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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Jan 28. 2024

식당의 탄생

19.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골목식당 여름 풍경


          

구닥다리 에어컨 덜덜덜

나른한 권태를 토해 내는

팔월 오후 두 시 무렵

      

객은 낮술에 취하고

주인은 선잠에 취하고

     

등짝 달라붙은 선풍기 헐떡헐떡

귓가 맴도는 옛날 노래를 잡아먹고

여인들은 홀 구석 테이블에 앉아

우두둑 얼음과자 잡아먹는데    

  

어느새 창밖은 어두워져

검어진 쪽창에 비친 알전구

하나둘 감귤 빛을 발할 때    

  

이따금 들리는

희미한 여름의 웃음소리  

    

그 웃음소리 사이사이로

장수풍뎅이 한 마리 붕붕 날아다닌다          






 2019년 8월이다.

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저녁 8시, 서울 기온 33도, 주방 온도 34도.

 홀에는 에어컨 2대(10년 훌쩍 넘어 나 같은 고물이다)와 3대의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역부족. 홀도 덥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주방과 비교하면 천국이지만. 만약 내가 가게를 처음부터 꾸밀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주방부터 제대로 만들겠다. 적어도 통풍이 잘되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겠다. 에어컨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창문만 크면 좋겠다. 덕트 힘차게 돌아가고 공기가 통하는 주방 전용의 출입문 하나 있다면 너무 좋겠다.      


 여름은 참을 수 있지만 여름 주방은 참기 어렵다.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다     

 

 개업하고 5개월이 지나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막상 서비스 신청을 하고 메뉴 사진을 찍으면서도 ‘꼭 이걸 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갈등이 많았지요. 물론 가게의 매출에 도움이 되기에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오픈 프리미엄이 가시고 날씨가 더워지며 바야흐로 비수기에 접어들고 있었기에 사정은 더욱 급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가입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썩 내키지 않는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모양입니다. 이놈의 배달 서비스는 왜 그렇게 하기가 싫었던지요. 물론 하기 싫은 이유야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지요.    

  

 우선 가장 큰 이유는 가게를 직접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배달 수수료만큼 마진이 줄어드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매장의 가격과 다른 가격을 가져가는 것도 좋지 않고 태생이 비싼 낙지요리를 더 비싸게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또한 보이지 않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대상으로 별점 따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로 다가왔습니다. 리뷰도 마찬가지구요. 정말 싫었습니다.     

 

 그렇게 배달 서비스 이용을 차일피일 미루던 저희 부부는 속절없는 매출 하락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가게를 연 이상 나쁜 짓 빼고는 다해봐야 한다, 그저 과외로 벌어들이는 부수입이라고만 생각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한결 결정이 손쉬워졌습니다. 그렇게 2019년 여름, 개업한 지 5개월이 지나 첫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코로나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슬기로운 배달 생활’이 되어 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일은 어제와 다르기를 - 아침 장사 이야기

     

 《2019년도 8월에 접어들었습니다.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모처럼 휴식을 취했습니다. 짧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다시 영업을 재개하며 큰 기대를 했는데 이번 한 주는 정말 한산하게 지나갔네요. 참 알 수 없어요. 식당 일이라는 거…. 저희 두 사람은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식당이 유지되는 게 희망이고 그러다 보니 항상 여러 가지 궁리를 합니다. 메뉴며 홀이며, 주방 시스템이며…. 배달 서비스도 그랬고요.      

9월부터 아침 장사를 해볼까 준비 중입니다.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겁니다. 메뉴는 죽과 눌은밥이 주가 되고 전복물만두며 낙지한입만두, 낙지볶음과 새우가스정식까지 저희 둘이서 쳐낼 수 있는 범위에서 함 해볼까 합니다.      

 아직 확정된 것이 없어 좀 더 공부해야겠지만 달걀낙지죽과 눌은밥은 아침 메뉴로 꽤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하여간 식당도 하나의 생명체나 다름없습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원활히 움직이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점주가 부지런하고 한결같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인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참 힘들고 아무나 못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 땅의 자영업자, 특히 요식업 종사자님들 힘내세요~^^》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안 되는 게 참 많았네요. 아침 장사도 두어 달 하다가 그만둔 것 같아요. 막상 아침 장사를 접고 나니 아쉬움보다는 묘한 해방감에 전율까지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는 동안 이토록 효율이 떨어지는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이 컸거든요. 장기적인 안목으로 뚝심을 갖고 견뎌 냈으면 또 어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힘만 들이다 놓아 버렸습니다. 아마도 강남역 부근의 밥집이었다면 출근하는 회사원을 대상으로 잘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것도 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일이지만요. 이것저것 제법 많이 새로운 시도를 했는데 잘된 것보다는 안 된 것이 더 많았기에 속이 쓰립니다. 지속 가능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려면 그만큼 많이 시도하고 오랫동안 버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눌은밥은 누룽지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수고에 비해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아침 장사를 하는 동안 고작 한두 그릇 팔린 거 같네요. 안 하느니만 못한 장사였습니다. 물론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분한 마음을 풀고 싶은 심정이 가득하지만요.      


 반면에 달걀낙지죽은 찐팬들이 계셨고 아침 장사를 접은 이후에도 찾는 분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메뉴가 되었습니다.  정말 욕심나는 대로 백화점식으로 메뉴를 구성하면 이도 저도 아닌 가게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를 못하는 욕심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으면 가게 일도 앞으로의 일도 더욱 잘 풀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무소유가 정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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