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도 Dec 10. 2023

식당의 탄생

12.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뒤죽박죽 개업 첫날을 보내며 다시 한번 경험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면서도 한편으론 후회 가득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고는 자책에 빠지곤 합니다. 그렇게 만족과 불만으로 오늘을 채워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때론 칭찬하고 때론 나무라는, 고객의 관심과 질책 덕분에 우리의 식당은 조금씩 자랐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새삼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오늘의 글을 시작합니다. 


                                                             고맙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정해진 운명의 길을 걷는 것일까요? 아니면 운명이라는 이름의 ‘최면 망토’를 걸친 채, 평생 마주치는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걸까요?

저 또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일 뿐이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운명’이라는 말에는 이상한 거부감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운명은 나약한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드는 현혹의 두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식당을 하게 되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대체 무슨 팔자를 타고났길래 식당을 하게 되었는지 저 자신도 궁금했던 것이지요(팔자타령 하면 안 되는데,,,).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었건만, 사범대를 졸업하였기에 교사가 될 수도 있었건만, 하늘은 왜 내게 그 길을 허락하지 않았을까? 반백의 나이가 지나 들어선 요식업자의 길이 정녕 날 때부터 정해졌던 나의 운명이었던가? 그래요. 더 이상 운명 타령, 팔자타령은 하지 않으렵니다. 어차피 운명이건 우연이건 제겐 상관없으니까요. 그냥 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 모두 성공을 꿈꾸지 않나요? 살다 보면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거 한두 개 생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성공하기 위하여,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대체 얼마나 노력하며 살까요? 간절히 소망하는 만큼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살아왔을까요? 


 저 자신, 원하는 것에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자문하여 봅니다. 부끄럽게도 그런 적이 별로 없습니다. 성공을 위한 처절한 몰입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습니다. 성공을 꿈꾸면서도 항상 다른 곳을 보았습니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갖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외면하였습니다. 아, 자아비판의 시간이 되어 버렸네요. 자책은 그만하겠습니다. 지금의 식당도 한눈을 팔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아래의 글은 수년 전에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출처 미상의 이야기입니다. 솔로몬 왕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잠언 속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성공을 꿈꾸는 분이라면 한 번쯤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여 옮겨 적습니다.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너무너무 성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을 해도 실패의 연속이었기에, 하루는 죽을 각오를 하고 솔로몬 왕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사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솔로몬은 대답 대신 물을 가득 채워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물동이를 가져오게 하고는 사내에게 말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오면 알려주겠다. 그러나 단 한 방울이라도 물을 흘리면 그 순간, 네 뒤를 따르는 군사가 바로 네 목을 칠 것이다.” 사내는 죽을까 봐 온 정신을 쏟아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간신히 왕에게 돌아왔다. 이제는 솔로몬이 성공의 비결을 알려줄 차례였다. 그러나 왕은 생뚱맞게도 동네를 돌며 무엇을 보았냐고 묻는 것이었다. 사내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솔직히 물이 흘러내리면 죽을까 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자포자기하며 대답했다. 바로 그때 솔로몬 왕은 말하였다. 


“성공하려면, 그렇게 네가 하고자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야 한다. 오직 그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어리석은 식당 주인은 초능력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만만해 보이는 식당 일이라도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재주가 있어도 성공은 보장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식당에 있어서 '맛'은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죠. 정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딱 들어맞는 말인 거 같네요.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라는.






 어느 날 낙지볶음을 요리하며 웍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고마워, 웍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줘서.’라고 말입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너 이제 하다 하다 별짓을 다 하는구나,라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채소를 다듬으면서는 당근에게도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 참 싱싱하구나. 손님들께서 네가 들어간 낙지볶음을 드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곤이 싹 가실 거야.’ 라고요. 


 그리고 그날부터 사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웍과 채소는 물론 칼과도 도마 하고도 말이죠. 대화는 사실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주어 고맙다는 것이 전부였을 밖에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주 특별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진상 손님이 와서 힘이 들 때면 자연스레 주방의 사물들에게 하소연을 하고 위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당연히 무례한 손님들을 향해 욕을 하였습니다. 속으로 그들을 향해 저주의 말을 퍼붓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혼잣말로 화를 내었고 또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곁에 있는 초능력자에게 겁도 없이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속은 시원해졌지만, 그것도 잠시뿐 허탈함이 밀려들며 힘이 빠졌습니다. 물론 초능력자는 그런 저를 향해 혀를 끌끌 차며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 타일렀지요. 그런 말을 들을수록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커져만 갔고.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찾은 방법이 바로 주방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을 미워했고, 주방 친구들은 그런 나를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현명한 그들은 최고의 선물을 제게 주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요즘은 마인드 컨트롤을 제법 잘하고 있습니다. 불편한 상황이 되면 자신을 타이릅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거센 비바람은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그냥 미친 척하며 일상을 살아내자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야 한다고.




작가의 이전글 식당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