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2021년 봄,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찾은 한 식당. 그곳은 성공 식당으로 책에도 나온 맛집이었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좀비로 변해가던 제게는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시기였고요. 코로나 암흑기에도 정말 손님들이 줄을 서는 식당이 존재할까? 저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당이 있다면 무엇이든 배우고 따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왜케 먼 거야?)
전철을 바꿔 타며 한참을 간 후, 마을버스까지 타고 가서야 식당 근처에 도착하였지요. 개업 전 책을 읽고 궁금해하며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며 마음속에 담아둔 곳이었지만 막상 식당을 시작하고 보니 일에 치여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휴일 오후였지요.
“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이 지났건만 가게 앞에는 우산을 쓰고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기다려야 한다는 불편함보다는 정말 맛집이 맞는다고 하는 안도감과 함께 가슴속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는 저도 모르게 부러움이 차올랐습니다.
“코로나도 피해 가는 식당이라니.”
한참을 기다린 끝에 우리 일행도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려진 밥상. 맛도 있었지만 가장 인상을 끈 것은 푸짐하고 넉넉한 상차림이었습니다. 아, 바로 이거구나. 사람의 발걸음을 끌어들인 비결이. 이걸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식당 사장님은 책에서 여러 말을 했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라. 거기에 정성을 더하라. 끝없이 공부하라. 맛에 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남을 돕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그런 말들은 변죽만 울리며 책의 페이지 수만 늘릴 뿐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저라는 사람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지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식당을 찾아오시는 손님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사나운 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태원 클라쓰’ 보셨나요?
주인공 박새로이로 분(扮)한 박서준의 밤톨 같은 머리통을 보고 혹시 피디가 배우의 안티 아닌가 하고 피식 웃었는데 원작 웹툰을 보고 나서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어쩌면 저리도 원작에 충실한 머리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아무튼 싱크로율 백 퍼센트의 모습을 보며, 요즘 웹툰이나 웹소설이 갖는 권위와 위상을 실감했습니다.
최근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에 짐(gym)에 가서 천국의 계단을 오르며 철 지난 이 청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죠. 그리고 한 장면에 꽂혔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 박성열 부장이 직장 후배이자 장가 창업자의 외동딸인 강 전무에게,
“장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니,
"이득은 봐야죠.”라고 강 전무가 받습니다.
박 부장이 다시 말합니다.
"크게 봐야지. 이랬다 저랬다 하면 누가 믿어 주겠어? 사람 간의 관계, 신뢰를 잃으면 끝장이라고."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대쪽 같은 성격을 빼닮은 주인공이 단언하죠.
"가게는 사람인 거죠."
제가 식당 공부를 위해 읽었던 책에 나오는 대박 식당들의 공통점도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인심이니 인정이니 배려니 하며 어지러운 관념적 가치들이 툭툭 튀어나오지만 결국은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란 것은, 대박 식당하면 떠오르는 ‘맛’이라는 위대한 요소보다 성공한 외식업자가 더욱 중시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음식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 음식을 먹는 것도 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닐까요?
*'천국의 계단'은 짐에 있는 운동기구로서 스텝밀이 기구의 올바른 명칭입니다. 계단 오르기 운동 효과를 내지요. 한번 오르면 그 고통스러움에 미칠 것만 같은데 그걸 참으며 천국을 향해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면 어느새 희열이 찾아오고 살덩어리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드는 거죠(지난 8월에 운동을 시작하며 저는 이 운동 기구 하나만으로 한 달 만에 8킬로를 뺐습니다. 다이어트를 위한 끝판왕 운동기구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
*'장가'는 드라마에 나오는 외식업체명으로 이태원 클라쓰의 인간 군상들이 영악 살벌한 대결을 벌이는 주요 무대입니다.
2019년 1월로 되돌아갑니다.
2월 초의 식당 오픈 전 마지막 점검을 위해 실전과 같은 리허설을 몇 차례 가졌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하여 시식과 평가,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지요.
결과론적으로는 조언이라기보다는 덕담에 가까운 말씀들이 대부분이라 마음이 들뜨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당시의 일기를 꺼내어 봅니다.
《리허설, 그 첫 번째》
처음으로 손님을 받았다.
물론 정식 오픈은 2월 8일이다.
정리도 준비도 덜된 상황에서 마음만 바빠 허둥대다 결국 일을 만들었다. 채칼에 엄지손가락을 제법 깊이 벤 것이다. 이것도 액땜이라 여기며 빨리 낫기만 바랄 뿐이다.
역시 처음은 쉽지 않다. 동선도 얽히고 의도한 대로 진행이 되지 않아 버벅거린다. 즐땅에게 짜증만 내게 되고……. 다 내가 잘못한 것인데…….
연습은 이래서 필요한 것이리라.
오후에 1차 리허설을 차분히 복기하고 잘 준비해서 두 번째 리허설은 생각처럼 해내야 하겠다.
가게를 방문한 후배 진표와 즐땅 친구님들께 감사~^^
*즐땅 = 즐거운 땅(楽地) = 초능력자의 닉네임
《두 번째 리허설》
두 번째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정리도 많이 되고 점방이 자리를 잡아간다. 또한 웍질도 편해진다. 물론 오픈까지 첩첩산중이지만 차츰 나아지리라.
어제 찾아준 운동 좋아하고 마음 착한 친구들과 동생들에게 감사한다.
특히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때, 따뜻하게 품어주고 배려해 준 그들에게 다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세 번째 리허설》
어제 세 번째 리허설을 가졌다. 덕담과 칭찬 일색에서 음식의 맛을 비교하는 분이 처음으로 나왔다. 자고로 음식점은 그 무엇보다 맛이 기본이다. 부족한 것을 알았으면 고칠 일이다.
칭찬으로는 가게가 좋아지지 않는다. 모자람의 언급에 귀를 기울이고 그 부족함을 고쳐야 한다.
어제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
《네 번째 리허설》
어제 또 고마운 사람들이 찾아주었다.
연속 3일간 리허설을 찾아준 띠동갑 동생, 성진에게 감사^^
차분하게 준비하자.
《마지막 리허설》
바쁜 대학 동기들이 오픈을 미리 축하해 주러 멀리서 찾아 주었다. 인천, 남양주, 성남 등 각지의 생활 터전에서 어렵게….^^
마지막 리허설이라 그런지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 쌓인 피로도 느끼지 못하고 오랜만에 벗들과 회포를 푸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즐땅에게도 그들이 친한 선배들이라 편하게 어울릴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오늘과 내일은 부족한 준비를 마무리해야 한다.
찾아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며 다섯 차례의 리허설을 마감한다.
4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 오픈 준비 당시를 돌이켜 보면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도 느리고 요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부족한 제가 정말 식당을 잘 꾸려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오픈을 하여 1년 만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또 그 힘겹고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지금까지 왔네요. 매일매일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한순간의 일처럼 시간은 빨리도 흘러갑니다. 또한 앞으로도 변함없이 힘들겠지만 역시 시간은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리허설에 와주었던 지인들은 오픈 후 지금까지 꾸준히 가게를 찾아와 응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고마운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