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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Jan 14. 2024

식당의 탄생

17. 오픈 프리미엄을 넘어서다

    

 무릎 수술을 받고, ‘인생은 길고 식당 문을 닫는 건 일주일 뿐이야.’라며 애써 자위했습니다. 긍정 최면도 잊지 않았지요. ‘불행 중 다행인 거 알지?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생각해.’    

 

 일주일 후, 다시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젠장! 흑흑. 나쁜 일은 왜 혼자 오지 않는 걸까요? 초능력자마저 허리를 못 쓰게 되어 며칠을 입원하고야 말았으니. ‘식당 일 정말 쉽지 않네!’ 끊은 담배가 다시 생각날 정도로 기운이 빠지며 절망이란 두 글자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환자들이 문을 열어주는 식당엘 세상 어느 누가 싱글거리며 들어오겠습니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잖아요.

아픈 것은 저희 사정일 뿐, 주인이 찡그리며 인상을 쓰고 있는 식당에서 맘 편히 식사할 손님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아프지만 당신은 행복한 식사를 해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사실 말이 쉽지, 수술 때문에 식당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 앞으로 어떻게 살지?’      

때론 툴툴거리며 때론 건방을 떨며 직장을 다닐 때는 느껴 보지 못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마치 머리통 위에서 터져버린 핵폭탄 파편이 나를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슬로 모션으로 보는 듯한 공포감이었습니다. 이래서 자영업이 힘들고, 작은 식당을 꾸려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두 사람의 몸이 조금씩 호전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새삼 일할 수 있음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아, 가슴 사무치는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소담 소담 눈이 내립니다. 길가 가로등 불빛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눈을 보니 점방을 향하는 조급한 마음이 저도 모르게 차분해집니다. 오늘은 땡땡낙지를 오픈하고 일주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분이 찾아주셨습니다. 지인분들도 계시고 그저 낙지요리를 드시고자 찾아주신 생면부지의 손님들도 계십니다. 분명한 것은 시절인연을 논할 필요 없이 저희 부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일주일 동안 가게 안팎에서 응원하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소중한 당신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위의 글은 개업 일주일째가 되는 2019년 2월 15일 아침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열흘 가는 붉은 꽃은 없다 했지요. 오픈 프리미엄이라는 꽃도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습니다. 많은 것을 시도하고 많은 것을 실패하였습니다. 그렸다 지운 청사진이 휴지통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존의 메뉴를 개선하고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보고 고객 이벤트를 기획하고 서비스를 바꿔 보고…… 둘이서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해보자며 매달렸습니다. 어리석은 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칩니다.

     

 소상공인 지원 프로그램도 신청하였습니다. 컨설팅을 받고 멘토링 수업도 받았습니다. 요리며 마케팅이며 인테리어, 아웃테리어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저희의 역량을 뛰어넘는 개선과 발전이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픈 프리미엄을 넘어선 것입니다.  


        




 음식이 형편없지 않은 이상, 어느 식당이건 ‘오픈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 이것은 사장의 능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몇 개월간 장사가 잘되는 것이 자신이 잘났기 때문이라 우쭐거리는 것입니다.     


 이미 승부는 난 거라고, 나는 이 세상 고객의 입맛을 지배할 천재 오너 셰프라고, 앞으로 꽃길을 걷는 일만 남은 거라고, 그렇게 멍청한 환상과 겁 없는 착각으로 한때나마 까불어댄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 저를 내려다보던 신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요? 정확히 4개월 만에 매출이 꺾였습니다. 마치 다른 가게가 된 것처럼 30~40%의 매출이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꺾인 매출이야말로 거품이 사라진 진정한 내 실력의 내 매출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2019년의 유월은 참 힘든 달이었습니다.

무릎 때문에, 그에 따른 휴업의 여파로, 오픈 프리미엄의 거품마저 걷혀버리고…. 역시 식당 일이란 만만하지 않고 건강은 말할 필요 없이 소중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날의 일기를 다시 펼쳐 봅니다(일기는 저만 보는 일기와, ‘땡땡낙지일기’라 하여 SNS에 연재하던 일기, 이렇게 두 종류의 일기가 있습니다).          


1.

20190717 수. 제헌절      

무더위 속에 안녕들 하시지요.

이제 슬슬 여름휴가를 떠나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시기입니다. 

