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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Feb 04. 2024

식당의 탄생

20. 신메뉴 이야기 2 - 낙지 파스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 김승호는 외식업계에서는 꽤 알려진 사람이더군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오는 데 동감이 가는 말이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공정 서비스 권리 안내>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상품과 대가는 동등한 교환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훌륭한 고객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담아 서비스를 제공하겠지만 무례한 고객에게까지 그렇게 응대하도록 교육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존중을 받아야 할 훌륭한 젊은이들이며 누군가에게는 금쪽같은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직원에게 인격적 모욕을 느낄 언어나 행동, 큰 소리로 떠들거나 아이들을 방치하여 다른 고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실 경우에는 저희가 정중하게 서비스를 거부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책을 읽고 정말 내 마음과 똑같다며 손뼉을 쳤지만, 한편으로는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저 또한 저자와 같은 자세를 취했지만, 그처럼 이성적이지도 냉정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식당에 찾아온 무례한 고객들을 용서하지 못했고 그들에게 화를 냈으며 그들과 싸웠기 때문입니다. 반성합니다.


         




 식당을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더함의 노력과 덜어냄의 용기      


 왜 메뉴를 더할까? 불안해서가 아닐까? 지금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인데 이것은 바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현재의 구성에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리라.      


 가게는 영업을 시작한 지 만 2년이 넘었고 부족하지만 메뉴 구성도 웬만큼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다른 메뉴에 눈길이 갑니다. 물론 개업 초기에는 손님들의 권유와 요청 등으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메뉴들이 자연 도태되는 과정도 목격하였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의 메뉴 구성이 100% 완성되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고 추가해야 할 메뉴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쓸데없는 메뉴들이 보입니다. 빼고 싶은 메뉴들이 보입니다. 조리하기가 힘들어서 빼고 싶고 식재료 비용이 너무 비싸서 빼고 싶고 다른 메뉴에 비해 판매가 안 되어 빼고 싶고 우리 가게 분위기와 너무 안 맞다고 해서 빼고 싶습니다.   

   

 맛집이 되려면, 전문점이 되려면 메뉴를 단순화하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식당은 맛집이 아닙니다. 메뉴가 넘쳐납니다. 백화점식 메뉴 구성으로 모든 손님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보입니다. 욕심이고 불안함의 표현입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우지 못합니다.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붙들고 머리에 이고 어깨에 걸머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맛집 또한 처음부터 메뉴가 단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넣고 빼기를 반복하다가 지금의 구성을 이루어 맛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들도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의 메뉴는 처음부터 제가 간절히 원한 것이 아니기에, 이것밖에 없었기에 시작한 거라고 합리화시키면서 다른 메뉴에 눈이 갑니다. 좀 더 근사한 것에 눈이 갑니다. 저걸 하면 좀 더 내가 나아 보일 거야 하는 마음이 큽니다. 폼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전입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집중과 선택은 마지막의 과정에 선물처럼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까지는 힘들어도 귀찮아도 계속해서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낙지 파스타 이야기     


 파스타는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지만 내게 파스타란 쉬운 요리가 아니다. 면을 삶는 전처리 과정부터 재료를 볶고 소스에 면을 버무려내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그런 요리를 메뉴화시키면 좋겠다는 욕심에 덜컥 물어 버렸다. 나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지 않다. 맛있는 것을 먹기만 좋아할 뿐이다. 감각도 없다. 창의성도 없다. 가게를 열고 코로나 시대에도 운 좋게 버틴 이유는 간단하다. 곧이곧대로 레시피를 사수하며 미련스럽게 반복하여 숙련시킨 것뿐이다.  

    

1. 낙지파스타 그 시작

 파스타가 이탈리아 음식인지도 몰랐던 내가 파스타 요리를 만들겠다고 하였다. 책을 빌려 보고 친구가 만들어준 파스타 요리, 알리오 올리오를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먹었다.      

 이제는 내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네 번을 만들었는데 앞으로 몇 번이나 만들어 봐야 손님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을까?

처음엔, 너무 짰다.

두 번째에는 너무 싱거웠다.

세 번째는 의도대로 매운맛이 나게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었지만, 토마토소스의 양이 부족했다.

오늘 네 번째, 매운맛에 케첩의 신맛이 약간 나면 좋겠다고 한다. 무작정 매운맛만 나면 그냥 그런 맛일 것이다. 매콤 쌉싸름한 맛으로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고 싶다. 그럴 때까지 계속 만들어야지.      

 그러나, 결국은 포기했다.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았다.

