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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Dec 31. 2023

식당의 탄생

15. 앉아 있으면 양파가 썩고 누워 있으면 가게가 썩는다.


 저들도 큰 뜻이 있었으련만

    

 고민 없이 만들어진 식당들은 초라한 末路를 맞이하기 쉬운 거 같아요. 쓰나미도 뭣도 아닌 작은 밀물에조차 자취도 없이 무너져 버리는 그들을 보면 말이죠. 어차피 인간이 머무는 곳에 영원한 건 없겠지만, 순간의 썰물에 휩쓸려 검은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개업의 포부’에는 무상한 마음만이 가득할 따름입니다.    

  

 오픈할 때는 징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요란스럽게 시작하지만 불과 수개월, 아니면 1, 2년 만에 제 명을 다 못하고 문을 닫고 마는 식당들이 수두룩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주방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 베테랑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한 방에 그냥 훅 가버리더군요.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기 잘못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남의 탓이고 외부 환경 탓입니다. 그렇다면 그 ‘탓’이 없었다면 모두가 성공하는 무대가 바로 요식업계인 걸까요? 흠, 안타깝게도 그건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름지기 식당인이라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간 퍼뜩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서비스 마인드랄까, 타인을 배려하는 살가운 마음이랄까. ‘장사의 신’급에는 못 미치지만 탁월한 경영 능력, 남다른 상인의 기질, 한결같은 근면함…….    

 

 경영 능력도 상인의 기질도 갖추지 못한 저이지만 부지런함에는 그럭저럭 점수를 주고 싶네요. 식당에서 몸을 놀리는 사람은 일단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태도’이지요. 식당 일이 힘들다고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사장이 손을 놓아 버린 식당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결국 손님도 발길을 끊고 말 겁니다.     

 

 “그냥 앉아 있으면 양파가 썩고 누워 있으면 가게가 썩는다.”      


 내가 조금만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면 냉장고의 오이가 짓무르고 하얗던 팽이버섯이 누렇게 변하고 주방 구석에 놓아둔 양파가 썩어갑니다. 오이며 양파며, 녀석들은 정말 귀신처럼 사장의 마음을 알아챈답니다. 그들은 내가 부지런히 몸을 놀릴 때만 곁에 머무는 겁니다.     


 부지런함이 멈춘 가게를 볼까요?

모든 것이 더러워집니다. 홀과 주방은 청결함을 잃고 재료는 신선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지저분해집니다. 겉으로는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음식이 맛이 떨어집니다. 음식 맛이 변한 겁니다. 신선하지 않은 재료를 더러운 주방에서 지저분한 사람들이 만지니 자연스레 맛이 없어집니다. 바보가 아닌 고객은 가게로부터 발길을 돌립니다. 이제 망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손흥민 선수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그는 월드컵 예선전이 끝나고 인터뷰에 임하여 매번 혹사당하는 그의 몸 상태에 대한 국민의 우려에 대해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축구선수라면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뛰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특히 대표팀 경기는 아프더라도 약을 먹고라도 뛰는 게 당연하죠.”   

  

 그의 단호하면서도 신념에 찬 말에 순간 감동하였지만, 사실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비록 나라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하는 식당 주인들도 영업이라는 게임에 나서면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는 팔목이 아팠는데 오늘은 어깨까지 아픕니다. 팔목과 어깨의 아픈 감각이 무뎌져 다행이다 싶은 순간, 목이 뻐근하고 허리와 무릎이 쑤시고 결립니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이 아니라 아프니까 식당 주인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이 아픔, 이 고통이 식당 주인만이 겪는 일이겠습니까? 이 땅의 어머니와 아버지, 모든 딸과 아들이라면 누구나 일하며 겪는 자신만의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라는 바보 멍청이 같은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며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저마다 묵묵히 살아내고 있을 따름일 겁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밖은 지옥이야.”     

 

 그럼 천국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식당의 일이 힘들다는 것은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결국 성공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들이 하는 변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와 가깝게 지내는 옆집 식당의 사장님 내외는 식당의 업력이 꽤 되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항상 한결같이 열심히 일합니다. 몇 년 전에 큰딸을 결혼시켰고 이어 아들마저 결혼하고 나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쉬시며 주 5일을 일하고 계십니다. 물론 일하는 5일은 누구보다 열심이십니다.    

  

 저희보다 연배가 아래인 앞집 부부가 하는 또 한 식당은 비교적 큰 평수의 고깃집인데 가까이에 수제 버거집을 새로 오픈하더니 연이어 베이글 빵집까지 오픈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사장님은 버거집에 상주하고 남자 사장님은 세 곳을 번갈아 가며 일하면서 관리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곳의 식당들을 보며 식당의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누구는 지옥이라 하는 곳을 누구는 천국으로 만들까? 그 저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힘들다고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식당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을 것입니다. 다만 지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지옥에서 일할 것이며, 힘들어 죽겠다 죽겠다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식당마저 죽이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자신이 없지만, 결국 천국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고약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네요안녕들 하시지요저희는 힘든 한 해 악착같이 버텼습니다다행히도 매출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대신 수익률은 제법 많이 떨어졌습니다이탈하는 고객을 붙잡기 위해 더욱 많이 퍼드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내공도 없고 업력도 짧은 새내기 부부가 좌충우돌하며 개업 2년 차를 보냈습니다내일부터는 또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제대로 미쳐볼 생각입니다그리고 작아도 사회공헌활동도 조용히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건강하시고 소처럼 한발 한발 내딛는 한 해 되시길 빌겠습니다.”     


 위의 글은 2020년 12월 31일의 일기랍니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은 2023년 12월 31일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라 자연스레 고약하다는 표현을 썼겠지요.      

이제 하루가 지나면 개업 6년 차 식당의 주인이 됩니다. 물론 백년가게라 일컬어지는 노포와 비교하면 한낱 코흘리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지만, 여전히 일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양파와 친해지며 내 일터가 바로 천국이 되는 청룡의 해, 멋진 갑진년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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