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도 Feb 11. 2024

식당의 탄생

21. 작은 소회


 지난 2월 8일은 저희 작은 식당의 5살 생일이었습니다. 

이번 생일은 초능력자와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서로 나누고 가족 톡을 통해 아이들의 축하를 받는 것으로 생일잔치를 대신하였습니다. 그저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 무사히 지내왔단다. 생일 축하해!”        


  

1.

2020년 2월 8일의 일기     


 저희 식당이 오늘로 1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렵고 어지러운 시기에 말이지요. 1년이라면 참 짧은 시간이지만, 자영업도 요식업도 초짜인 부부가 쓴맛, 단맛 보며 사계절을 한 바퀴 돌아 나왔으니 그 기간이 짧았다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요.   

   

 주변의 이름난 맛집과 노포들을 보면서 불현듯 저희 작은 식당은 몇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까 생각해 봅니다. 감히 어림잡을 수 없지만 좋은 밥집으로 오래도록 손님들을 맞이하는 식당으로 남기를 꿈꾸어 봅니다. 그리고 항상 응원하여 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초짜 부부 올림          



2.     

2021년 2월 8일의 일기     


 ‘오늘 뭔 날이야?’


 일상과 다를 때, 평소와 다를 때 나는 자주 이 말을 한다. 오늘 뭔 날이야? 그래, 오늘은 우리 작은 식당의 2살 생일날이다. 오늘은 요즘과 많이 다르게 점심 손님이 많았다. 힘들어도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신께서 생일 선물을 보내 주신 것일까?     


 오늘로 개업한 지 만 2년이 되었다. 첫 1년은 아무것도 모르고 허둥지둥 정신없이 흘렀고, 또 1년은 코로나와 싸우면서 또 정신없이 지나갔다. 물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다. 또한 많이 성장했다. 그러나 한 마디로 그간의 2년을 말하면 그저 살아내기 위해 살았다. 죽을힘을 다하여 버텼다.


 우리 식당은 아직 그냥 어린 아이다. 아니 갓난아기다. 아무것도 모른다. 부족함투성이다. 그러나 더욱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그냥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성장할 것이다. 진화할 것이다. 변화할 것이다. 단순한 유행을 좇기보다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고 식당의 본질을 알리는 식당이 될 것이다. 항상 공부할 것이다. 연구하고 또 연구할 것이다. 작은 식당이지만 선한 영향력을 가진 식당이 될 것이다. 주위를 배려하고 사랑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기부하고 할 수 없어도 한 발 움직이어 봉사할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식당이 될 것이다.  


        




 아쉽게도 작은 식당의 3살 생일의 기록은 없습니다. 쓸 수가 없었습니다.

2021년 12월 말, 3살 생일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건물주로부터 식당 건물의 재건축 계획을 통보받았습니다. 1년 후에 나가라는 말이었습니다. 2022년 12월 말일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22년 2월 13일의 일기    


 갈팡질팡하고 있다. 올해 말이면 가게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뒤숭숭하고 의욕이 사라졌다. 만사가 귀찮다. 술도 계속 마신다.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제대로 되는 일도 없다. 가게 매상은 줄어들어 하루하루가 힘겹다. 어찌 이리 세상 사는 일이 힘겨울까. 지금의 나. 무엇 하나 잘하는 것 없다. 앞날도 보이지 않는다. 식당 일은 아니다. 하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금 남은 10개월 동안 준비해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2022년부터는 세상을 욕하며 보냈습니다. 염세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좋은 쪽으로 세상이 변하였습니다. 은행 금리가 치솟으며 건축 자재비가 오르고 건설 경기가 위축되더니 분양 시장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작은 식당이 세내어 살던 건물의 주인도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지요.

결국 건물주는 재건축을 미루었고 작은 식당은 계속하여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하루살이로 매일 태어나고 다시 죽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연명하고 있지만요. 이곳에서 기적처럼 5살 생일맞이를 허락하여 주신 신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주위의 선배님들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식당이 본격적으로 장사가 되는 것은 대략 4, 5년 차부터라고 합니다. 업력이 조금이나마 쌓이면서 식당 경영의 노하우가 생기고 시스템이 안정되며 음식의 맛도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안정적으로 단골이 유지되고 주위에 알려지면서 고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이지요.    

 

 만약 2022년 말, 지금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면 ㅇㅇ낙지의 오늘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면을 고려하여 볼 때, 새롭게 식당을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식당의 탄생’이라는 지금 이 글도 쓰지 못했을 겁니다. ㅇㅇ낙지는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저희 부부에게 있어서 이 녀석의 5살 생일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언젠가 그날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순응하며 오늘 하루만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끝          

작가의 이전글 식당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