저희는 아쉽게도 오픈발이 걷히고 날씨도 더워지면서 매출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궁리하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신메뉴도 출시하고….^^     

오늘은 배민에서 오셔서 메뉴 촬영이 있었네요.

앞으로 몇 주 후에는 배달앱을 통한 주문이 가능해지는 거죠.

삼복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 그리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준비한 배달 서비스는 몇 달 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습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고 한 일처럼 기막힌 신의 한 수가 되어 주었습니다.  

        

2.

20190801 목      

7말 8초.

직장인이건 자영업자건 일 년 중 휴가를 가장 많이 가는 시기가 지금 이때인 7월 말, 8월 초가 아닌가 싶다. 뒤집어 보면 바로 지금이 식당으로서는 가장 한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즉, 내 처지에서는 장사가 가장 안 되는, 벌이가 가장 안 좋은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7월 말에 접어들어 가게가 가장 한가할 시간에 손님이 조금씩 늘고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스럽고 고무적이다. 최악의 순간은 모면한 것이다.

이제는 나쁜 시기에 대해 정말 준비를 잘하고 겸손해야 한다.       

    

3.

20190810 토      

내일이면 말복. 

물론 절기와 상관없이 찜통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피서지 인파는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하니…. 고로 서울 변두리 주택가는 한산하기만 하다. 

이런 날은 왜 내가 식당을 해서 망부석처럼 하루를 보낼까 하는 자괴감이 고개를 쳐든다.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린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책도 읽어 보고 청소도 해보고 밖에 사람이 진짜 없나 나가도 보고…. 그래도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간다.

차라리 오늘 하루 가게 문을 닫고 편히 쉬기나 할 것을…….     

내일이면 일요일이라 쉬기에 아침에는 제법 의욕적으로 하루를 시작했건만, 이리 손님이 없으면 초조해지고 의욕이 떨어진다. 무엇을 해도 말이다.          


4.

20190924 화     

완연한 가을입니다.

ㅇㅇ낙지를 시작하고 7개월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모두 다름이 없지만, 특히 식당을 한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지구력 있게 일을 해나가느냐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구태의연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지요. 요즘 들어 새롭게 알게 되는 일들이 하나둘 생길 때마다, 정말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륜이고 내공이란 말이 있는 거겠죠.   

   

 새로운 메뉴로 낙지보쌈세트를 내놓고 있는데 보쌈용 수육도 삼겹살에서 앞다리살로 다시 사태로, 또 오겹살에서 삼겹살과 목살로 정신없이 바뀌어 왔습니다. 어제는 이거다 싶었는데 오늘은 그게 아니었구나 하고 다시 깨닫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또 재미도 있습니다.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는 하늘이 주신 일이라는 것은 알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에는 너무 지쳐 지냈는데 이제 다시 힘을 내어 제 길을 신나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힘을 내어 주는 초능력자와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점심시간, 손님이 밀려들어 오늘은 장사가 조금 되겠구나 하는 순간, 손님의 발걸음이 뚝 멈춰버립니다. 아직 12시 반도 안 되었는데 일시에 닥친 몇 팀의 손님이 다 이고 더 이상 손님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점심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는데, 이제 팔아 재끼기만 하면 되는데 손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뭘 잘못했을까? 걱정이 밀려옵니다.      

생각이야 지금도 머리가 터질 만큼 많지만, 개업 1년 차의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이하던 그날의 순간을 회상하여 보니, 모래알처럼 셀 수 없는, 그러나 모래알처럼 하찮은 고민 속에 매몰되어 하루를 보내고 또다시 하루를 맞이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사실 새 글 하나를 더하는 지금 이 순간도 이 공간에서 달아나고픈 유혹과, 반대로 그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는 강박적 이성이 몸뚱이 하나를 양쪽에서 끌어당기며 괴롭히고 있네요.   

   

도망쳐!     


도망치면 안 돼!      


왜 안 돼?    

  

갈 곳도 없잖아.      


여기만 아니면 돼.      


둘러봐. 다른 곳은 없어.    

  

싫어, 싫다고.     


닥쳐! 그냥 버텨!!   

  

아, 꿈이었구나! 하고 말하고 싶지만, 바로 오늘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한낮의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의 모습이랍니다. 인생 뭐 있나요? 먹고살기 위한 생업은 생업답게, 쓰고 싶은 글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겨울비가 내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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