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의 축제를 수놓은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헨델 (G.F.Handel), <수상 음악 Water Music & 왕궁의 불꽃놀이 Royal Firework>
연주자 : 에르베 니케(Herve Niquet),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Le Concert Spirituer)
레이블 : 글로싸 Glossa
영국의 국왕 조지 2세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의 종식(1748)을 기념하게 위해 1749년 4월 27일 런던의 그린파크에서 장대한 불꽃놀이 행사를 개최했고, 헨델(1685~1759)은 이 행사를 위해 관현악곡 <왕궁의 불꽃놀이 Royal Firework>를 작곡해 연주했다. 헨델은 1717년 조지 1세의 템즈강 뱃놀이를 위해 <수상음악 Water Music>을 작곡해 왕실 행사에 성공적으로 기여한 이후 또 한 번 중요한 음악적 과업을 떠맡았다. <왕궁의 불꽃놀이>는 <수상음악>, <메시아 Messiah>와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헨델의 작품으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듯 펑펑 터지는 타악기와 관악기의 황금빛 팡파르가 눈부신 곡이다.
국왕 조지 1세와 2세의 비호 아래 런던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헨델은 명실상부 바로크 극음악의 거장이자 18세기 영국 음악의 기준을 세운 대가였다. 헨델은 독일의 할레 태생이었지만 25세가 되던 해인 1710년 런던으로 건너가 평생을 영국에서 활동했다. 5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그가 선보인 수많은 걸작은 영국인들의 취향을 고양시켰고 영국 음악계의 수준을 한 층 높였다. 1685년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나 동갑 음악인으로 자주 비교되는 바흐가 독일을 벗어나지 않고 루터교의 겸손함이 깃든 교회 칸타타를 창작할 때, 헨델은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유럽을 누비며 화려한 오페라와 극적인 오라토리오를 무대에 올리며 정력적인 활동을 펼쳤다. 헨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는 승부사 기질을 가진 야심 넘치는 실력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 시즌마다 새로운 작품을 쉬지 않고 올렸으며 세네시노, 카레스티니, 부초니 등 이탈리아의 유명 가수들을 런던에 데려와 자신의 오페라 사단을 조직하는 열정이 있었으며, 뛰어난 친화력과 정무감각으로 왕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음악 활동을 펼쳤다. 자신감 넘치고 과시적인 면모도 있었는데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그런 과시욕 하고도 관련 있어 보인다. 특정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는 드라마틱하고, 왕실 행사 음악은 기품있고 우렁차다. 한마디로 런던에서 연주된 헨델의 음악은 영국을 비롯해 18세기 유럽 음악의 표준이 되었다.
관현악곡인 <왕궁의 불꽃놀이>는 화려한 볼꽃놀이에 걸맞게 웅장한 규모의 관악기가 대거 동원되었다. 마치 전쟁터의 군악대 같이 바순, 오보에, 트럼펫, 호른, 팀파니, 사이드 드럼이 대규모로 동원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관악기와 타악기가 속도감 있게 이끌어가는 선율이 불꽃 폭발의 감흥을 표현한다. 특히 이 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서곡 Overture'에서 타악기의 힘찬 타격을 배경 삼아 뻗어 나오는 황금빛 트럼펫의 선율은 매우 위풍당당하며 행사의 위엄을 한껏 드러낸다. 그린파크 같은 야외에서 이런 정도의 장대한 음향효과를 내려면 어느 정도의 악기가 동원되어야 할까? <왕궁의 불꽃놀이>는 바이올린, 첼로와 같은 현악기 보다 바순, 트럼펫, 호른, 오보에와 같은 관악기가 두드러지고, 타악기의 타격이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여타 다른 관현악곡과 악기 구성이 파격적으로 다르다. 이런 악기 구성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1749년 1월 14일 자의 <런던 매거진>에 "그린파크의 불꽃놀이에서 공연할 음악대는 트럼펫 40대와 프렌치호른 20대, 오보에 16대, 바순 16대, 팀파니 8세트, 사이드 드럼 12대. 