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텐 Jun 27. 2023

런던의 하이든

런던에서 흥행한 12곡의 '런던 교향곡' 연작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하이든 <런던 심포니> 전곡

연주자 : 아담 피셔(지휘), 오스트로-헝가리 하이든 오케스트라

레이블 : 브릴리언트 클래식  Brilliant Classic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하이든(1732-1809)의 '런던 교향곡' 시리즈 12곡이다. 작곡가 말년의 원숙기에 창작된 곡으로 하이든의 모든 교향곡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스케일을 갖춘 작품이며 입문용으로 자주 추천되는 <시계>, <놀람> 등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헝가리 지휘자 아담 피셔(Adam Fischer)가 지휘한 이 음반은 하이든이 악장으로 근무했던 오스트리아 아이젠슈타트에 위치한 에스테르하지 궁전에서 녹음해 장소가 가진 역사성을 더했다. 아담 피셔는 비엔나 고전파 음악 전문가인데 1987년부터 104곡에 이르는 하이든 교향곡 전곡 녹음을 시작해 2001년에 완성하며 하이든 연주사에 대기록을 남겼다. 오늘은 그중 12곡의 '런던 교향곡'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8세기 전반부 런던 음악계를 달궜던 인물이 독일 출신의 헨델이었다면 후반부에는 오스트리아의 하이든이었다. 하이든의 런던 체류는 길지 않았다. 그는 1791-1792년과 1794-1795년 2차례에 걸쳐 짧게 런던을 방문해 모두 12곡(교향곡 93번~104번)의 교향곡을 작곡해 런던 청중 앞에서 연주했다. 그의 작품과 명성은 당연히 영국에도 잘 알려져 있었고 58세 대음악가의 방문은 영국 음악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하이든이 런던에서 작곡하고 지휘한 모든 작품이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오늘날에는 그 12곡의 교향곡을 묶어 '런던 교향곡'이라 부른다.


비엔나에 머물던 하이든을 런던으로 초청한 사람은 그 당시 런던에서 콘서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던 요한 페터 잘로몬(1745-1815)이었다. 잘로몬은 독일 본 출신의 음악가였고 런던에서 작곡가, 지휘자,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했지만 오늘날에는 콘서트 기획자이자 흥행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런던의 잘로몬은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대중 콘서트를 기획했는데 연주회당 보통 2-3시간 정도로 레퍼토리를 구성했고 오페라 아리아, 협주곡, 다양한 관현악곡을 포함해 다채롭게 구성했다. 영국에 오기 전에는 프러시아에서 악장으로 일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이때 하이든 교향곡을 처음으로 연주한 경험이 있었다. 런던으로 이주한 후 1786년부터 유명한 음악홀이었던 하노버 스퀘어 룸(Hanover Square Rooms)에서 오케스트라 연주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잘로몬은 이 프로그램의 흥행을 위해 하이든을 초청했고 그래서 '런던 교향곡' 시리즈는 그의 이름을 따 '잘로몬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 초청의 시작은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장 업무를 그만두고 나서부터였다.


1794년의 런던의 모습을 그린 삽화


1790년 9월 하이든이 모시던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Nicolas Eszterháza) 후작이 사망하자 가문의 악장으로 일했던 하이든은 일을 그만두고 비엔나로 거처를 옮겼다. 1761년 이후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30여 년 동안 근무했는데 이 시기에 하이든의 외부 활동은 비엔나 외에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하이든의 작품은 인쇄출판업의 발달로 프랑스, 영국 음악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1780년 무렵에 하이든은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곡가 중의 한 명이 되어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그의 교향곡이 널리 연주되고 있었고 파리에서 악단을 이끌던 도니 백작(Count D'Ogny)이 하이든에게 직접 작품을 의뢰해 1785-1786 사이 6곡의 '파리 교향곡'이 작곡되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흥행사 잘로몬은 하이든에게 1791-1792년 시즌의 연주를 제안했고 거액의 계약금을 제시하며 런던에 초청했다. 그 당시 런던은 대중 음악회가 발달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갖춘 대도시였다. 영국은 18세기초부터 로열 아프리칸 컴퍼니(Royal African Company)와 사우스 씨 컴퍼니(South Sea Company)를 설립해 노예, 설탕, 금, 상아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있었고 런던은 각 대륙을 연결하는 해상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당연히 인적 자원과 자본이 런던으로 몰려들었고 그에 따라 대중 콘서트 같은 오락거리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유럽에서 처음 공공 음악홀이 들어선 곳은 런던이었다. 당시 전문 연주회의 표값은 지금의 환율로 75~160파운드 정도였으니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귀족과 자본가들이 주로 콘서트를 즐겼고 또 콘서트 제작을 주도하며 무역에서 얻은 이익을 오페라와 음악회 인프라에 투자했다. 대자본, 공연 매니지먼트의 발전 그리고 대중의 취향과 높은 수요가 결합해 런던은 음악가들에게 성공의 무대가 되었다. 독일의 음악가 요한 마테손(Johann Mattheson)은 당시 음악의 상업적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짧게 요약했다.


