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도 Oct 01. 2023

식당의 탄생

1. 식당 주인 될 결심


 저는 골목식당 사장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사업자등록증상의 종이 쪼가리 사장일 뿐, 진짜 사장은 아내입니다.     

고백하건대, 아내는 보통 사람이 아니랍니다. 결혼 후에야 비로소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되어 당혹스러웠지요. 아내는 초능력자입니다. 방긋방긋 웃으며 사람을 뜻대로 움직이는 마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실질적인 식당의 대표가 된 거지요.      


 개업하고 2, 3년도 채 지나기 전에 열이면 여덟아홉이 나가떨어진다는 식당의 저주를 아시나요? 그 애물단지 식당을, 코로나 대협곡조차 무사히 건너 지금까지 5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아내의 어마무시한 초능력 덕분인 것을 저는 부인할 수 없답니다.

     

 반면 저라는 인간(앞으로 마스터라 부르겠습니다)은 타고난 소심쟁이인 주제에 엉덩이에 뿔이 돋아 세상과 엇나가기를 즐기는 고약한 놈입니다.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데 아는 척은 잘합니다. 그래서 재수 없다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그리고 말이죠. 제 딴에는 소신이라 생각하여 없는 용기까지 짜내어 한 행동에 남들은 또 멍청이가 사고를 쳤다고 혀를 끌끌 차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소신의 끝판왕 사고는 5년 전 어느 날 일어났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대책 없이 뛰쳐나온 수습 불가의 대박 사건이었죠. 새 우산이 생길 때까지 헌 우산을 버리면 안 된다고 하였는데…. 아내는 맘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소신 따위, 개나 줘버리고 참았으면 초능력 여인의 섬섬옥수를 그토록 거칠게 만들지는 않았으련만.

     

 설상가상.

회사를 나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듭 갈팡질팡하였습니다. 그 방황 끝에 다시는 사고를 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영업자의, 요식업자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섰습니다. 걱정과 불안에 싸여 바라보는 초능력자 아내의 흔들리는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말이지요. 요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라면은 제법 맛있게 끓이지! 하고 까불기만 했었죠. 물론 믿을 언덕은 있었습니다.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고 요리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초능력자 그녀가 제 뒤에 버티고 있었던 겁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인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계기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대 후반, 새로운 탐험처럼 가족과 함께 떠난 미지의 중국 이민 생활은 기대만큼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7년간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며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을 무렵, 제 허파에는 생각지도 못한 바람이 다시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신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가족을 이끌고 다시 호주로 향했습니다.

 당시 처남이 이런 말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매형, 직업이 외교관이었어?’

미안하다, 선택아. 내가 외교관이었더라면 네 누나 이렇게 고생시키지 않았을 텐데……


 어릴 적 또 누가 그랬죠. 백말띠 역마살이 낀 팔자라 세상 방방곡곡을 떠돌 것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소심한 제 성격을 잘 알기에  코웃음만 쳤습니다. 내 주제에 감히 어딜?! 

 고등학생 시절까지도 버스만 타도 길을 잃어 집에 못 돌아올까 봐 벌벌 떨던 제게 역마살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 호주라니!


 항로를 이탈한 비행기처럼 낯선 중국 땅을 수년 동안 헤맨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안착하려는 순간, 또다시 기수를 돌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호주는 정말 달랐습니다. 중국과는 쨉이 되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제게 있어서 호주는 꿈의 나라가 아닌 좌절의 무대였습니다. 생계형 노동자 신분으로 하루하루 외줄 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던 저는 결국 가족들만 남겨두고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운 좋게도 새로운 직장을 구해놓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재기의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저는 거듭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리를 잡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다.


  그 혼돈의 시기에 우연히 지인의 식당에서 짧은 알바를 했던 것. 그 인연이 저를 요식업의 세계로, 자영업의 세계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식당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마침내 실천에 옮겼습니다. 초능력자와 함께 말입니다. 

     


 식당 사장은 외롭습니다.

힘든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도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합니다.

이쯤에서 저희 식당이 소위 말하는 대박집이 아닌 것을 미리 고백합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은 식당일 뿐입니다. 


‘굴곡 없는 인생은 재미가 없다.’


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래서 저희 식당은 재미가 있습니다. 흥미진진합니다.

때론 시지프스처럼 가파른 언덕을 향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고,

때론 이카루스처럼 날개를 잃고 끝없이 추락하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그 스펙터클 하고 재미 쏠쏠한 식당 이야기를 풀어보렵니다.     

 

 어쩌다 식당 사장이 되었지만,

어설픈 골목식당 사장이지만,

나름 밥값을 하는 식당을 위해 좌충우돌, 고군분투하는 마스터와 초능력자 저희 두 사람의 식당 탄생기에 빠져 보시죠!          






 오늘은 2023년 9월 28일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브런치에 올릴 첫 글을 준비하며, 4년 전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추석 연휴를 맞이하였습니다. 

2019년 2월에 오픈한 작은 식당은 어느새 4살이 되었고, 그 새 다섯 번의 추석을 맞이합니다. 지나 보면 전부 비슷한 명절이지만, 올해 추석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매번 쉬던 추석 연휴. 이번에는 추석 당일만 빼고 영업을 한다는 거죠(영업 환경이 점점 나빠져 쉴 수가 없습니다.).

점심 영업을 마치고 초능력자와 식사를 하기 위해 주변 식당을 찾았습니다.  저희 부부도 모처럼 외식을 하려고요. 그러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식당이 전부 문을 닫아버려 한 끼 식사할 곳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아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명색이 식당 마스터라는 녀석이 밥을 못 먹어 거리를 헤매다뇨. 

그것도 명절에 처량 맞게.

에혀, 인생이 다 그렇죠, 뭐.



<한참이나 뒤져 예쁜 옛날 사진을 한 장 찾아냈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