노력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낙지볶음 웍질이나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2. 우연 속의 재도전

 포기했던 파스타를 살릴 기회가 찾아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지난 설날(2021년 구정)을 전후로 하여 소상공인을 위한 무료 기술 전수 프로그램을 통해 명인으로부터 낙지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웠다. 사실 낙지 파스타는 전에도 한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메뉴이다. 파스타와 낙지볶음의 장점을 살려 낙지 파스타를 만들었지만, 파스타도 아니고 낙지볶음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맛에 나 자신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메뉴를 이번에 명인께서 다시 소환하여 주셨다. 물론 지금의 비좁은 주방 형편을 감안하면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기본 메뉴와 다른 재료, 다른 기구들을 사용해야 한다면 엄청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조리의 합리성마저 망가뜨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형국이 되어 버린다. 다행히도 명인께서 알려 주신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기존의 소스와 새로운 재료들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루어지기에 불합리한 면도 적었다. 그리고 가장 경이로운 점은 기대 이상으로 파스타의 맛이 좋았다. 약간 매콤한 낙지볶음 본연이 맛이 잘 살아 있으면서 크림 파스타가 갖는 부드러운 식감도 더하여져 맛의 조화가 적절했다.

문제는 계속해서 무언가 재료를 추가해서 좀 더 특별한 메뉴로 완성해 내겠다는 나의 끝없는 욕심이었다.      

 지속적인 맛 테스트를 거쳐 메뉴의 완성도를 높여 시식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피크 타임에 내가 이 메뉴를 정상적으로 쳐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평일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릴 때도 다른 메뉴처럼 정상적인 속도로 조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테스트를 해보았더니 사전에 각각의 재료를 소분하여 준비하면 정상적인 속도로 주문을 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좁은 주방에 약간 방식이 다른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여 만들어내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기존의 시스템이 망가져 버리고 주방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피크 타임에 신메뉴를 서브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찾은 합리적인 방안은 손님이 뜸한 시간대에 맞추어 메뉴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메뉴의 안정적인 판매를 꾀하고 한편으로는 손님이 적은 시간대에 손님을 불러 모으는 효과까지 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비가 오는 날에 선보이는 부정기적인 메뉴로 제공하는 한편 손님이 적은 토요일에 제공하여 정기적으로 손님들이 새로운 메뉴를 맛볼 기회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주에 예정에도 없던 비 소식으로 정식 메뉴 스타트를 진행하였으며 그 주말 토요일에 정기 메뉴로 함께 시작하였다.


 아직 결과는 모른다. 다만 한가한 시간대에 손님을 불러 모으고 동시에 그 시간에 편하게 서브할 수 있는 메뉴를 정식으로 데뷔시킬 수 있음에 현재까지는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앞으로의 맛과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게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파스타 전문점과는 비교하지 못할 것이다. 그곳의 훈련된 조리사들과 내 수준은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다만 편안한 우리 가게의 분위기 속에서 합리적인 가격과 생각보다 괜찮은 맛으로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성공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낙지 파스타가 안정적으로 세팅이 되면 그 이후에는 낙지 까르보나라와 낙지 리조토까지 영역을 넓혀 서브하는 것이 나의 최종적인 바람이다. 계속 노력할 것이다.      

    

3.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행운

 선생님께서 파스타는 라면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하셨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대중적인 음식이라는 거다. 그런데 나는 라면을 제법 잘 끓인다. 그래서 파스타도 별거 없겠구나. 라면 끓이듯 끓이면 되겠다 하고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      


 가게를 정체기에 빠트리지 않고 순항시키려면 신메뉴의 지속적인 개발은 필수이다. 물론 메뉴 수를 한없이 늘리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숙제일 뿐이다. 메뉴를 새로 개발한다면 가급적 기존 메뉴와 연계성이 높아 가게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좋다. 기존 메뉴의 메인 재료를 중복 사용 가능하면 재료의 활용도가 높아서 재료비 비중을 낮출 수 있다. 한 가지 재료를 버리는 부분 없이 모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메뉴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불쑥 쉽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해야 한다. 이론을 숙지하고 반복적인 실습을 하고 나만의 개성을 담아 새롭게 해석한 음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출시하고도 반응이 시큰둥하면 몇 달을 못 버티고 쉽게 단종을 시켜 버린다. 그래서 더 어렵다.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급히 서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시작했으면 뚝심 있게 기다리며 부족한 부분을 더욱 개선하겠다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4. 결과는?      

인기는 좋았다.

평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감당하지 못하였다.

다른 메뉴를 쳐내면서 파스타까지는 버거웠다.

모두 내 탓이다.

부끄럽지만 현실이다.

아쉽고 아깝다.    


      




 낙지 파스타처럼 사라진 메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포케에 홀딱 빠져 초능력자를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맘먹은 것은 한 번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에 시작을 하고, 또 멋대로 접습니다. 이런 자신의 태도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낙지 파스타를 사랑해 주신 고객님께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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