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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Oct 29. 2023

식당의 탄생

6. 나의 왼손


 이제 본격적인 식당의 탄생을 위해서는 이 아이의 이름이 필요합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소위 네이밍(naming, 이름 짓기) 작업 말이에요. 앗, 깜빡했네요. 이 아이는 프랜차이즈가 아니에요. 따라서 고객의 머릿속에 아로새겨질 멋진 이름이 더욱 간절했지요.  

    

 이름을 짓는다는 것. 정말 중요한 작업 맞죠?

그래서 사람 이름을 짓는 작명가가 따로 있고, 사물의 경우에는 네이밍 전문가, 전문 기업이 따로 있잖아요. 제 이름만 해도 어릴 적 얼마나 놀림을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잘못 지었다고 겉으로는 말 못 해도 마음속의 원망은 많았답니다. 아무튼 사람이건 식당이건 이름을 막 지으면 안 돼요.  

   

 우리 가족은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았습니다.

가족회의니만큼 먼저 가족의 면면을 소개하여 드릴게요.      

대학 시절 같은 학과 선후배로 만나 과  커플이었던 저와 초능력자는 캠퍼스라는 학구적 무대에 올라 연애학 개론의 실전 학습에 심취하였습니다.  마침내 졸업 후 결혼하여(와우! 올 12월이면 결혼 30주년을 맞이합니다) 1녀 1남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큰 아이는 대학원을 다니고, 작은 아이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지요.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가족의 결속력이 남다른 편입니다. 아이들의 독립심도 강합니다. 낯선 타국에서 오래 살다 보면, 결국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족뿐이기에, 가족 간의 똘똘 뭉치는 힘은 자연스레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가족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손을 번쩍 들고, 기선 제압을 위해 미리 생각해 두었던 이름들을 침을 튀겨가며 서둘러 뱉어냈지요. 서민식당. 조선식당. 한성. 보통사람들. 설천식당. 시인의 마을. 시인류(詩人類) 등등(지금 불러보아도 너무 좋잖아).

 설천(雪天)은 등단 시인인 저의 필명으로 창업을 준비하던 당시만 해도 시 쓰기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상호 또한 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것저것 생각하였네요.      

아무튼 제가 언급한 이름은 분하게도 아이들과 초능력자에게 퇴짜를 맞았고 결국은 딸이 생각해 낸 ‘오늘도낙지’라는 이름이 채택되었습니다(세 명이 좋다고 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호가 정해지자 초능력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양 철학자처럼 뜻풀이를 하며 네이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랜딩 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식당의 탄생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지요(당신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초능력자가 만든 글을 옮겨 봅니다.

부연 설명을 드리면, 그녀는 애당초 한자가 없는 ‘낙지’라는 단어에 즐거운 땅이라는 의미의 漢字, ‘樂地’를 차용하여 식당의 이름에 ‘낙지를 파는 즐거운 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즐거운 땅(楽地)’ 지킴이예요.
저희 ‘오늘도낙지’가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도낙지’는 저희 딸의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진 브랜드 네임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많은 가게 이름들을 써보고 불러 보던 중에 ‘오늘도낙지(楽地)’라는 이름이 느낌도 좋고, 부르기도 좋고, 기억하기도 좋았답니다.
오늘도 내일도 즐거운 땅에서 맛있는 낙지 드시고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녀는 아들이 만든 로고 서체에 대한 스토리 또한 만들었습니다.     


 로고 서체는 평소에도 캘리그래피를 즐기는 아들의 작품입니다.
납작붓과 둥근 붓을 이용해 물감으로 써보기도 하고 도안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최종본은 붓펜으로 작업을 완성했는데 두 글자를 강조했답니다.
줄여서 부를 수 있도록 가독성을 키운 것이랍니다.



로고 캐릭터는 역시 재주 많은 그녀가 직접 그렸습니다(생각해 보니 저는 한 게 없네요).    

  

캐릭터는 제가 그렸는데 왼손잡이인 마스터를 그린 거예요.
왼손에 웍을 들고 낙지볶음을 만들며 불쇼를 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낙지와 신나게 춤추는 장면을 떠올려서 그려 본 캐릭터예요.
가슴에 SLH는 Son's Left Hand의 이니셜입니다.
마스터가 정성껏 만들어 낸 한 끼를 즐겁고 더욱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식당 주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먼저 되었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산하 지역 문인협회 신인상 공모에 당선되어 정식으로 등단을 하였지요. 사실 등단 전부터 이름도 모르는 여러 문예지 관련자들이 SNS에 올린 저의 글을 보고 시인이 돼라 권했습니다. 글이 좋다며 부추기는 그들은 한결같이 금전을 요구하더군요. 내 소중한 글 값을 받기는커녕 돈까지 내고는 절대 시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시인이 된 것이지요.      

 제게 있어서 시인이란 존재가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인이란 호칭 자체가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시인인 것이 그냥 좋습니다. 물론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이 분하고 부끄러울 따름이지만요.      


 개업을 준비하며 자작시 하나를 가게 구석에 경구처럼 걸어 두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식당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진 글이 바로 아래의 것입니다.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나의 왼손      


당신의 끝없는 노고

감히 가늠할 수 없지만

투박한 나의 왼손으로

정성의 한 끼 내어드리니

그 작은 것으로

당신의 얼굴에

옅은 미소라도 번지면

나의 왼손

거칠어져 볼품없어도

그저 행복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식당의 브랜딩은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건은 이 아이를 이름에 걸맞게 키워냈냐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아이가 자라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미안한 마음도 큽니다.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는 멋지게 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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