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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Jul 10. 2022

싫어하는 영화: 3. 머니볼

나는 언제나 선수들이 더 잘하기를 바란다



나는 오래된 야구팬이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베이징 뉴비에요. 쓰면서도 크게 한 번 웃었는데, 이제 야구를 좋아한지 얼추 14년이 다 되어도 나는 뉴비다. 그네들의 말로는 올림픽으로 야구를 좋아하게 되는 건 진짜가 아니랬다. 처음에는 이토록 야구를 좋아하는 나를 기만하는 거냐, 생각하며 약간은 불쾌하게도 느꼈는데, 이젠 그냥 그렇다. 야구의 역사는 이렇게나 길고 길어서, 내 나이보다도 오래 야구를 본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각자 인생의 야구가 다르듯 거기에 담기는 무게도 다르기 마련이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마지막 투수로 올라와 병살을 잡은 정대현


야구에 대한 격언은 너무 많고 그 밈은 인터넷 파도 속에서도 압도적인 지분을 자랑한다. 국민 스포츠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관중수(전 세계를 휩쓸었던 역병의 영향으로 인해 이제 그마저도 저물어가지만)와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이름을 휘날리는 선수들까지. 때문에 야구에 관련된 영화도 참 많다. 슈퍼스타 감사용, 퍼펙트 게임, 야구소녀, YMCA 야구단... 머릿수를 헤아리려면 날밤을 새도 끝이 없겠지.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내가 이토록 많이 봤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머니볼이다.




영화 속 주인공, 빌리 빈이 운영한 야구단 오클랜드 에슬레틱스




머니볼은 다른 여타 야구 영화와 달리 진짜 많이 봤다. 못 해도 20번은 봤다. 그 이후부터는 카운트를 안 메겨서 모른다. 싫어하면서 왜 그렇게 많이 봤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지. 처음에는 그냥 좋아만 했다. 많이 보면서 싫어하게 됐다. '많이 봐서' 싫어하게 된 게 아니라 많이 보면서 이 영화의 모순을 알게 되어서 싫어하게 된 거다. 머니볼은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다 보니 중구난방이 되어버린 영화다.




한 남자의 인생과 야구의 극적임. 세이버매트릭스의 설파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 모든 요소들이 다 상충한다. 서로를 뒷받침해 주는 척하면서 그게 담고 있는 메인 서사를 발로 차 버린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앞서 이야기하던 말들을 전부 부정해 버리기 때문에 더 그렇다.





오클랜드의 연승을 결정짓는 중요한 장면. 감독은 그간 고수해온 자신의 자만을 꺾고 빌리 빈이 원하던 대로 해티버그를 대타로 세운다. 서로를 향한 오해가 풀리고 신뢰를 다시 쌓는 장면이니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긴 하다. 질문. 여기서 빌리 빈이, 감독이 생각하던 베스트 시나리오는 뭐였을까? 출루율이 높은 해티버그니까 볼넷을 골라 나가서 뒤에 있는 클린업들이 쓸어버리는 거였지. 밥상을 차려놓으라는 소리였다. 근데 이럴 수가. 해티버그는 그런 자그마한 기대를 하려고 자기를 대타로 썼냐는 듯, 그대로 홈런을 갖다 박아버린다. 다시금 연승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 관중들은 뒤집어지고 빌리 빈은 자기의 판단이 옳았다는 듯 두 눈을 감싸고 기뻐한다.




근데 왜 좋아해? 자기가 생각하던 게 틀린 건데?




여기서 다들 극적인 그 장면에 환호하느라 눈치채지를 못 하는데, 빌리 빈은 틀렸다. 해티버그는 볼넷을 고르지 않고 홈런을 쳤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고, 머니볼을 싫어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세이버매트릭스 좋지. 나도 새로 우리 팀에 온 선수나, 주워온 외인이나, 이전 시즌에 선수가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체크할 때 클래식 스탯과 세이버 지수를 자주 체크한다. 지표니까. 수많은 기회와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확률이니까.



근데 항상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못 한다. 나는 우리 선수들이 더 잘하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드라마를 써 주기를 바란다. 지표로만 판단할 수 없는 부분. 사람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바닥에 치게 만들거나 하늘을 뚫어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머니볼에서 빌리 빈이 택한 건 가장 차갑고도 냉정한 방법이면서 기계적이기까지 한 세이버매트릭스인데 그는 항상 선수들을 응원하고 북돋는다. 이 모순이 참 보는데 이상하면서 좋은 거다. 그래서 영화가 싫었다. 그들의 실제 삶과 태도에 양념을 치느라고 진짜로 조명하지 못한 것과 진배없으니까. 혹자는 그런 마인드면 그냥 영화보기를 때려치우라는데 아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뭐라고 하지 좀 말라고.



그렇지 않을까. 빌리 빈의 인생마저 영화로 그려졌는데. 차가운 두뇌와 마음으로 그들의 열정을 통계학으로 바라보라고 한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실패했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란카의 'show'가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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