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깊고 푸르고 무서운 바다를 향하여
저는 편식 인간이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꿋꿋하게 닭의 알만 파먹은 달걀귀신이었지요. 계란프라이로 시작하여 계란말이, 계란찜, 스크램블드에그에, 심지어 비리다고 달걀을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호불호가 갈리는 날달걀까지도 쇠젓가락으로 양쪽에 구멍을 내어 쪽쪽거리며 잘도 빨아먹었습니다. 이쯤 되면 입에서 삐악 대며 병아리가 튀어나오지 않았을까요?
냉면은 플라스틱 고무줄처럼 질긴 걸 왜 씹느냐고 먹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맛을 몰랐던 거죠. 고기도 잘 씹지 못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고기라도 먹게 되는 날이면 입안 구석에 숨기고 굴리고 굴리다 아버지 몰래 뱉어 낸 적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자신만의 외길 인생을 걷는 것이란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이었지요.
김치도 못 먹었습니다. 매운 음식은 아예, 전혀!
오죽하면 어머니가 우리 아들은 나중에 양계장 집 딸이랑 결혼해야 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지금도 꿋꿋하게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느냐고요?
혹시 어느 개그맨처럼 삶은 달걀을 욕심내어 목이 막히도록 먹어대다가 체하여 그 트라우마로 지금은 계란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요?
설마요. 제가 바보는 아니랍니다. 냉면 맛도 이제 조금은 안답니다. 더구나 저는 맛있는 건 자주 먹습니다. 체할 정도로 한 번에 왕창 먹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맛있는 계란은 지금까지도 아주 아주 잘 먹고 있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새로 만난 친구들에게까지 편식 대마왕이라는 놀림은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기로운 식사 생활을 시작하였지요.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면 의도적으로 집에서는 절대 젓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을 집중적으로 공략했습니다. 평소라면 절대 먹지 않는 음식들만 먹었습니다. 친구들에게 편식쟁이라는 말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습니다. 식사 시간에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사랑스러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야호!
2018년 12월 어느 날,
“좋은 자리가 나왔으니 함께 가봐요.”
평소와 달리 들뜬 표정으로 초능력자가 말하였지요. 식당을 하는 것으로 그녀와 최종적인 합의를 보기는 하였지만, 그날이 그렇게도 빨리 일이 찾아올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막상 점포를 보러 가서는 어찌나 실망했던지요.
첫 번째로는 상권 자체가 평소 제가 눈여겨본 곳(동네 상권으로 꽤 괜찮았던 곳)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전에는 비교적 괜찮은 상권이었습니다.
서울의 변두리였지만 지역에서 소문난 관광호텔이 있었고(유흥을 즐기려 몰려드는 타 지역 방문객이 정말 많았답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호텔도 가까이 있었으며(호텔에서 한국 식당을 찾아 쏟아져 나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어요), 지역에서 알아주는 중국요리 맛집까지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었습니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발 한류가 시들며 코로나 사태까지 터지자, 특급호텔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끊겼고 관광호텔은 곧 폐업을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중국집은 내부 사정으로 문을 닫아버리기까지. 그렇게 갑자기 터무니없이 죽어버린 상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점포의 입지가 좋지 못했습니다.
식당들이 늘어선 길가로부터 깊숙이 들어가 있어 가게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길에서 입구가 보이지 않는 불리한 점포 입지, 통행인이 많지 않은 거리. 게다가 가게는 점주의 사정으로 영업이 중지된 상태이고……(물론 코로나19가 발생하고 사정은 더욱 나빠졌지요.).
물론 우리가 말하는 소위 대박 맛집들의 경우를 보면 상권과 입지가 좋은 곳은 드물다고 합니다.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우노 타카시’도 그의 저서인 <장사의 신>을 통해 대박 맛집이 되는 데에 상권과 입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많은 전문가가 말하길 요식업 입문자나 초보인 경우에는 권리금과 보증금을 더 주더라도 상권과 입지가 좋은 쪽에서 시작해야 실패의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어쨌건 저희 처지에서 보면 상권도 입지도 좋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실망한 것은 점포 자체였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와 오랫동안 영업을 하지 않아 마구 널브러져 있는 실내 집기들, 그리고 청소하지 않아 녹슬어 붉어질 대로 붉어진 주방 기구들까지……
하지만 나름 긍정적인 요소들도 있기는 했습니다.
무엇보다 1층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집기와 시설을 그대로 사용하여 초기 비용을 줄일 수 있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그 점포는 우연처럼 운명처럼 저희 부부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인 2019년 2월 8일, 식당의 문을 열었습니다.
아래는 당시 식당을 시작하면서 어딘가에 남긴 글입니다.
지금 읽어 보니 넘치는 비장함에 또다시 낯이 뜨거워지네요.
물론 그만큼 결의에 찬 저의 모습으로 이해해 주시길(지금 다시 읽으니 정신이 번쩍 납니다.)!
지금까지 좋은 옷에 좋은 음식만 먹고살지는 못했지만, 또한 주체 못 하는 똘끼로 사서 고생도 많이 하였지만, 나름 나의 의지대로 일하고 즐기고 사랑하며 살아왔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청춘 시절의 프리미엄은 사라진 지 오래, 정신은 익어가는데 나이라는 숫자 속에 몸뚱이는 경쟁력을 잃어만 간다.
더해지는 나이는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지만 그럴수록 기성의 관습에 저항하는 힘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강해짐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안위하며 ‘깊고 푸르고 무서운 바다’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지금부터는 우리의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하며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로 살고 싶다. 우연히 뛰어든 요식업 세계는 그 어느 분야보다도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우리의 희망을 보았다.
식당이라는 작고 소박한 마중물을 씨앗 삼아 진심으로 사람을 위하는 건강하고 맛있는 우리의 분신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우노 다카시 : 일본 라쿠 코퍼레이션의 사장으로 일본 요식업계에서 ‘장사의 신’, ‘이자카야의 전설’로 불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