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노동이 인격을 만든다.
책을 읽다 인상적인 구절을 만났습니다.
“새로운 계획의 성취는 오로지 흔들리거나 꺾이지 않는 일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생각하라. 고상하게, 굳세게, 한결같이.”
- 일본의 사상가 나카무라 덴푸
인간이 만든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지 않나요?
‘노동’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그 찬란한 이름, 勞動.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관념적인 이 단어 말입니다.
노동!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저마다 그림을 그려 눈에 보이는 물건처럼 가슴속에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린 勞動畵를 봅니다.
그 그림 속의 인물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움직입니다. 그는 때론 저이기도, 때론 당신이기도, 때론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구이기도 합니다.
대학입시를 위해 최고의 정신력이 요구되었던 시기의 그림은 어둡기만 합니다. 팔딱거리며 경제 활동을 하던 2030 시절의 그림은 제법 밝고 활기가 넘칩니다. 그러나 40대를 거쳐 50대 후반에 이른 그림 속의 저의 모습은 지치고 힘들어 보입니다.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저의 노동화에는 항상 당시를 살아내던 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내가 내 모습을 망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깨달음에 말이죠. 그러나 다시 힘을 내자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좋은 식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식당을 위한 노동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말입니다.
요즘은 책에 한 번 꽂히면 수도 없이 반복하여 읽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을 읽었습니다.
2022년에 작고한 그는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의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 3대 경영의 신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분이죠.
책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노동이 인격을 만든다. 성실하게 있는 힘껏 일하는 행위야말로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유일한 비결이다. 고생스러운 경험을 피하면서 훌륭한 인간성을 완성하는 사람은 없다.”
어떠세요?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아니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격하게 공감합니다.
손가락을 놀려 피아노를 치고 온몸을 이용해 춤을 추는 것도 노동이요, 주방에서 칼질을 하고, 웍질을 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도 노동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고 아름다운 율동을 만들어내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가 노동입니다. 물론 이러한 육체적 행위만이 노동은 아닙니다. 우리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것도 노동이지요. 바로 정신적인 노동.
인간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노력을 통한 노동은 인격을 만들어내며, 반복되는 노동은 완성된 인간성을 이끌어내어 마침내 노동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스스로 타이릅니다.
“식당에서, 특히 주방에서 반복되는 일들에 지쳐서는 안 된다. 숙련을 뛰어넘는 그 이상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자신이 하는 일에 애착을 갖고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오늘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내일 눈 뜨는 것이 힘겹습니다. 더구나 인간에게 있어서 완성이란 경지는 없는 것이기에 더더욱 힘이 듭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노동이 인격을 만들고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뜻을 이룬다는 것을 말입니다.
5년째 식당 주방에서 일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도 운동선수처럼 ‘루틴’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점방까지는 도보로 30분이 걸립니다. 아침잠이 없는 제가 5시 무렵 집을 나서면 아직 대중교통이 시작되기 전이기에 걸어서 출근을 해야 합니다.
가게에 도착하면 바로 오늘의 영업 준비를 시작합니다. 낙지와 재료들을 손질하고 갖은 채소를 다듬고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칩니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영업 준비가 끝나면 대략 8시에서 9시.
그제야 홀 구석의 테이블 앞에 앉아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켭니다. 그리고 글을 읽고 씁니다. 물론 딴짓도 많이 합니다. 인터넷으로 신문도 읽고 주식 공부도 합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쓰고 읽고 놀다 보면 10시. 이제 테이블을 정리하고 홀 청소를 한 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11시부터의 오픈 준비에 들어갑니다.
일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힘듭니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그냥 참고 할 뿐입니다. 다만 요령이 생겼다면 아무도 없는 새벽에 주방에서 일할 때는 귀로 책을 읽습니다. 휴대폰의 전자책을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듣는 겁니다. 손으로는 노동을 하지만, 귀로는 책을 읽는 것입니다. 아주 소중하고 보람된 시간입니다.
요즘 들어 남아있는 나날의 업의 목표를 세 가지로 나누어 정했습니다.
먼저 생계를 위한 일(식당)에 충실하며, 두 번째로는 취미로 글쓰기와 독서를 즐길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노후의 삶을 위해 투자에 대한 공부을 철저히 하고 조금씩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파이어족이 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나이지만 저는 오늘도 은퇴를 꿈꿉니다. 늙어가는 육체를 언제까지 부려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인격의 완성을 위해 노동을 이어가는 것은 참으로 고귀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 뉴욕의 말이 죽어가는 모습을 뉴스 기사로 보았습니다.
폭염에도 뉴욕 맨해튼 중심부 도로에서 관광용 마차를 끌던 말, ‘라이더’가 숨을 헐떡이며 무릎이 꺾여 쓰러졌습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주인은 잔인하게도 쓰러진 말을 향해 ‘일어나’라고 소리치며 채찍질을 가하였습니다. 길을 걷던 시민들이 이를 말리며 주인을 비난하였지만, 견인차에 놓여져 마구간으로 실려 간 말은 결국 건강을 되찾지 못하고 몇 달 뒤 안락사되었습니다.
더운 날에는 말도 일을 하면 안 되건만, 그 말은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노동이 아무리 값진 것이지만 생명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자신의 몸을 혹사할수록 미안한 마음은 커져만 갑니다. 인생이 참 뭔지. 폭염 속에 생명을 다할 때까지 일해야만 했던 말, ‘라이더’의 영면을 빌며, 노동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요일 오후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