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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Dec 24. 2023

식당의 탄생

14. 쉬면 더 잘할 수 있어요


 2019년 4월, 겨울 지나 봄이 왔습니다.

바야흐로 꽃 피고 새도 우는 참 좋은 시절입니다.

벚꽃 잎 눈송이 되어 날리는 봄밤, 마스터낙지에 모여 소박한 음식에 한 잔 술을 나누는 사람들. 가족 연인 친구 동료들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에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개업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지만 벌써 눈에 익은 손님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성장한 딸과 함께 오는 중년의 부부도 있지요. 테이블을 정리하며 인사하니 기다렸다는 듯 폭풍 칭찬이 쏟아집니다. 음식 맛있고 정갈하다, 손님이 많아서 자신들도 기분이 좋다, 갖은 덕담을 건네며 환하게 웃습니다. 항상 손님이 많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자 이제 시작인데 이 정도면 정말 너무 잘하는 거라 또 칭찬이 이어집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피로가 가시고 슬금슬금 돋아나던 무릎의 통증도 잠시나마 사라집니다.   





       


 마스터낙지는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을 지켜 쉬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휴무일을 갖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컸습니다. 고스란히 빚을 떠안고 시작하는 가게인데 속 편하게 일주일에 한 번씩 쉰다는 것이 가당찮은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놀 거 다 놀고 쉴 거 다 쉬며 언제 돈 벌어 빚도 갚고 초능력자랑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냐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을 쉼 없이 달려가는 것은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돈 벌려다 지쳐 쓰러질 것이 두려웠습니다. 일단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이상, 중도에 지쳐 도망치기는 싫었습니다.

     

 개업 전 오픈 준비를 하며 살펴보니 마스터낙지의 상권은 일요일에 손님이 가장 적었습니다. 평일에는 직장인들과 대학생들로 상권 내의 식당이 제법 붐볐지만, 그들이 사라진 일요일에는 거리의 인적마저 끊기는 곳이었습니다. 주택가임에도 동네 주민들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않는 이상한 상권이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손님들이 가장 적을 것 같은 일요일을 한 주의 안식일로 삼은 것입니다. 살펴보니 다른 상권에서는 월요일에 쉬는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술집들과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대부분의 상점이 월요일이 휴무일이더군요. 교회에 다니는 초능력자로서는 일요일의 휴무가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휴식은 한 발 더 내딛기 위함이지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작은 가게를 혼자 운영하는 것은 세상 짐을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고난의 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 혼자서 책임지고 힘든 길을 가야 하니까요. 다행히도 저는 초능력자와 그 고단함을 나눌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요. 세상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결혼 전의 다짐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집니다.  

   

 혼자서 가게의 모든 일을 하다 보면 장사가 잘되든 안되든 '여유'라는 게 없어지더군요. 가게는 물론이려니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조차 없습니다. 항상 일에 매몰되어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지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우물 안 개구리로 사회와 세상사에 유리되어 살아가기 쉬워집니다. 일에 지치고 삶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하기 일쑤고요. 물론 이것은 자영업자 전체의 현상은 절대 아닐 겁니다. 일부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이끌며 멋지게 창업 이후의 생활을 누리기도 할 것입니다. 바로 저 같은 능력도 자금도 부족한 사람들이 문제인 거지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그 진리, 그 진리 앞에 누구나 노력을 하지만 사실 결과는 그 노력한 모든 자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노력한다고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고립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까요?      

그 해결의 방법은 바로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그리고 생각을 지우는 휴식 말입니다. 미래를 그리는 휴식 말입니다.


 잠시 한발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합니다. 그렇다고 쉬는 것이 잠만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충분한 수면은 당연하고 그 수면 이외의 휴식이 필요하겠죠. 멍 때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생각을 모아야 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잠시 쉬면서 하늘도 바라보고 밖에 나가 천천히 걷기도 하고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어 보세요. 지난 일을 점검하기보다는 미래의 꿈을 꾸어 보세요.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나 자신을 만나 사랑하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시간 속에 내 삶은 더욱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개업을 며칠 앞둔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2019년 2월의).

어머니를 모시고 초능력자와 그녀의 소중한 딸,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가까운 극장을 찾았습니다.


 영화 제목이 극한직업! 극한직업이라면 우리가 시작한 식당 일인데? 하며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요. 식당을 배경으로 한 경찰들의 이야기였으니 말이지요. 이하늬의 찰진 욕지거리 덕분에 속이 다 시원하네요. 모든 긴장 내려놓고 모처럼 신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가슴을 후벼파는 류승룡의 한마디.     


“우리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일해! XX놈아!!”     


 10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는 요식업계라는 정글에서 정말 목숨 걸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웃기는 영화를 보면서 심각하게 해 봤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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