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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Oct 07. 2021

기타의 나라 스페인

바로크 기타 음악 500년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스페인 기타 음악 500년 - 1집

연주자: 나르시소 예페스 (클래식 기타)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 (DG)



스페인을 여행하다보면 "스페인에 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 몇몇 있는데 이슬람 양식이 섞인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때, 타파스에서 중동의 향신료 맛이 날때, 그리고 클래식 기타를 둘러맨 악사들의 버스킹을 볼 때다. 이국적인 거리에 울려 퍼지는 쏘르, 알베니즈, 산츠, 파코 데 루치아의 곡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여기는 스페인이야'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언젠가 바르셀로나의 고딕지구를 돌아다니다 파코 데 루치아의 곡을 연주하는 듀오 기타리스트를 보았다. 속주가 대단했고 고닥지구의 고풍스런 골목과 기타 음악이 어우러져 그 정취가 환상적이었는데 여행 중 가장 스페인다운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또 우디 앨런이 바르셀로나에서 찍은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 보면 ‘스페인 정원의 밤’에서 알베니즈의 기타곡 <그라나다>가 연주되는 장면이 나온다. 여주인공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히고 기타 선율이 밤의 분위기를 타고 사랑의 감정으로 연결되는 장면은 스페인 기타 음악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 여름의 향기, 기타의 떨림음에 담긴 아라비아의 향신료 냄새가 스페인 기타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에서 만난 기타 연주


위대한 기타리스트 타레가와 세고비아의 나라. 클래식 레퍼토리부터 정열적인 플라멩코 기타 음악까지 스페인 음악의 보고는 기타에 있다. 20세기 위대한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는 스페인 기타 음악 500년을 정리하는 음반을 1968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2장에 걸쳐 녹음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그중 1권으로 16~18세기 스페인 기타 음악을 다루고 있다. 알론조 무다라(c.1510~1580), 루이스 밀란(1500~1561), 루이스 데 나바레즈(fl.1526~1549), 디에고 피사도르(1509~1557), 가스파르 산츠(1640~1710), 안토니오 솔러(1729~1783)의 기타곡을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음악가들의 이름만 봐도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스페인 기타 음악의 핵심만 모은 음반이다.


왜 기타 음악은 유독 스페인에서 발전했을까? 중세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했던 무슬림 왕조의 문화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손으로 뜯어 연주하는 발현악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기타와 유사한 현악기는 중세 아라비아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베리아 반도에 무슬림 왕조가 세워졌을 때 그들을 통해 스페인 대륙에 유입된 아라비아의 우드, 레밥, 기턴 등 기타와 유사한 아랍의 현악기는 유럽으로 퍼져나가며 개량, 변형되었다. 15-16세기 스페인에서 제작된 비우엘라(vihuela)는 기타의 조상쯤 되는 악기였다. 이 음반에 포함된 16세기의 작곡가 무다라, 밀란, 나바레즈, 피사도르는 비우엘라 연주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시기 비우엘라 곡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악보 출판이 성황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곡들은 원래 비우엘라를 위해 쓰여진 곡이었지만 현재는 기타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또 비우엘라의 뒤를 잇는 좀더 개량된 형태의 기타인 바로크 5현 기타가 스페인에서 개발되었고 17세기에는 가스파르 산츠라는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클래식 기타 교본을 출판한 사실로 볼 때 이미 스페인은 오랜시간동안 기타 음악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라비아의 현악기 레밥은 유럽 현악기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 원조격인 악기인데 8~15세기 무슬림 치하의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널리 연주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라비아 레밥의 전통이 비우엘라, 비올, 기타로 연결되면서 스페인에서 기타 음악이 발전한 이유라고 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르네상스 기타가 등장한 이후 비우엘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악기의 크기와 현의 갯수 등 개량을 거듭하며 현재 기타의 모습과 가깝게 발전하게 된다. 기타 형태의 발전에도 스페인이 끼친 영향이 큰 것이다. 게다가 프란시스 타레가, 안드레아 세고비아와 같은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등장해 기타의 현대적 주법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것도 스페인 음악 전통의 저력이었다. 스페인의 국민 작곡가 로드리고는 <아랑훼즈 협주곡>,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처럼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기타의 가능성을 최고조로 올려놓은 예술가이다. 위대한 기타리스트가 스페인에서 여럿 배출된 이유도 그들의 문화 속에 오랫동안 기타의 전통과 문화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핀투리키오가 그린 비우엘라 연주자(1493)


알폰소 무다라의 <판타지아>는 귀여운 악상과 단조롭게 반복적인 구조가 초기 기타 음악의 순박한 모습을 짐작케 한다. 무다라는 세비야에서 활동하면서 비우엘라 뿐만 아니라 기타를 위한 곡들도 다수 남겼다. 발렌시아에서 활동한 루이스 밀란은 비우엘라 곡을 최초로 출판한 음악가로 그의 <파반느> 역시 소박한 기타 울림과 단출한 구성이 예스러운 멋을 머금고 있다. 최초 출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비우엘라-기타의 전통이 이미 스페인에서 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라나다 태생의 데 나바레스의 곡 <황제의 노래>, 피사도르의 <비야네스카>는 목가적이고 애상적인 아름다움, 민요풍의 서민적 감수성이 느껴진다.  가스파르 산츠는 로드리고가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작곡했을 때 그 '귀인'의 모델이 되었던 기타리스트로 17세기에 [스페인 기타 음악 교본] 3권을 출판해 기타 교습의 기초를 정립했다. 그의 <에스파냐 모음곡>은 규모로 보나 음악성으로 봤을 때 이 음반의 절정을 이루는 레퍼토리로 기타는 물론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로도 편곡되어 대중적으로 많이 연주되는 곡이다. 가이야르, 에스파놀레타, 파사칼리아, 폴리아, 카나리오스 등 옛 스페인의 춤곡들이 펼치는 멜로디는 아라비아의 문화가 스며든 스페인 특유의 토착 내음을 물씬 풍긴다. 산츠의 이 작품과 함께 로드리고의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같이 감상하면 스페인 기타 음악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안토니오 솔레르의 소나타는 건반악기가 원곡인데 이를 예페스가 기타로 편곡했다.


이베리아 반도는 여러 문명의 음악이 교차하는 용광로이고 아랍, 유럽, 집시, 유대의 음악이 이 지역에서 섞이며 퓨전 음악을 만들어냈다. 한때 무슬림 왕조의 수도였던 스페인 남쪽의 고도 코르도바에 가면 메스키타라고 불리는 성당이 있다. 이슬람 사원이었다가 그들이 반도에서 물러나 가톨릭 왕조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가톨릭 성당으로 용도변경되었다. 하지만 건축과 실내장식에서 이슬람 양식은 그대로 유지하고 그 바탕에 가톨릭 양식을 섞었다. 그 결과 이슬람과 가톨릭 양식이 묘하게 섞인 희귀한 사원이 탄생했다. 스페인 기타 음악도 이와 같다. 선법과 꾸밈음 어딘가에 아라비안 나이트같은 감성이 숨어 있다. 스페인말고 유럽 음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귀한 매력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 - 이슬람 양식의 열주와 가톨릭 성화가 공존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JTepTqFJhc

가스파르 산츠의 곡을 연주하는 나르시소 예페스


https://www.youtube.com/watch?v=ZXobDtwM3dA

가스파르 산츠의 '카나리오스'를 연주하는 나르시소 예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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