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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26. 2021

맑고 순수한 이탈리아 리코더 음악

바로크 리코더의 의미와 예술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이탈리아 리코더 소나타

연주자: 프란스 브뤼헨(리코더), 안너 빌스마(첼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하프시코드)

레이블: 텔덱 (Teldec)




이 음반은 리코더가 악기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바로크 시기, 유럽 음악의 유행을 선도했던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창작한 리코더 소나타를 모았다. 이 음반 한 장이면 최고의 리코더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프란스 브뤼헨이라는 걸출한 리코더 명인의 연주로.


리코더는 16-18세기에 인기의 절정을 달리던 악기였지만 점차 트라베르소(가로 플룻)가 인기를 끌고,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서는 큰 음량의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선호되면서 점점 인기를 잃게 된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고음악 원전연주 붐이 일면서 엣 주법을 복원한 리코더 연주가 다시 횔발해지게 되었다. 유럽에서 플루트는 피리처럼 부는 목관악기 전체를 일컫는 용어다. 리코더 역시 플루트로 표기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플루트, 부리 모양의 플루트 등 나라마다 다른 명칭을 리코더에 붙여 현대 플루트와 이름을 구별해 부른다. 리코더의 기원은 명확치 않은데 피리 형태의 목관악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금의 리코더 형태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 장르화를 보면 리코더가 등장하는 그림이 많은데 대부분이 리코더의 청아한 음색, 마음을 흔드는 음악의 힘을 시각적으로 알레고리화해 표현한 그림이다.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테르브뤼헌(1588-1629)의 그림 <리코더를 연주하는 소년>(1621)을 보면 그 맑고 시원한 음색을 푸른색의 옷 색깔로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그림은 특이한 그림인데 연주자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특정한 이야기도 없다. 단지 연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나의 정물처럼 포착해 그렸다. 인물화라고 보기엔 어렵고 오히려 정물화에 가깝다. 배경도 갈색 벽으로 단조롭게 처리하고 명암 대비를 넣어 연주자가 배경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연출했는데 그 중에서도 푸른색과 흰색의 부푼 옷소매가 가장 밝은 빛을 받으며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게 돌출되어 있다. 크기도 그림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 소년의 얼굴보다도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푸른색 옷소매가 그림의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푸른 옷소매를 입은 인물을 정물화처럼 그렸다. 따라서 사람이 아닌 사물이, 푸른 옷소매가 주인공이다. 테르브뤼헌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 강렬한 명암 대비를 통해 극적인 그림으로 명성을 떨쳤던 카라바지오(Caravaggio, 1571-1610)를 만났는데 그의 화법에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에서도 그런 류의 그림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테르브뤼헌이 활동하던 도시 유트레히트(Utrecht)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화파를 유트레히트 화파라고 부른다. 


악기와 음악은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중요한 소재였는데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을 상징하기도 하고, 로맨틱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며, 유혹과 정욕의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그림 속에 나타날 때도 있었다. 이 그림은 그림의 중심에 자리잡은 푸른색과 흰색 소매의 청량한 시각적 느낌을 리코더의 청아한 음색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색을 통해 청각(음악)을 묘사하는 추상적 공감각이 그림 속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유사한 예로는 베르미어의 <플루트를 들고 있는 여인>(1665-1675)의 그림이 있는데 그림 속의 여자는 플루트를 들고 푸른색의 옷을 입고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푸른색의 청아한 음색을 리코더 소리로 느꼈던 것일까? 실제 리코더 음색은 매우 맑고 시원해 푸른색과 유사한 공감각적 느낌이 있다. 유럽인들은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는 리코더 음색에는 마음을 홀리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타미노 왕자의 호신용 피리가 그 한 예인데, 우리에게도 비슷한 예로 '만파식적'이라는 <삼국유사>에 소개된 유명한 피리 설화가 있지 않은가. '만 개의 파도를 잠재우는' 주술적인 평화의 소리가 바로 피리 소리인 것이다.


그 주술적인 힘은 매우 디오니소스적이다. 연인을 홀리는 마법의 소리이고, 술처럼 이성을 마비시키는 취기의 소리이며, 마음을 건드리는 감정의 소리이다. 이 모든 디오니소스적인 에너지는 사실 음악이 가진 힘이다. 음악은 우리의 마음을 쥐락펴락하지 않는가? 유럽인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리코더의 음색을 음악의 힘 자체로 생각하고 음악이 가져오는 감정적 동요를 초자연적인 힘과 동일시한 것 같다. 과연 리코더의 신묘한 소리를 들어보면 설득력있는 설명이다. 동시에 리코더는 목가적인 아름다움, 목동들의 악기를 상징하며 시골 풍경이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 아르카디아와 같은 이상향을 그리는 곡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테르브뤼헌, <리코더를 연주하는 소년>, 1621


