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오마카세 안 가본 사람 여기있어요
수산물 회사 에디터로 입사한지 어언 1년 반. 수많은 수산물과 일식 정보들을 접하며 쌓아온 다양한 지식들이 때론 피부로 직접 느낀적 없는 '無경험'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누구보다 솔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 이번 '오마카세' 콘텐츠는 아무리 많은 관련 영상, 기사, 칼럼을 읽어보아도 전혀 느낌이 오지 않았다. 왜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오마카세.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안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3년 전만 해도 오마카세는 굴지의 하이엔드 호텔 일식당에서나 즐길 법한 곳이었다. 지금은 비교적 가격대가 낮은 곳도 많이 생겨났고,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켜면 오마카세에 다녀왔다는 사진과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첫 오마카세 D-1시간, 갑자기 밀려온 공포심과 과민성대장증후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공포에 떨었냐고 한다면, 그냥 처음이기 때문이다. 흡사 백화점이나 비싼 미용실에 가기 전 묘하게 긴장되는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온갖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몰라 버벅대는 내 자신이 호구 취급을 당하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 대부분 사람들이 한 번쯤은 느껴 봤을 감정일 것이다. 더군다나 혼자서 비싼 오마카세를 처음 가보려니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찾아왔다.
오마카세는 예약제다. 당연한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난 정말 몰랐다. 그냥 다른 식당에 가듯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심지어 몇몇 유명한 오마카세의 예약은 너무나 힘들어서 스시 + 수강신청 두 단어를 합친말, 일명 '스강신청'이라는 신조어까지 존재한다. 어쨌든, 카운터석은 제한되어 있고 횟감은 그날 사용할 만큼만 준비하니, 어플 혹은 전화를 통해 원하는 날짜에 꼭 예약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테이블링'이라는 어플을 사용해 예약을 했다.
보통 런치, 디너로 나눠져있고 각각 2부제로 진행되기에 스강신청을 완료하면 예약한 시간에 맞춰 가면 된다. 노쇼 방지를 위해 웬만한 오마카세는 예약금을 받는다. 2부 타임을 예약할 경우, 앞타임의 식사가 덜 끝나면 미리 입장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너무 일찍 갈 필요도 없고, 너무 늦어서도 안된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가는게 가장 좋다. 예약할 때 못먹는 재료가 있다고 미리 얘기하니, 다른 재료로 대체해주었다.
런치(60,000원) 미들급 오마카세 1부로 예약하여, 매장에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사람들이 바글거렸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편안한 조명에 공간도 협소하다 보니 긴장감 보다는 아늑한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더군다나 셰프님은 처음, 그것도 혼자서 오마카세를 방문한 나를 더욱 세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짠해 보였나..?) 어떤 오마카세를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첫 오마카세를 혼자 방문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12개 정도의 순서로 요리가 준비되어 나왔다. 새우가 들어간 계란찜을 시작으로 전복내장을 곁들인 전복찜, 다시마 숙성을 시킨 도미 사시미, 두릅튀김, 7개의 스시, 마지막 디저트까지. 그 중에서도 낯익은 녀석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콘텐츠 제작을 위해 마주했던 잿방어, 고등어, 전어, 단새우.
잿방어는 10~11월 시기가 제철이긴 하지만 연중 맛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에 겨울에 먹었던 잿방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숙성이 조금 과하게 되지 않았나는 아쉬움은 남았다.
이전에 전어 관련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전어는 스시집 셰프들이 손질하기 가장 까다로워하는 생선으로 불린다. 괜시리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입으로 집어 넣었다. 잔가시가 많은 생선임에도 손질과 초절임이 적절히 되어 굉장히 부드럽게 씹혔고, 세꼬시 회로 먹었을 때와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어 손질하기 힘들죠?"라며 아는 체를 하니, 셰프님도 학을 떼며 손질하기 제일 까다로운 생선이라고 하셨다(ㅋㅋ)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두릅튀김. 두릅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어만 봤지, 이렇게 튀겨 먹으니 향긋함과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져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고, 튀김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튀겼냐이다. 튀김 옷 없이 깔끔히 튀겨 겉은 바삭하지만 베어 물었을 때 두릅의 향이 그대로 느껴져 "어떻게 이렇게 튀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론적으로, 주는대로 받아 먹는 거 되게 좋다. 단순히 주는 것만이 아닌, 음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셰프의 정성을 받아 먹는 것 같았다. 이래서 오마카세 오마카세 하나보다.
스시를 제대로 못집어 밥알이 자꾸 분리되는 것을 본 셰프님께서 손으로 먹어도 된다고 하셨다. 아무리 그래도 손으로 먹으라니... 라고 생각 안해도 된다. 원래 스시는 손으로 먹는 음식이기에.
셰프님께서 손으로 먹을 경우, '데부끼'라는 물수건을 주겠다고 하셨다. 사진 속 물수건은 '오시보리'라고 식전 손 전체를 닦는 용도이고, '데부끼'는 손으로 스시를 먹을 때 밥알에 손에 묻지 않도록 살짝 닦는 용도의 물수건이다. 네일아트 때문에 손톱이 길었던지라 위생상 젓가락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했더니, 스시의 가장 아랫부분을 수평으로 집으면 샤리(밥)와 네타(밥 위에 올라가는 재료)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팁을 전수해주셨다.
오마카세 리뷰를 보며 알게 된 사실. 준비된 식사가 끝나면 '앵콜 스시'라는 이름으로 고객이 한 번 더 먹고싶어 하는 스시를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다. 가장 맛있었던 스시나 한 번 더 맛보고 싶은 스시를 요청하면 되는데, 나는 '청어스시'를 요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식감에 청어 특유의 풍미와 시소의 어울림이 상당히 감동적이었으므로, 이건 무조건 한 번 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내가 간 오마카세엔 앵콜스시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스럽기까지 했지만, 나중에 검색하여 찾아 본 결과, 앵콜스시는 셰프의 재량이라 주지 않는 곳도 많다고 한다. 혹시, 오마카세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앵콜 스시가 없다해도 너무 서운해 마시길... 원칙적으로 스시를 추가하면 추가요금이 발생되고, 앵콜스시가 없지만 한 번 더 먹고싶은 스시가 있다면 미리 확인 후 추가하여 먹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갈래 오마카세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손님과 소통하며 가게를 운영하는 영업 특성상 이곳은 친절할 수밖에 없다. 특히, 평일 런치 1부라 사람도 없었고 네일숍에서 네일 받으며 수다떠는 기분으로 셰프님과 이런저런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번 경험해봤다고 으쓱거리며 쎈척하는 것 처럼 보일테지만, 가기 전 왜그리 잔뜩 긴장을 했나 싶다. 또 갈래 오마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