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말을 걸어왔다

익숙함은 투명하다

by 가을강사

유현준 교수의 유튜브를 보다가 멈칫했다. "일본 집들이 한국 집보다 다양하다"는 말에, 17년을 살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알던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일본 건축가가 점점 더 완성도 높은 집을 지어가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은 아파트 몇 천 채를 지어도 같은 도면 하나면 충분하니 건축가가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 건축가들은 일감 구하기 어렵고, 경험을 쌓을 기회도 적다. 반면 일본은 단독주택이 많아 건축가들이 꾸준히 일할 수 있고, 설계대로 정확하게 시공하는 기술도 좋아서 완성도 높은 건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건축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유튜브를 한다고 했다. 공감이 갔다. 그리고 유명한 건축상을 받은 한 건축가조차도 일감이 없어서 결국 귀농을 선택했다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딸의 졸업식 때문에 일본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동안 그저 익숙하게만 지나쳤던 거리가, 그날따라 다르게 보였다. 유현준 교수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일본의 집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하나같이 달랐다.

일본에서는 단독주택을 '잇코다테(一戸建て)'라고 부른다. 지진 때문인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은 고층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을 선호한다. 집의 골격은 대부분 나무로 짓는다. 지진이 나도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골목을 걷다 보면 집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색부터 시작해서 외관의 구조가 모두 다르다. 어떤 집은 목재 루버로 외벽을 감싸고, 어떤 집은 콘크리트 위에 일본 식 창을 냈으며, 어떤 집은 2층 발코니가 툭 튀어나와 있다. 설계한 사람도, 짓는 방식도, 사는 사람의 취향도 모두 다르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한국이라면 '00 아파트 3차' 정도로 불렸을 풍경이, 여기서는 수십 개의 고유명사를 가진 집들로 채워져 있었다.


일본에는 한국처럼 아파트가 몇십 동씩 늘어선 단지가 없다. 대신 개인 소유의 '맨션(マンション)'들이 골목마다 흩어져 있다. 맨션은 우리가 '아파트'라고 부르는 양질의 공동주택을 가리키는 일본식 영어다. 서구에서 '아파트'가 다소 낮은 등급의 주거를 뜻하다 보니, 일본은 '아파토(アパート)'라는 말을 시설이 좀 떨어지는 건물에만 쓴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나는 맨션을 회사 빌딩으로 착각했다. 1층은 깔끔한 로비처럼 꾸며져 있고, 외관도 사무용 건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를 올려다보니 베란다가 보였다.

일본은 지진 때문인지 베란다에 샷시나 통유리를 거의 달지 않는다. 그래서 베란다 난간이 그대로 보인다. 그게 주택과 오피스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표지였다. 보이시나요? 앞 건물과 뒷 건물의 차이가.



동경 시내 어느 맨션의 입구는 호텔 로비 같았다.


길가에 늘어선 건물들도, 아래만 보면 상업 건물인지 주거 건물인지 구분이 잘 안 됐다. 고개를 들어 베란다를 확인해야 비로소 '아, 여기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그 베란다들은 저마다 달랐다. 빨래가 걸린 곳도 있고, 화분이 놓인 곳도 있고,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곳도 있었다. 건물의 외관도 각양각색이었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처럼 같은 색, 직사각형의 상자가 맞춰 서 있는 풍경은 없었다.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걷다 보니, 문득 늘 보던 풍경을 신기해 하는 내가 이상했다.

17년을 살면서 매일 지나쳤던 이 거리가, 오늘은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까?. 왜 새롭게 느낄까? 집들은 그대로 인데, 그 집들을 보는 내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 익숙함은 투명하다. 너무 익숙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17년 동안 나는 일본의 집들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쓴 적이 별로 없었다. 아파트 단지 이름만 알면 됐으니까. 몇 동 몇 호, 그게 전부였다. 주소가 곧 풍경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집마다 얼굴이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지어졌어."

"우리 집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

"여기 사는 사람은 햇빛을 많이 받고 싶어해."

집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보는 풍경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같은 모양의 건물들 사이에서 자라난 생각과, 저마다 다른 집들 사이에서 자라난 생각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람들은 다양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기후 위기 이후로는 특히 그렇다. 생물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 생각의 다양성. 다양성이 사라진 생태계는 쉽게 무너진다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그런데 건축 양식의 다양성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일본의 단독주택들과 우리의 아파트 단지를 나란히 떠올려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공간도 하나의 생태계가 아닐까. 같은 모양의 건물들이 끝없이 복제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다양성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집이라는 게,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는 창이라면. 그 창들이 모두 같은 모양이라면? 일본의 집들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우리에게도 저런 풍경이 필요하다고.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집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거리가.


17년을 일본에서 살고 귀국한지 10년차에 새삼 이런 생각이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글엄마, 김밥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