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담긴 식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식당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나 예전에 써놓은 글을 다시 읽습니다. 대체 무엇이 저토록 사람을 비장하게 만들었는지……. 지금도 손발이 오글거리네요. 아래는 개업 후 2년이 지나 쓴 글입니다. 함께 들여다보시죠.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희망찬 시간입니다. 이제는 일에 끌려다니기보다 일을 지배하고 일을 즐기는 나날이 되기를 소망하여 봅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오직 식당 일만 생각했죠. 그러나, 신은 왜 항상 이런 순간에 나타나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인간을 시험하는 걸까요? 개업하고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코로나 폭탄이 터진 것입니다. 운수 더럽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위했습니다. 만약, 시작하자마자 폭탄이 터졌다면 식당은 연기처럼 사라졌을 테니까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버텨야 했습니다.
스타 쉐프의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노포도 간판을 내렸습니다.
줄 서던 맛집에도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같은 초짜들의 식당이 줄줄이 나가떨어졌습니다.
겁이 나고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고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시기가 도래하였습니다. 제게는 다행히도 현명한 아내가 곁에 있었습니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그녀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케터가 던진 통찰의 경구가 맺힌 가슴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백하고도 시퍼런 겨울 하늘에 마치 계시와도 같이 시원스럽게 쓰여 있던 문장 하나.
밥을 먹는 식당을 하지 말고 너라는 인간의 가치와 철학을
모두가 공유하며 행복을 찾는 곳을 만들어라.
오늘은 2023년 10월 6일입니다.
위의 글을 쓴 날로부터 다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날처럼, 제게 감겨 오는 행복의 바람은 오늘도 변함없이 따사롭습니다. 그러나 저를 둘러싼 희망의 기운은 옅어지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버티고 선 고갯길이 너무 가파르고 까마득히 높기 때문입니다. 발을 내딛기도 전에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일을 지배하겠다는 당돌한 바람도 터무니없게만 느껴집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대에도 저희 부부의 작은 식당은 여전히 문을 열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기쁜 마음으로 고객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그날을 돌이켜봅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담긴 식당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정작 제가 대체 무엇을 추구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요. 뜬구름 잡듯 그냥 그런 게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거죠.
다만 제가 염원하는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누구나 행복한 식당을 만들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앉으면 한 끼 식사에 누구이건 행복해지는 식당을 만드는 것.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식당을 둘러보니 바로 지금 이 식당이 제가 생각하던 가치와 철학이 담겨 있는 식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술에 어울리는 요리를 모두 없앴습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자들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기세 좋던 저녁 매출은 고꾸라졌습니다.
대신 저와 아내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손님들도 평온한 저녁 식사를 만끽하였습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식당에 손님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는 지친 얼굴로 테이블을 향합니다. 그런 그에게 제법 큰소리로 ‘어서 오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넵니다. 손님은 그제야 제 얼굴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는 따뜻한 밥과 정성 들인 찬에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계산을 마치고, ‘또 오세요,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에 답례하는 그의 얼굴이 밝고 환합니다.
한 끼 식사를 마친 그의 얼굴에 서린 미소를 보고 잘 웃지 못하는 제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