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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Oct 22. 2023

식당의 탄생

4. 정신이 나갔었나 봐


 직장을 그만두고 이리저리 헤매다 다시 접한 식당 알바.

식당 일을 두 번째 접해보고는, 초짜인 내가 해도 이것보다는 잘하겠다는 생각에 간이 배 밖으로 나와버렸습니다.      


 그 식당은 이랬습니다.

장사가 안된다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일은 하지 않는 사장,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출근하여 손님이 있건 없건 동치밋국을 벌컥벌컥 마시며 왕년 자랑만을 늘어놓는 홀 담당 아가씨, 사장 앞에서는 갖은 아양을 떨다가도 그가 자리에 없으면 욕을 해대는 찬모 아주머니…….

요식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망해버릴 조건은 다 갖추고 있는 가련한 식당이었습니다.  


 식당 창업을 준비하는 초보 사장님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하나 있답니다. 소위 대박 식당만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흉내를 내려 한다는 것이죠. 좋게 말하여 벤치마킹. 한술 더 뜨기도 하지요. 한사코 그 식당의 흠집을 찾아내어 이것까지 내가 고치면 그들보다 더 좋은 식당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무서운 착각.

     

 제가 어쩌다 남의 밑에 들어가 일하게 된 것은, 망해가는 식당에서 일한 경험은,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네요(미안해요, 사장님).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그 식당은 몇 달을 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두 번째로 말아먹은 식당이었고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장사의 신’이 왜 그다지도 많은 걸까요? 어쩌다 운이 좋아 대박을 터뜨린 사람은 그나마 낫습니다. 運七技三(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몸을 움직여 돈을 버는 노동의 신성함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사기꾼들이-숫돌에 칼 한 번 갈아보지 않은, 그 칼에 손가락 한 번 베어보지 않은 자들이-예비 사장님들의 피 같은 돈을 흡혈귀 마냥 쪽쪽 빨아 먹는다는 겁니다.      


 작금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인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세이노 선배도 같은 이야기를 하였지요. 자칭 주식 전문가, 부동산 전문가랍시고 떠벌리는 자들  중에서 제대로 주식 하고 부동산 해서 돈 번 자는 드물다고. 대부분이 순진한 사람들 불러 모아 현혹하고 사기 쳐서 돈 버는 거라고.      

    




          

 기어이 초능력자를 꼬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식당 한번 해볼까? 당신 음식 솜씨 좋잖아.”

그녀는 슬픈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나 혼자 남겨두고 도망가려고?”

저는 멀뚱멀뚱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지요.

“또 무슨 핑계 대고 그만두는 거 아니냐고.”

저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습니다.

“내 가겐데 어떻게 그만둬? 죽기 살기로 해야지.”

그녀는 저의 대답에 혀를 끌끌 차며 말했습니다.

남 밑에서는 왜 죽기 살기로 못해?


“……”

      

 ‘그 회사는 가짜 약만 팔잖아, 저 회사는 사장이 도둑놈이고’ 하며 온갖 구실을 만들어내 어렵게 이직에 성공한 회사를 다시 쉽게 그만둔 사람이 바로 저였지만, 다행히도 초능력자는 잔소리하기보다는 저를 믿어주었습니다(사실은 그녀 자신을 믿었겠죠). 간신히 초능력자의 승낙을 얻어낸 것입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건 내 말을 따라야 해. 알았지?”   





                 

 저는 몸을 쓰는 일은 태생적으로 잘하지 못합니다. 일머리도 부족합니다(일에 머리가 달렸다고? 일머리가 무슨 말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려면 손과 발이 빠르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결정하여 신속히 움직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제게는 그런 재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선배들이 하는 가게를 찾아 잘하는 것은 배우고, 아닌 것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반복하여 몸을 숙련시키고, 머리로는 관련 서적을 읽으며 깨우쳐 나가기로 한 겁니다.      


 적당한 점포를 물색하는 한편, 개업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손꼽아 보았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식당과 관련된 책 읽기. 요식업 초보이기에 책을 통하여 간접 경험을 쌓고 식당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공부하여 내공을 쌓는 거죠.

 (식당) 창업 관련 서적 10권, 음식 및 요리 관련 10권, 프랜차이즈 사업 관련 10권의 책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초능력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점포를 찾아내는 바람에 이 다짐은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개업 이후에 다양한 종류(식당, 창업, 경영, 마케팅, 인문학, 심리학, 자기계발서 등)의 책을 꾸준히 읽으며 부족한 내공을 채워갔지요.      


 제가 읽는 책이 저자 자신이 실제로 몸으로 부딪치며 겪은 경험담을 옮긴 책이기를 바랬습니다. 식당 컨설팅 전문가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공감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겉만 화려하고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스로 땀을 흘리며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며 업을 이루어낸 사람의 글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짜깁기하여 전문가인 양 행세하는 사람의 글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후자의 책을 읽고 현장에 적용하려 해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저 책을 팔아 돈만 벌면 된다는 얄팍한 상술만이 가득한 책이 이 세상에 널려 있다는 거죠.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니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만약 내가 세상의 식당들을 흉내 내지 않고 보다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식당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기존의 관습을 철저히 무시하고 밥 먹을 때 행복한 식당만을 생각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성공한 식당을 흉내 낸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은 감소시키지만, 재미있고 개성적인 식당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는 아쉬움, 그런 후회가 참 많이 듭니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이 모여 밥을 먹는 장소에 특별한 규칙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네요. 밥 먹고 기운 내고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요?      


 그럼에도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소위 음식 전문가라는 사람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횟집에서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나오면 이상하다.’ ‘빈대떡집을 브런치카페처럼 꾸며 놓는다는 건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뭐 이런 식의 진부한 생각을 하는 거죠.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순간, 안타깝지만 세상을 바꾸는 파격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지금 식당을 시작한다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아, 정말 자신 없네요. 식당을 하려면 팔다리 힘도 좋아서 무거운 물건도 척척 잘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      

 사실 식당 창업을 주저하게 만드는 여러 장애 요소 중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건 바로 사람입니다. 착한 고객 덕분에 신나서 일하지만,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가게 문 열기가 싫어지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아무래도 저는 대박 식당의 주인 되기는 애당초 글러 먹은 사람인 것 같네요.

하지만 말이죠, 그런 폼나는 사장이 되지는 못할망정 착한 식당의 주인 됨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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