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새벽이었다 아직 동이 트기 전에 칙칙한 남색의 하늘을 보며 일어났다.
알람도 아침도 깨어나지 못한 새벽
헝클어진 머리 위에 검은 캡모자를 쓰고 가벼운 바람막이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뿌옇게 피여있는 안갯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다시 달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지 아니면 쫓기며 달리는 건지 모를
정도로 뛰다 서다를 반복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기 직전에 멈추어서
근처 밴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뿌연 안갯속에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누군가의 형체가.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이번엔 누군가를 쫓고 있는 사람처럼 뛰어오았다.
이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왔을 때 보았던 네 얼굴은
발그스름하게 상기되어서는 나를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안개 때문에 젖은 옷 위로 바람막이를 걸쳐주며 싱긋 웃어 보였다.
너도 날 보며 웃음으로 화답하듯이 활짝 웃어주었다.
하늘엔 태양이 떠오르며 남색이던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어갔다.
하늘을 보니 더 고민에 빠져 갔다.
날 위할 수도 그렇다고 널 위 할 수도 없는 끝없는 고민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너는 내 주위에서 아침을 알리는 작은 새처럼 쫑알쫑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아니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너는 내 주위를 돌아다니며 새벽을 만끽했지만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고뇌에 빠져만 갔다.
그러다 네가 내손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잡고 날 보며 미소를 지었을 때 알았다.
넌 하늘이었다 너와 나까지도 품을 수 있는 커다란 하늘이었다.
내 손을 잡고 뛰기 시작한 네 얼굴엔 행복이 가득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 웃음은 너랑 나를 더해서 '우리'가 되었음을 기뻐하는 웃음일 거다.
네가 크다고 느낀 건 너는 빛나게 네 삶을 살 수 있어서였고
너는 대범하게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와 줘서였다.
나라는 삶에 찌들어 살아가는 사람이 널 품에 안기에는 무척이나 컸다 하지만 놓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