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여기가 아닌가봐
어떻게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어?
수산물 회사를 다니면서 유명한 바다라면 이곳저곳을 다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질문 한 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휴가로 바닷가 가려는데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한 것이다.
일 이기는 했지만, 그 좋다는 바닷가를 수도 없이 돌아다니면서 흔한 인증샷 하나 남긴 게 없었다니..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사실 출장이란 건 지극히 단순한 반복이다. 이른 아침 몸을 싣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되고, 그럼 야간버스를 타고 돌아오기 바쁘고...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턴 "여기에 나중에 놀러 와야지""이거 꼭 먹어봐야지" 하는 희망 사항을 습관처럼 되뇌었다. 그렇게 정한 첫 번째 장소.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하면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그중에서 나는 "원조 부산어묵은 뭐가 다를까?"가 항상 궁금했다. 그 궁금증 하나를 풀 심산으로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원조 부산어묵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 결과 3대어묵 제조회사가 있음을 알게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삼진어묵 본점으로 찾아가기를 마음먹었다. 한여름 날씨에 가는 경로도 만만치 않아서 같이 간 지인이 "그냥 주문해 먹어."라며 끊임없이 날 설득했다. 하지만 결국 "어묵의 성지에서 먹으면 분명 다를 거야"라는 믿음 하나로 방문을 결정했고, 내가 원하던 어묵을 입에 물 수 있었다. 그때의 감상을 가감 없이 적어보려 한다
청담의 카페가 생각나는 첫 인상
"여기 맞아?" 상상과는 다른 모습에 당황했다.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연구실에서 하얀 위생복 차림의 직원들이 열심히 특산물을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편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깔끔한 베이커리를 닮아있었다. 일단 너무 시원했던 것은 덤이다.
신기했던 것은 이곳이 "어묵 박물관"이라는 점인데, 실제로 매장 곳곳 어묵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모형이 있었고 위층에는 어묵 만들기 체험과 역사 박물관을 운영 중이었다. 이날 우리는 어묵을 맛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용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부산을 방문했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꽤나 이른 시간부터 방문했음에도 주차장도 매장도 손님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자리가 다 차기 전에 식사를 끝낼 수 있도록 부랴부랴 어묵을 골라잡기 시작했다.
나 어묵 좋아하네...?
아마 여행 중 가장 고민했던 순간이 바로 이때였지 싶다. 평생 어묵이라곤 반찬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어묵들이 사방팔방에 다 깔려있으니 눈이 휙휙 돌아갔다. 심지어 어묵을 안 좋아한다고 오기 싫다던 친구도 어느새 한 쟁반 가득 고르고 있었으니 말 다 했지. 물론, 종류는 다양해도 기존 요리에 주인공을 어묵으로 바꾼 메뉴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이게 또 묘하게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좋았던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꼬치 어묵류였는데, 저 케첩.... 먼지가 앉은 채로 표면이 많이 말라있어서 집어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여름이라 에어컨을 틀어서 그런지 어묵이 차갑기까지 했다. 그래도 점원에게 물어보길 먹는 장소에서 조리가 가능 다고 하여 구매했다.
우린 가게를 두 바퀴 이상 돌고 나서야 고민 끝에 고추튀김어묵, 크로켓 3종 세트, 즉석 어묵컵을 선택했고 계산 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디서 먹으라구요...
정말 열심히 건물을 돌아다녔는데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맨 후에야 점원에게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식사 공간(알고 보니 다른 건물 1층이었다). 그곳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놀랍게도 "편의점 같다"라는 것이었다.
1열로 늘어선 전자레인지와 음료수 자판기, 정수기. 순간 아차 싶었다. 2만 원 정도의 어묵 양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 어묵을 먹기 위해 15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조리"를 해야 했다. 물론 조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점원분이 한 분 상주해 계셨지만, 그 많은 손님을 전부 응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덕분에 우린 서너 번의 실패 끝에야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고생끝 행복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다행히도 어묵의 맛은 그걸 잊을 정도로 훌륭했다. 어육 부분은 다소 단단한 식감의 부들어묵과 같은 식감이었는데, 씹을수록 어묵의 단맛이 배어 나와 시시각각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크로켓 같은 경우 치즈, 감자 등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생긴 것은 같지만 서로 다른 음식을 먹듯 골라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어묵도 맛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즉석 어묵컵 이었는데, 심심할 것 같았던 국물에서 진한 꽃게 맛이 여름밤 포차에서 먹었던 오뎅탕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쉬웠던 것은 저 고추 어묵 튀김이었다. 맛은 있었으나 활어회 초밥 같다고 할까, 몇 번 씹다 보면 어묵만 입안에 남아 큰 매력을 느끼기 힘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감상이었다. 튀김옷들도 바삭하지 않았는데, 조리방법이 전자레인지뿐이라 눅눅해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좋았던 것은 남다른 포만감이었다. 양이 적어 금방 배고플 줄 알았지만, 그날 여행 동안 배고픔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한 번은 오케이, 두 번은 NO
분명 이곳을 와야지만 먹을 수 있는 특이한 어묵이 있다는 점에서 방문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구매한 어묵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선물용을 구매하려 했지만 인터넷 가격과 같아 전혀 메리트가 없는 것은 덤이다.
부산을 방문하셨고 송도를 지나가는 길에 사서 먹어볼까 하는 분께는 추천하겠으나 그것이 아니라면 가까운 지점을 방문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처럼 너무 큰 기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