more hearts

Than mirth can do with her enticing parts.


에어 <류트의 즐거움처럼 Like as the Lute Delights>는 사무엘 다니엘(Samuel Danyel, 1562-1619)의 소네트 <델리아 Delia>(1592) 중 '사랑의 관계'를 다루는 소네트 XLVII의 시구를 노래화했다. 류트 연주를 사랑의 터치에 비유하며 음악과 사랑을 서로 관련지어 복합적으로 다루는 문학적 수사가 뛰어난 에어이다. 한 노래에 lamentable, sweetest, harsh, happy 등 대조적인 시어를 여러 번 병치시켜 다양한 감정을 노래하는 동시에 장조와 단조를 모호하게 섞어가며 독특한 정서를 자아낸다. 다음 노래 <만일 이 살 속에서 if  in this flesh>는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1583–1633)의 에어인데 이 노래는 1629년에 초연된 벤 존슨의 희곡 <새로운 여관 The New Inn>에 등장하는 가면극에 삽입된 노래이다. 류트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존슨은 이 가면극 노래를 따로 불렀다. 로버트 존슨은 연극, 가면극의 음악에 자주 참여했는데 벤 존슨의 가면극  <변신한 집시들 The Gypsies Metamorphosed>에서 음악을 맡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엘리자베스 시대에 작가와 음악가의 협업은 매우 긴밀했고 많은 에어가 연극 속의 노래로 등장하기도 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모두 오너라 Come, All Ye>의 가사는 토머스 내쉬(Thomas Nashe, 1567-1601)의 시 <오라 목장 소녀들이여 Come, All Ye Shepherd Lasses>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목가적 서정시로 내쉬의 1600년 희곡 <여름의 마지막 유연장 Summer's Last Will and Testament>에 등장하는 시로 전원 속의 달콤한 사랑을 읊는 내용인데 느릿하고 평화로운 감정으로 4월의 전원의 느낌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감상적인 무드 속에 은근하게 스며들어간 기쁨의 미묘한 뉘앙스가 멋스럽다.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어 <Sweet Birdes Deprive Us Never>은 존 바틀렛(John Bartlet)의 곡으로 이 음반에서 유일하게 가장 밝은 장조 무드의 노래이다. 노래의 후반부 뻐꾸기의 목소리를 묘사하는 듯한 음형이 재미있는데, 이전의 우울한 곡들과 단연 구별되며 화려한 성악적 기교도 돋보인다. 가사는 토머스 몰리(Thomas Morley)의 시 <이른 시간을 노래하는 다정한 새 Sweet Bird, That Sing'st Away the Early Houres>에서 가져왔는데 이 시는 몰리가 수집해 편찬한 영국 작곡가들의 마드리갈(Madrigal, 이탈리아 세속 노래 형식) 작품 모음집 <오리아나의 승리 The Triumphs of Oriana>(1601)에 실려있는 시이다. 이 작품집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헌정되었는데 노래에 등장하는 오리아나는 곧 여왕을 의미했다. 마드리갈 장르는 이탈리아에서 수입되었지만 17세기 영국에서도 에어와 함께 활발하게 창작되었고 이탈리아의 수준 높은 시와 음악을 영국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이 장르와 더불어 영국 에어의 시적 표현력이 자극받았다고 음악사가들은 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 곡을 제외하고 음반의 모든 노래가 우울하고 단조로워 마치 변화 없는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하지만 류트의 단출한 소리, 커크비의 티 없이 맑은 목소리가 재현하는 군더더기 없는 선율은 안빈낙도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 시대의 에어를 듣는 것은 '황금시대' 영문학을 함께 듣는 것을 의미한다. 음악가들이 곧 시인이자 연주자였고 에어는 계급을 가리지 않고 유행했다. 마치 연극이 민중예술로 기능했듯이 에어 역시 유행가처럼 사랑받았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모든 예술을 관통하는 멜랑콜리 정서는 시간과 변화에 대한 시대의 민감한 감수성을 반영한다. 이들이 그토록 고귀한 가치로 숭상하던 사랑마저 시간을 이길 수 없을 테니. 사랑을 다룬 에어는 사랑으로 괴로워하고, 사랑을 다루지 않는 에어는 존재적 불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비극적이지 않다. 수많은 에어가 단조의 노래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비련의 정서가 패셔너블하게 소비되었기 때문. 사랑에 번민하고 쇠락을 관조하는 인간은 애처롭고 고상해서 아름답다. 그런 정서가 힐리어드의 그림 속에, 다울랜드의 노래 속에 시대의 인장처럼 남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dt3QFtcUSw


 https://www.youtube.com/watch?v=GZ3ozdV4UYo


https://www.youtube.com/watch?v=mAn_RFiJX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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