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The 3rd Life(3):귀촌의 꿈

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by 판도

한때 자연인의 삶을 꿈꾸었다.


열망하고 소원했다.


누굴 만나든 자연인으로 사는 게 로망이라고 떠들어댔다.


중년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 믿었다.



그런데 말이다.


또래 남자들이라면 모두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으려니 생각했건만,


그건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을 뿐...


시골스러운 삶을 반기지 않는 도시형 사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뼛속까지 차도남이지만, 어렸을 적부터 줄곧 시골을 동경해 왔다.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내 심장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을 지도.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사라지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들은 할머니댁에 간다는 한결같은 이유로 하나둘 사라졌다.


나만 갈 곳이 없었다.


외할머니는 고사하고 먼 친척 한 분도 시골에 살지 않았다.


방학 때도 그저 고향인 서울을 맴돌아야 했다.


답답했다.


산과 들과 바다가 그리웠다.


자라면서 그것이 타고난 나의 성향이라 거듭 믿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반전 하나.


도시가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들과 산이 최고의 터전이기는 하나, 때로는 환기가 필요했다.


'생활은 주로 바다에서, 휴식과 번식은 뭍에서' 하는 물개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잘 지내지만 고독이 가득 차면 화려한 도시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걸.


사실 자연인을 꿈꾼 것은 각박한 콘크리트 벽 속의 생활을 벗어나려 했던 것이지 궁상맞은 산속 은둔 생활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은 2도 5촌 정도의 도시와 전원의 생활이 적절히 혼재된 물개의 삶이다.


*


근래에 들어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지역의 공동체가 그렇다.


날이 갈수록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어렸을 적 인구 정책의 상징적인 캐치 프레이즈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남아선호사상이라는 구시대적 관습이 남아 있던 그 시절, 줄줄이 여아를 둔 가정에서는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고 애를 썼고, 이 때문에 인구의 증가를 원하지 않은 정부의 가족계획이 연이어 실패하고 있었다.


즉, 위의 캐치 프레이즈는 출산억제제도였던 것이다.



시대 조류의 변화가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은 어떤가?


지구촌 어느 국가도 인구 감소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인구가 국력인 시대이다.


*


정부가 운영하는 귀농귀촌 플랫폼으로 '그린대로'라는 게 있다.


그린대로.PNG


정부의 귀농귀촌 지원 정책을 소개하고 각 지자체의 모든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총망라한, 농촌의 삶을 원하는 국민을 위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라고 해도 아무나 두 손 벌려 환영하는 건 아니다.


점차 기반이 무너져 가는 농촌 지역을 살릴 젊은 청년이 환대받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인구 유입 정책에 올라타 숟가락만 올려놓으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할 리 없다는 것이다.


돈보따리를 싸고 내려가 지역 경제가 휙휙 돌아가도록 돈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지자체의 보조금 등으로 연명하려는 사람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가워하지 않는다(인구야 늘겠지만).


그래서 모든 지자체가 귀촌보다는 귀농을 반기고 우선시한다.


여기서 상충하는 문제 하나.


농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귀농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농촌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농사가 내 남은 여생의 꿈이라고 하여도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농사는 주소만 옮긴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시골에 내려가 농업을 영위하려는 자는,


(농촌 지역에) 기반이 필요하고


(농업) 기술이 필요하고


(텃밭 수준의 취미 농업이 아닌 이상) 자금이 필요하다.



농사라는 것, 용감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차체의 귀농 장려정책을 겁 없이 덥석 물었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다.


남은 여생의 꿈인 시골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농사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귀농이라는 패러다임은 지금처럼 부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


요즘 화제의 인물 중의 한 사람이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우승한 최강록이다.


그의 면면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언론이 그려내는 인간 최강록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


특히 그의 요리 솜씨보다 인간적인 면모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만만하게 느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어눌한 모습이 더욱 친근하다.


그는 흑백요리사 시즌 1에서 탈락하고 이번 시즌 2에서 우승했다.


도전이란, 성가시고 두려운 행위이고


도전의 결과가 실패라면,


더욱더 세상이 두려워지고 힘 빠질 것이다.


더구나 재도전이라니.



살다 보면 '나는 못해' 하고 한계를 지어버리는 일이 꽤 많다.


그중의 하나라도 도전한다면 과정만으로도 짜릿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귀촌만 해도 너무 막연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겠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아래처럼 나를 설득하는 말을 써본다.


귀촌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서 말하는 귀촌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


도전 타령을 했지만, 귀촌은 도전도 뭣도 아니다.


그냥 내려가면 그런대로 살길이 열릴 것이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내 성격에 충동적으로 내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시골살이는 요원해진다.


자유의 달콤한 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도 않는다.


시골살이 경연대회에 나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은 어눌한 모습으로 그곳에 등장한들 마구 혼내며 쫓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저것 요리조리 따지다 늙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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