"요즘 음악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영국으로 간다. 이탈리아인은 음악을 찬양하고, 프랑스인은 음악에 활기를 불어넣고, 독일인은 음악에 노력하고, 영국인은 돈을 지불한다".


음악학자들은 18세기 후반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공 연주회와 대중적 수요와 열기는 하이든의 런던 방문에서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고 있다. 하이든의 방문 자체는 큰 뉴스였고 그가 런던에 도착하기 전부터 언론은 동향을 보도했다. 영국의 모닝 크로니클은 1790년 12월 29일 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잘로몬 씨는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장으로 재직 중인 명망 높은 하이든 씨를 모시러 비엔나로 여행을 떠났다. 하이든 씨를 영국으로 초청해 귀족과 젠트리들에게 소개하고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하이든 씨가 12월 전에는 런던에 오기를 바라는데, 잘로몬 씨는 등록제로 진행되는 대중 콘서트 계획을 제출할 것이다". 


실제로 하이든은 해를 넘겨 이듬해 1월에 런던에 도착했다. 영국의 고위층과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나누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지에서 자신의 음악에 열광하는 낯선 청중들을 만날 수 있었다. 런던에 도착한 하이든은 1791년 1월 7일 자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친구 마리안느 폰 겐칭어(Marianne  von Genzinger) 부인에게 보낸다.


"나의 도착은 도시 전체에 돌풍을 일으켰고 3일간 모든 언론사를 방문했습니다. 모두가 나를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벌써 6번의 만찬을 했고 원한다면 매일 초대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건강을 생각해야 하고 그다음엔 음악 작업을 고려해야 합니다. 귀족을 제외하고는 오후 2시까지 손님을 받지 않고 4시에는 집에서 잘로몬 씨와 함께 식사를 합니다. 비싸지만 쾌적하고 편안한 숙소에 머물고 있습니다."


1775년에 문을 연 하노버 스퀘어 룸 음악홀


1791-1792년 하이든은 런던 교향곡 시리즈 6곡(교향곡 93번~98번)을 작곡해 하노버 스퀘어 룸에서 연주해 크게 성공한다. 1791년 3월 11일 하이든의 첫 음악회가 열렸고 런던 도착 2개월만에 새 곡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영국에 소개되지 않았던 곡 <교향곡 92번>을 연주했다. 런던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모닝 크로니클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음악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영혼에게 하이든이 경의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우상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셰익스피어처럼 그는 마음대로 우리의 열정을 움직이고 지배하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연주회 첫날에 많은 청중이 참석한 것을 보고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대 최고의 음악 천재가 우리의 후한 환영을 받으며 영국에 거주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만 그 근심을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향곡 93번>에 대해 더 타임지는 "아이디어의 고상함, 유쾌한 변덕"이라고 칭찬했고 오라클지는 "놀라운 힘에 사로잡혔다"라고 보도했다. 오늘날에도 가장 인기 있는 하이든 교향곡 중의 하나인 <교향곡 94번>은 전체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울려 터지는 타격으로 청중을 놀라게 해 '놀람'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대중적 화제를 불러 모았다. 오늘날처럼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을 때 이렇게 위트있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얼만큼의 즐거움을 주었을지 한번 상상해 보면, 그의 음악에서 자주 보이는 반전과 유머는 대중 취향과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교향곡 95번>은 강한 총주의 극적인 시작으로 충격을 안겨준다. <교향곡 96번>은 음악이 끝나고 나서 열광적인 청중이 2악장의 앙코르를 요청해 다시 한 번 연주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교향곡 97번>은 팀파니와 트럼펫의 축제와 같은 울림, 2악장에서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향으로 대담한 음향을 추구한 작곡가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교향곡 98번>은 모차르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작곡된 것인데 2악장의 느릿하게 노래하는 선율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하다.


