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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Dec 03. 2023

식당의 탄생

11. 뒤죽박죽 개업 첫날




 휴우.     


 개업 첫날을 떠올리니 12월 한겨울의 등줄기에서 얼음 알갱이 같은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건 덤 ㅠㅠ. 그러나 한편으론 배시시 저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답니다.

바로 오늘 그날의 풍경을 추억하여 보렵니다.   

        

 우선 개업 첫날 마스터낙지의 주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메뉴는 당연히 ‘낙지집’에 걸맞게 낙지 일색이지요.

식사로는 낙지볶음에 산낙지볶음, 술안주가 되는 요리로 연포탕, 낙지생합탕, 산낙지, 탕탕이, 산낙지초무침, 낙지해물파전과 사이드 메뉴로는 낙지왕만두와 낙지한입만두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낙지 그리고 낙지, 또 낙지입니다.


 주류는 소주와 맥주는 당연, 더하여 막걸리와 와인까지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와인은 호주에 머물던 시절, 얄팍한 주머니 사정상 소주보다 만만하게 마시며 친숙했기에 자연스레 주류 리스트에 포함시켰구요.     

 

 함께 일하는 사람은,

홀에는 초능력자와 알바 혜영 씨, 주방에는 바로 저 마스터와 찬모님. 그렇게 네 명.

낙지볶음과 산낙지, 탕탕이는 마스터가, 나머지 요리는 찬모님이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 분장 끝!     


 마지막으로 영업시간,

브레이크 타임 없이 오전 11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이게 얼마나 힘든 강행군인 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답니다. 에혀.          






 드디어 2019년 2월 8일.

초능력자와 마스터는 씩씩하게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지인의 식당에서 알바도 하였고 오픈을 눈앞에 두고는 여러 차례의 예행연습도 거쳤습니다. 물론 긴장은 되었지만 내심 할 만하다고 자만의 표정을 짓고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겁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었던 것을. 결국 무지가 야단법석의 단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픈을 하면서 가까운 지인을 빼고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개업식도 생략하였습니다. 친구들과 일가친척분들은 우리 부부가 식당을 오픈하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개업 당일 아침에 주변의 상점이나 사무실에 개업 떡을 돌린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간판에 오픈일을 알리는 현수막을 덮어씌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기에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하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11시, 우리 부부는 떨리는 두 손으로 식당 문을 열었습니다.

헐!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어이없게도 리허설은 한낱 어설픈 소꿉놀이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TV 프로그램 골목식당에서 백종원 대표가 어느 식당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 재오픈을 할 때와 흡사한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온 손님들로 작은 식당은 난리가 났습니다. 먼저 입장한 순서대로 알아서 자리를 차지하여 10개의 테이블은 순식간에 만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뒤늦게 오신 분들 또한 좁은 홀 안에 우르르 몰려들어 먼저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을 째려보며 어서 자리를 내놓으라 무언의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개업 첫날부터 멘붕의 늪에 빠지다니.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테이블 배치였습니다. ‘이 정도로 테이블을 놓아두면 되겠구나.’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손님들이 드나드는 데 불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홀 서빙을 해야 할 직원들의 동선이 전혀 확보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주방도 일시에 밀려드는 주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주방 이모님은 손님들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광경을 보시곤 기겁하시며 계속 저를 부르셨습니다.

사장님, 저거 봐, 저거 봐! 큰일 났어!! 어이쿠, 저는 결국에 홀을 등지고 절대 뒤돌아보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며 그저 주문을 쳐내기에 집중하였습니다. 돌아서면 망부석이 되어 버린다고!  

   

 난장판이 된 홀을 쳐다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뿐더러 저까지 더욱 당황하기에 말입니다. 홀은 몽땅 불쌍한 초능력자에게 맡겼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개업 프리미엄은 한동안 지속되어 주방 이모는 저희 부부에게 ‘대박이 났다’고 연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          





 

 문명의 이기 중에 식당인들을 위한 아주 신통방통한 어플이 하나 있더군요.      

이 어플은 우리 가게 주변에 이번 주중에 새로 오픈할 매장의 수를 알려 줍니다. 사실 그런 소식까지 확인할 여유도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아무튼 요즘 들어 새로운 매장이 자꾸 생겨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라지는 가게도 적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폐업하는 가게가 더 많지 않나 싶은 정도로 거리 곳곳에 빈 점포가 늘어만 갑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임대'라는 안내문을 붙여 놓은 건물을 자주 마주칩니다. 어쩌면 코로나 시절보다 비어 있는 점포가 많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 식당이 자주 많이 없어질까요?  

세상에 맛없는 식당은 없지 않나요? 식당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음식의 맛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개중에는 맛도 없는 메뉴를 들고 가게의 문을 여는 식당이 있는가 봅니다.      

노력이 부족해서, 준비가 소홀해서…….

아무튼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식당의 문을 닫습니다.


 저는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만을 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옆집 식당 사장님이 나중에 말씀하셨지요.

“쟤네들 잘할 수 있을까? 음식도 식당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부부가 말이야.”

내심 이런 걱정을 하며 한동안 조마조마했다고 말이죠.

쳇! 걱정만 하지 말고 이것저것 조언이라도 해주실 것이지.     

롤러코스터를 타고 지나온 나날들 속의 두 사람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버틸 수 있도록 찾아주고 도와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당신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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