베르미어, <플룻과 여인>, 1665-1675


이 음반에는 이탈리아 리코더 음악의 정수가 담겨 있다.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 프란체스코 바르산티(1690-1772), 프란체스코 마리아 베라치니(1690-1768), 베네데토 마르첼로(1686-1739) 등 17세기 이탈리아 대가들의 리코더 소나타를 한데 모았다. 코렐리의 곡 처럼 일부는 바이올린 소나타가 원곡이고 이를 리코더로 바꿔 연주한 곡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17세기 태생의 이탈리아 음악가들은 고전 소나타 양식을 완성하고, 그 음악적 표현 기교를 최고로 끌어올린 작곡가들로 유럽 전역에서 이탈리아로 유학와 이들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그 반대로 이들이 유럽의 다른 도시로 이주해 활동하며 유럽 전체의 음악적 양분을 풍부히 했다. 베라치니는 에딘버러에서, 바르산티는 런던에서, 마시티와 같은 음악가는 파리에서 활동했다. 그중 코렐리는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큰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그 명성을 떨쳤다.


이들의 어려운 이름은 뒤로 하고, 일단 음반을 들어보자. 리코더의 곱고 맑은 음색이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참 신묘하고 신비스런 음색이다. 단조의 곡에서는 구슬픈 음색이 하멜른 사나이의 피리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장조의 곡이라면 나이팅게일의 노래처럼 지저귀는 듯 하다. 20세기 두 명의 걸출한 리코더 연주자를 꼽으라면 단연 네덜란드의 프란스 브뤼헨, 그리고 덴마크의 미칼라 페트리를 들 수 있다. 이 음반의 리코더 연주는 프란스 브뤼헨이 했고 첼로의 안너 빌스마, 하프시코드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도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네덜란드의 고음악 연주자들이다.  브뤼헨은 20세기 리코더 부흥을 이끈 연주자 중의 한 명으로 뛰어난 기교와 음악성으로 옛 바로크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해 칭송받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음반의 시작은 코렐리의 유명한 '라 폴리아' 변주곡이다. 원래는 바이올린 소나타로 발표되었지만 리코더 등 악기를 달리하며 여러가지 방식으로 변주되고 연주되며 인기를 끌었다. 하프시코드 반주에 얹혀 흐르는 청명한 소리, 빠른 혀놀림의 속도감과 리듬감이 오래된 전설을 들려주는 목소리 마냥 분위기 있게 펼쳐진다. 바르산티와 베라치니의 소나타 중 느린 악장은 심신을 편안하게 이완시킬 정도로 목가적인 선율이 돋보인다. 마르첼로의 소나타 2번의 라르고 악장도 목가적인 아름다움이 비길데 없이 훌륭하다. 마치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 속에 그려진 피리부는 목동이 현실로 튀어나와 연주하는 듯 하다. 소리의 색깔은 시원한 푸른색이고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초록빛 들판의 시골길이다.


프랑수아 부셰, <목가적 음악>, 1743


이 전원풍의 리코더 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음반에는 모두 8곡이 실렸지만 이 8곡의 무드는 대게 비슷하다. 느린 악장은 목가적이고, 빠른 악장의 약동하듯이 튀어오르는 리코더의 맑은 소리가 꾀꼬리처럼 들려 마치 숲 속에 들어온 듯한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시골적 분위기, 전원 풍경을 연상시키는 파스토랄(pastoral) 감수성은 시골을 마음의 이상향으로 삼은 유럽 귀족문화와 관련이 있다. 당시 귀족의 저택이나 왕실의 연극무대에는 물레방아 등이 설치된 시골풍 무대에 목동 분장을 한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이 자주 올랐다. 또한 목동을 소재로 삼은 많은 그림들이 이런 연극 무대를 모방해 로코코풍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전원 생활을 찬양하는 '아르카디아' 문화의 유행은 복잡한 정치나 궁정생활에서 벗어나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상류층의 열망이 담긴 문화적 현상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베르사이유궁 근처에 오두막집을 짓고 이런 전원 생활을 모방하곤 했다.


사실 귀족들의 사치스런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실제 시골 생활은 노동과 궁핍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이 아무리 목동의 옷을 입고 피리를 불어도 그것은 낭만적 판타지였을 뿐이다. 어쨌든 그들의 전원 판타지에서 리코더는 그 환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악기였던 것 같다. 위의 프랑수아 부셰의 그림에서 목동이 들고있는 피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울타리 안에 양들이 있고 목동이 피리를 불고 그의 연인이 다정하게 눈을 맞추고 있다. 17-18세기 네덜란드부터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리코더는 음악의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목가적 이상향을 그리는 악기였고, 악기의 인기는 최고를 누리게 된다. 이 음반은 그러한 리코더의 이상이 이탈리아 음악 속에 완벽하게 녹아든 명반이다. 물론 프란스 브뤼헨이라는 리코더의 명인도 빼놓을 수 없다. 눈을 감고 시골의 풍경을 떠올리게 리코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NSm0tejTXZg

프란스 브뤼헨 (리코더), 구스타브 레온하르트 (하프시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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