한편으로는 짧은 체류기간 동안 교향곡 여럿을 작곡해야 하는 과업은 대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당시 하이든이 교제하던 슈로이터 부인은 1792년 4월 19일 하이든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를 보면 하이든의 스트레스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아침 당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어제 서재에서 5시간을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그토록 훌륭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어놓고 왜 이렇게 마감에 쫓겨 피곤하게 일 하시나요?”


성공적인 런던 방문을 마치고 비엔나에 돌아간 하이든은 다시금 잘로몬의 초청으로 1794-1795년에 런던을 재방문해 추가로 6곡의 교향곡(교향곡 99~104번)을 작곡해 발표한다. 당연히 그의 음악회는 다시금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고 각 곡의 특징에 따라 재미있는 별칭이 붙었다. <교향곡 101번> "시계"는 틱톡거리는 리듬이 인상적이어서 '시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 교향곡은 하이든 작품에 입문하기 좋은 감상이 쉽고 재미있는 곡으로 많이 추천된다. <교향곡 100번> "군대"는 1악장의 전쟁의 분위기를 재현하듯 비장한 사운드가 청중의 감성을 건드렸고, 2악장 아다지오의 주선율은 매우 사랑스럽다. 4악장에서는 큰북, 심벌즈 등을 배치해 악기의 규모를 키우고 힘있는 사운드를 만들었다. 아마도 <군대> 교향곡은 공공 연주회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노린 듯이 보인다. <교향곡 102번>은 하이든의 연인이었던 레베카 슈로이터의 죽음을 슬퍼하며 작곡한 것인데, 느린 악장의 첼로의 노래가 애틋한 작품이다. <교향곡 103번>은 1악장 서두의 우렁찬 팀파니로 시작해 "큰북 연타 drum roll"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큰 규모의 콘서트 스케일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이든의 마지막 <교향곡 104번>에는 '런던'이라는 별칭이 붙어 그를 환호해 준 런던을 기념했다. 104번을 끝으로 하이든은 더 이 상 교향곡을 남기지 않았다. 12곡의 작품을 들어보면 런던의 공연문화와 하이든의 음악이 모두 스펙터클하게 변모해 가며 마치 19세기의 요란한 쇼를 예비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이든의 선구적 예술이 있었기에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말러, 브루크너의 대형 교향곡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런던 교향곡' 연작을 통해 알수 있다. 또한 하이든 방문 이후 런던의 음악 산업은 전 유럽에 걸쳐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보통 하이든의 교향곡에 대해서 말 할 때 사람들은 항상 반전, 위트, 유머를 이야기한다. 12곡의 '런던 교향곡'은 특히 위에 언급한 효과들의 사용으로 재치 있는 특성을 많이 보여주는데 아마도 흥행이 중요한 대중 콘서트에서 선보인 작품, 혹은 런던 청중의 즐거움을 위해 작곡한 작품이라서 그런 면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오케스트라의 편성도 팀파니, 트럼펫, 심벌즈가 포함된 큰 규모로 구성했으며 이는 하이든의 이전 교향곡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성인데 음악의 엔터테인먼트적 특성을 더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이 항상 음악이라는 순수 예술에만 봉사한 것은 아니다. 그 당시 교향곡은 오늘날의 K-POP 같은 오락이었고 그런 문맥에서 하이든의 작품을 들어보면 반전과 충격과 같은 대중적인 포인트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대중 음악회의 기준을 만들어 가던 18세기 영국인들의 취향이었고, 또 하이든 말년 예술의 정점이기도 했다. 하이든에게 런던은 예술과 흥행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기회의 도시였던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2bfx2vpWMo

하이든 교향곡 94번 <놀람> 2악장



https://www.youtube.com/watch?v=OitPLIowJ70

하이든 교향곡 104번 런던 - 베르나르 하이팅크 지휘, 빈 필 연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