적절한 플루트와 피리로 구성될 것이다. 그리고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100문의 대포들이 일정 간격으로 축포를 쏠 것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어떤 소스로 이런 기사가 작성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행사의 대략적인 규모와 그에 대한 대중적 기대를 알려주는 기록이다. 앙상블 구성에서 현악기는 모두 빠졌고 모두 군악대 수준의 관악기로만 구성되었는데 이 정도 규모의 관악 앙상블은 상식과 맞지 않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왕궁의 불꽃놀이>는 처음 공연할 당시 <호전적 악기를 위한 장엄 서곡 Grand Overture of Warlike Instruments>라는 제목을 달고 공연되었다. 실제로 들어보면 관악기가 고취시키는 기쁨과 승리의 기운이 매우 인상적인데 전쟁 종식후 조지 2세의 업적과 위엄을 드높이는 행사용 음악으로는 참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 연주에서는 <런던 매거진>의 기사처럼 악기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헨델은 주요 선율을 담당할 현악기를 넣으려 했고 관악기의 규모를 줄이려 했지만 국왕 조지 2세와 행사감독인 몬태규(Montagu) 공작은 관악기로만 구성된 군악대 수준의 장대한 음향 효과를 원했다. 헨델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왕실의 의견을 거절할 수 없었다. 불꽃놀이 당일의 첫 공연엔 현악기 없이 오보에 24명, 바순 12명, 트럼펫 9명, 호른 9명, 드럼 3명으로 구성해 연주했다. 이것만 해도 야외무대에서 웅장한 음향으로 불꽃놀이의 폭발을 극적으로 묘사할 정도의 규모의 앙상블이었다. 불꽃놀이 행사뿐만 아니라 헨델의 신작에 대한 관심도 상상을 초월했다. 1749년 4월 23일 <젠틀맨스 매거진> 기록에 따르면 복스홀 가든(Vauxhall Garden)에서 진행된 리허설에만 1만 2천 명의 관객이 몰려 대혼잡을 이루었고 런던 브리지의 마차 교통 체증이 심했다고 적혀있다. 물론 그린파크 행사 당일의 연주도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헨델은 나중에 현악기를 넣은 버전으로 작품을 개작했고 현재에는 이 버전이 연주되고 있다.
이 행사는 헨델의 음악뿐만 아니라 불꽃놀이를 위한 임시 구조물도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린 파크 한편에 무대화가 출신인 이탈리아인 조반니 니콜로 세르반 도니(Giovanni Niccolo Sevandoni)가 불꽃놀이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국왕 조지 2세의 부조와 올림포스 신들의 조각상으로 장식한 팔라디오 양식의 목조 건축물이었고 '평화의 신전'이라 불리웠다. 헨델의 음악 공연은 성공적이었지만 행사 진행은 썩 좋지 않았던 듯하다. 기록에 따르면 불꽃이 떨어져 구조물에 불이 붙었으며 날씨도 좋지 않아 놀이 자체는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아래에 소개된 아카이브 프린트물은 그 당시의 화재 현장을 에칭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어 화재의 현장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이하 해석 생략)
Being the night view of the royal fireworks, as exhibited in the Green Park, St. James's, with the right wing on fire, and the cutting away the two middle arches to prevent the whole fabrick from being destroy'd.'; below, four columns of verse: 'This grand machine, so fine and brave, / In great palladio you have:... But, lo! the structure's in a flame; / The D-l now has play'd his game.'; below, description headed: 'Remember the war, peace, and fireworks.'; publication line at bottom: 'London: printed for T. Fox, near Ludgate. (Price six-pence.)'
