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같았다

턱이 없는 거리

by 가을강사

대학교 때 교육학 교수님이 수업 중에 "나는 장애인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강의실이 술렁했다. 교수님은 안경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자신은 "안경"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어떤 장치의 도움없이 살수 없는 사람이 장애인이라며 안경을 낀 사람도 장애를 가진 것이라며 장애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수 있다고...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1997년, 한 NGO 단체애서 장애인의 외출을 돕는 차량 서비스를 하는 것을 보고 신선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장애인을 거리에서 볼 기회는 적었다. 장애인이 없어서일까? NO,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은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심리적 장벽으로 사회 속으로 들어 올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가 98년 전에 일본에 갔을 때 놀란 것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장애를 가진 분들이 거리에 많이 보였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시는 분, 다운증후군을 가진 분들 등등 그러면서 일본이 선진국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도로 곳곳에 턱이 없는 구간이 있었고,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혼자 다니는 사람도 많았지만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다운증후군 아이들도 종종 보였다. 일본은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닌다.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미술교실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엄마는 쎄련되고 우아했다. 한번은 그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아기를 낳고 다운증후군이라는 걸 알았을 때 주위 반응이 의외였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모두 '네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늘이 이 아기를 너에게 맡긴 거니까 잘 키우라'고 격려해서 출산 직후 바로 본 아기의 모습을 보고도 실망하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당시 일본은 출산전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았다. 그 엄마는 아기가 건강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태어날 아기에게 갖는 부모의 기대와 희망이 어떠한가!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 저렇게 대응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첫째 딸의 일본 소학교에서 함께 독서 자원봉사를 엄마, 그 엄마의 딸 역시 다운증후군이었다. 딸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사랑이 가득했고,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딸이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두 엄마 모두 더 이상 자녀를 낳지 않았다. 아마도 한 명을 키우는 것만으로 힘들였을 것이다. 같은 미술교실에서 친하게 지낸 또 다른 엄마의 아들은 성격발달장애가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아이들끼리 약간의 다툼이 있을 때 유독 크게 반응하는 걸 보고 알게 됐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부모들 곁에서 지내면서, 거리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자주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허물어졌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막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였다. 함께 지내다 보니 '그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휠체어로 다니고 나는 두 다리로 다니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나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인을 분리하고 나누기보다는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해 본다. 완벽한 세상은 없지만, 장애와 비장애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벽을 조금 낮추면 좋지 않을까.


같은 미술교실에서, 같은 거리에서, 같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것.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는 것.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턱 없는 도로만으로 충분할까.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고 해서 함께 사는 세상이 될까. 미술교실에서 만난 그 아이들이, 지하철에서 본 그 사람들이, 우리의 거리에도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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