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도 Oct 24. 2023

식당의 탄생

5. 괴로우면 욕심이더라

 

 앞서 말씀드렸죠? ‘식당의 탄생’은 멋진 성공담이 아닙니다. ㅠㅠ

뒤죽박죽, 엉망진창, 오락가락하고 아슬아슬한 똥멍청이의 인생 분투기이며, 머리 위로는 포탄이 쏟아져 내리고 발밑으로는 지뢰밭투성이인 요식업계의 사선을 천둥벌거숭이 녀석이 요리조리 피해 넘어가는 웃픈 모험기랍니다.           





  

 우연히 법륜 스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느 불자가 스님께 묻습니다.

“요즘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욕심을 주체하기 어렵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스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욕심인 줄 알면 내려놓으면 되고, 감당할 만하면 하면 되지.”

스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괴로우면 욕심이에요.”

“불덩이를 쥐고 뜨겁다고 해요. 그러나 손을 놓지 못해요. 욕심 때문이에요. 결국 손을 데어요. 손을 다치지 않으려면 그냥 놓으면 되는데, 놓는 법을 몰라서 못 놔요? 갖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쥐고 있는 거예요.”

답답한 스님은 한마디를 하고 이야기를 접습니다.

“본인이 괴로워지고 싶다는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      






 2019년 2월, 식당 개업을 며칠 앞두고 처형 내외가 찾아왔습니다. 격려와 함께 이런저런 조언과 덕담을 저희 내외에게 해주었지요. 그 말끝에는 걱정 어린 당부의 말도 있었는데요.      

“제부, 가게를 개업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음식의 양을 줄이지 마세요. 설령 장사가 안되더라도 흔들리면 안 돼요. 양이 줄면 손님들은 대번에 알아차려요. 말을 안 할 뿐이에요. 아셨죠?”      

제게 당부의 말을 건네는 처형의 표정은 부드러웠으나 말투는 무척이나 단호했습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하며 저는 마음속으로 툴툴거렸지만, 겉으로는 처형의 당부에 그렇게 하겠노라 시원시원하게 대답한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던 저이기에 그녀의 충고는 한낱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바쁜 나날이 이어졌지요.

개업하고 반년 정도가 흘렀을 겁니다. 오픈 프리미엄이 걷히고 계절적으로 비수기에 접어들며 매출이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하던 차에 거래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산지의 물량 부족으로 원재료 가격을 올려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일은 절대로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더니 매출이 떨어져 힘든 시기에 쐐기를 박는 악재였습니다.      

 더구나 인상된 원재료는 대표 메뉴의 원재료였습니다. 제일 많이 팔리는 효자 메뉴였던 거죠.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재료비 비중이 높았던 메뉴임에도 판매가격을 시장 가격보다 낮게 책정하여 박리다매를 꾀했던 메뉴라 타격은 더욱 컸습니다.

 소위 ‘이렇게 팔아서 뭐가 남아요?’ 하며 단골 고객들이 걱정할 정도의 메뉴였던 것입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치지 않는 고민에 불면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경쟁이 심한 상권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음부터 재료의 양을 다른 동종업체보다 상대적으로 늘려 잡았기에 더욱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게를 시작한 지 겨우 6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가격을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내몰린 것입니다.      


 아, 어리석은 자여, 그대 이름은 똥멍청이!

결국 저는 처형이 그렇게도 말리던 나쁜 방법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간곡한 당부의 말이 끊임없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애써 기억의 문을 닫아 잠그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거듭 자신을 달랬습니다. 그리곤 세상 똥멍청이는 고객들의 불만이 들려올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괴로우면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상만사가 인과응보임에도 아직껏 나불대고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반전의 대박 사건이 있었겠지요? 맞습니다. 다행히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저를 폭망의 늪에서 끌어내어 준 튼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오, 주여!

엎드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사건은 단골 고객의 클레임이었습니다. 개업 초기부터 줄곧 찾아주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그분은 저의 흔들림에 종지부를 찍어 주었습니다.      

“이거, 양이 줄었어요.”      

그러나 저는 못 들은 척하였습니다. 값을 올리는 것보다는 낫다, 망하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자신을 속이고 또 달랬습니다. 결국, 그 고객은 가족과 함께 저의 식당을 떠나버렸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일어났습니다. 같은 메뉴를 주문했던 고객으로부터 클레임 전화가 걸려 온 것입니다. 전화기 너머 고객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보였습니다. 빈정거리는 목소리까지 보였습니다. 결국 메뉴의 양이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마음 가난한 자의 영혼을 흠씬 두들겨 팬 두 가지 사건 이후, 화들짝 놀란 저는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렸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결책인지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만큼 떠났던 고객의 마음은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돌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아찔하게 천 길 낭떠러지에 서 있던 나날들.

그분들은 제 생명의 은인과도 같습니다. 그분들이 있지 않았다면 욕심쟁이의 가게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 두 사건 이후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객들은 불만이 가득해도 절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발길을 끊을 뿐이라는 것을. 어리석은 식당 주인만이 그걸 모릅니다. 처형,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요. 맹세합니다.      






 인생 참 모른다는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최근에 말이지요.

떠났던 그 단골 고객이 돌아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내의 등 뒤에 숨어 돌아온 고객을 꿈꾸듯 바라보았습니다.

혹시나, ‘흠, 이상하군. 아직 안 망했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는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저, 내려놓았어요. 다 버리고 정신 차렸단 말이에요.”


작가의 이전글 식당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