그런데 이 흥겹고 웅장한 음악을 조지 2세 시대로 되돌아가 그 시대의 영국 악기로 재현한다면 어떤 소리의 음악이 나올까? 헨델이 연주했던 악기와 방식 그대로 <왕궁의 불꽃놀이>를 되살려 볼 수 있을까? 이 호기심을 현실의 연주로 옮긴 지휘자가 있다. 프랑스의 지휘자 에르베 니케(Herve Niquet)는 영국에서 1749년 무렵에 사용된 악기 그대로를 고증해 18세기 방식으로 <왕궁의 불꽃놀이>를 연주해 녹음했다. 2008년 글로싸 레이블에서 제작한 이 음반은 고음악을 역사적으로 고증해 재현하는 시대악기 연주의 획기적이고 놀라운 시도였다. 지휘자 니케는 스스로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le concert spirituel) 악단을 창단해 역사적 연주방식을 연구하고 발표하고 있는데, 이 악단의 이름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최초로 열렸던 공공 연주회를 가리킨다. 18세기는 공공 연주회의 시대였고 음악 산업의 시대였다. 니케는 이 앙상블을 결성하면서 음악사의 역사적인 명칭을 악단의 이름으로 사용했고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영국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권위 있는 해석의 음반을 여럿 내놓았다. 그러면 니케가 21세기에 재현한 조지 2세 시대의 악기는 어떤 소리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가?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전체 음향에서 거친 질감이 느껴지고 현대악기의 매끄러운 소리보다는 공격적이고 질박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무래도 덜 개량된 악기의 소리라 매끈한 소리보다는 강인한 악기 음향 그대로, 금속과 목관의 단순한 구조에 호흡이 부딪쳐 나오는 힘찬 소리가 전체 사운드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으며 소리의 색깔과 기운이 다르고 독특하다. 그래서 에르베 니케의 <왕궁의 불꽃놀이>는 현대적 연주보다 음향이 까끌하고 뻑뻑하며 덜 레가토(leggato)적이어서 음과 음 사이가 분리되어 명확히 발음되고, 또 타격의 독특한 울림이 있는 쎈 소리를 들려준다. 이 곡이 처음 연주되었을 떄의 제목처럼 '호전적인' 기운이 가득하며 군악대의 파워풀한 에너지를 옮겨놓은 듯한 사운드이다. 현대악기에 익숙한 감상자는 그 꾸밈없는 민낯과 같은 음향에 당혹스럽겠지만 오리지널 고악기가 가진 색채와 질감은 향기로운 술상처럼 특이한 맛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니케의 새로운 시도는 18세기 런던의 사운드를 처음으로 재현한 연주로 평단의 지적인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 연주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현악기가 아니라 목관과 금관악기 고증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목관악기 제조의 장인 올리비에 코텟(Olivier Cottet)은 1749년 무렵에 런던에서 사용된 바순을 찾아다녔고 동시대 프랑스와 독일의 악기도 참조해 18세기 바순을 고증했다. 문제는 18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제작된 목관악기 중 현재까지 남아있는 악기가 희소하다는 것. 코텟은 그 시대 바순 제작자인 토머스 스탠비(Thomas Staneby)가 제작한 바순을 찾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바순과 콘트라바순, 오보에를 고증 제작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금관악기인 호른과 트럼펫이었다. 그 당시 호른(내추럴 호른)과 트럼펫(내추럴 트럼펫)은 구멍과 밸브가 없어 불기만 하고 입술 테크닉으로 음정을 조정하는 구조여서 낼 수 있는 음이 제한적이었고 정확한 음정을 내기 어려웠다. 니케의 연주를 들어보면 관악기의 불안정한 음이 위태롭게 들리는 부분이 있는데 연주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관악기 소리는 그랬다. 요새는 그 해결책으로 고악기에 지공을 뚫어 현대악기의 장점을 덧붙여 고악기를 개량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절충주의적 방법은 고악기 고유의 음향 밸런스를 해칠 위험이 있고 시대악기의 정확한 고증이라고 자랑할 수도 없다. 최근에는 고악기 연주법에 대한 많은 기술적 극복이 이루어져 18세기 금관 그대로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이 고안되었고 에르베 니케는 절충없이 고악기 그대로의 사운드를 고수했다. 아래 영상에서 연주되는 사운드는 18세기 런던의 악기 음향 그대로이다. 그런 노력을 통해 우리가 1749년 그린 파크에서 헨델이 지휘하던 그때 그 사운드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니케의 시도가 얼마나 지적인 영감으로 가득 차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의 호기심은 종종 무모해 보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차원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런던의 헨델을 사운드로 불러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hKXreOylrA
에르베 니케, 르 콩세르 스피리튀엘의 헨델 <왕궁의 불꽃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