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열기 가득한 그곳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일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모여들었죠. 동서양을 망라한 다양한 인종의 학생 중에서도 제가 속한 클래스에는 유독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았는데, 중국인 학생들은 절대 결석을 하는 일이 없이 오전 수업을 들었고, 수업을 마친 오후에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던 모습이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반면 한국인 학생들은 많이 달랐습니다. 대체적으로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일본의 문화를 즐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사는 놀자파 아이들도 적지 않았지요.
음식을 화제 삼아 수업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본인 여선생님이 제게 묻습니다.
“손상(孫さん)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요?”
지금은 철근도 씹어 먹을 만큼 식탐 덩어리로 변한 저이지만 그때만 해도 살기 위해 먹는 야윈 인생이었기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지요.
“저요? 저는 그냥 숨만 쉬면 됩니다. 먹는 거에는 관심 없어요.”
그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정말 답답하다는 듯,
“아휴, 손상은 참 재미가 없는 사람이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모르고.”
“음……”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미식가’라든가 ‘식도락’ 따위의 말은 저와는 동떨어진 세계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생각했었으니까요.
오직 생존을 위한 섭식 생활이었기에 맛있는 일본 음식에 눈길을 보낼 여유가 없었습니다. 좀 더 솔직해져야겠군요. 가난한 어학 연수생에게 있어서 현지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한낱 사치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흰쌀밥에 룸메이트 형이 만들어준 허연 무채를 얹어 먹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한 끼였던 시절이었답니다.
한편, 같은 학구파 중, 저보다 몇 살 많은 형의'요리를 배우러 일본에 왔고, 부족한 일본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어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무슨 요리를 배운다는 걸까?
그렇습니다. 그 당시의 제게는, 아니 더 나아가 사회의 시선 속에는, 요리사가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형은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이 확실했던 것인데 말이죠. 지금쯤 아마도 대단한 오너 셰프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반면 저라는 인간은 직장 생활을 포기하는 순간, 요리 세상을 만났습니다.
가족들과 중국에서 다시 호주로 갈 것을 결정했을 때 잠시 일식 요리 학원엘 다녔던 것이죠. 호주에서 작은 일식집을 하겠다는 꿈을 꾸면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 결국은 가족 모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요식업에 대한 씨앗들이 자라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저를 감싸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운명일 지도 모르는 우연이 하나둘 쌓이고 쌓여 저는 결국 오늘도낙지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요리사 모두 셰프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인지 요리사보다는 셰프라는 이름이 '격'이 높게 느껴지기에 갑작스러운 그들의 신분 상승에 한참 동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식당도 예능 프로의 중심에 우뚝 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식당은 그만큼 대우받는 걸까요?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셰프들은 대단합니다. 요리사들이 환기도 잘 안 되는 좁은 주방에서 고열과 유독 가스에 시달리며 땀을 흘릴 때 매스컴에 등장하는 셰프들은 위생 모자도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잘 다려진 멋진 옷을 갖추어 입고는 모두가 감탄하는 음식을 척척 만들어냅니다. 무엇이 저와 그들을 가르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뭐지?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골목식당, 윤식당, 수요미식회, 냉장고를 부탁해, 맛있는 녀석들과 같은 소위 먹방 프로그램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는가 말이죠. 물론 먹방 프로에 나오는 예능인들을 위해 프로가 만들어지지는 않겠죠. 그럼 그 프로를 만드는 유명 PD를 위해서 프로가 만들어지나요? 아니 아니 그 프로를 만드는 방송국 사장님을 위해서일까요?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요? 당연히 그 프로의 광고주를 위해서 만들어진다고요? “아니 당신은 왜 그렇게 삐딱해? 그 프로는 식당을 하는 자영업자들을 포함한 일반 시청자를 위해서 있는 거잖아.” 아, 그런가요? 아무래도 단순하고 무식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겠습니다. 그 프로를 보려고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위해서, 시대적 사명으로 공익의 목적으로, 너도나도 먹방의 유행 열차를 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에서 보면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매슬로우는 죽기 전에 5단계 욕구 피라미드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 피라미드가 뒤집혀야 옳았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즉, 인간에게 있어서 먹는 문제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면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욕구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이 생리적 욕구에 관한 관심이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도처에 널려 있는 모든 식당이 관심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착하거나 우아하거나 화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일 뿐입니다. 대중에게 선택되는 식당은 착하지만 다르고 우아하지만 다르고 화려하지만 다른 식당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모름지기 식당의 주인은 음식을 즐겨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지금의 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새로운 요리에 대한 호기심도 강하여 나름 식당 주인 됨을 즐기는 경지에 올라섰습니다. 물론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아직껏 뚜렷하지만, 차라리 주관이 있는 편이 낫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어느덧 다시 주말입니다. 오늘은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지낸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친구는 많이 회복한 듯합니다. 어떤 식당이 저와 친구를 반겨줄지, 그 기대감에 몸과 마음이 들뜨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