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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Feb 18. 2024

식당의 탄생

22. 신메뉴 이야기 3 - 사라진 메뉴들


 지난 신메뉴 이야기 1화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개업하고 만 5년이 흐른 지금까지 신메뉴는 제가 생각해도 경이로울 만큼 많이 개발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오늘도 고객의 테이블에 먹음직스럽게 오르고 있는 사랑스러운 메뉴도 있지만, 출시는 했어도 오래 못 가 단종된 메뉴가 있는가 하면, 아쉽게도 개발 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메뉴도 있습니다.          


 제대로 기억하기조차 힘든 그 아이들의 이름을 오늘 한번 작정하고 불러봅니다(개업 첫날에는 없었던 메뉴는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기억에서 사라져 미처 부르지 못한 메뉴도 있을 것이고요).          



식사 메뉴


통새우카츠정식

생선카츠정식

우삼겹 숙주볶음

연어회덮밥

네기토로동

달걀낙지죽

낙지파스타

명란파스타

장불덮밥(장어+불고기)

낙지볶음 에비가츠동 

낙지순두부

포케          


연어회덮밥



달걀낙지죽



요리 및 술안주


고구마해물파전

새우관자볶음

연어 플레이트

멘보샤

낙지 한입 만두

완도전복물만두

완도전복군만두

흑산도 뿔소라회

돌문어얼음숙회

구룡포 청어 과메기

신안 갑오징어

통영 생굴

청어절임

감자전          



청어절임&에담치즈



새우관자볶음



시즌 한정 메뉴


알이 꽉 찬 제철 주꾸미 샤부샤부

호래기회          


호래기회



디저트와 음료


체리블로썸에이드

판나코타

수제 과일칩

양배추주스

비트주스

케일주스

당근주스          


판나코타



 말씀드렸듯이 위의 메뉴들은 개업 초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메뉴들입니다. 지금 살펴보니 참 많은 메뉴가 만들어지고 사라졌네요. 시행착오라 치부하기에는 애정이 어린 메뉴들이 많아서 아쉽고 섭섭한 마음 가득합니다.

       





 그럼 오늘은 신메뉴 이야기, 그중에서도 애써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사라진 불쌍한 자식들의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합니다.               



1.

감자전      


 규모의 경계를 넘어서야 메뉴화가 가능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가게를 시작하고 새로 개발하고 싶은 메뉴가 무척 많았지요. 그렇다고 메뉴를 다양화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했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메뉴를 내놓으면 정말 맛집이 되고 정말 대박이 날 거라는 신메뉴 마법에 걸려 버린 탓이었지요.      


 그중의 하나가 바로 친구의 권유로 개발했던 감자전입니다. 감자전으로 유명한 강원도 모 식당의 그것을 카피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메밀국수로 유명한 그 식당에서 메밀국수만큼이나 잘 팔리는 메뉴였습니다. 당연히 그 식당을 대박 식당으로 만들어준 감자전이었습니다. 


 소위 겉바속촉의 맛과 썰어 넣은 감자가 오도독 씹히는 특별한 감자전이었습니다.      

특별한 맛의 비법은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와 초능력자 덕분에 금방 터득해서 비슷한 맛을 냈지만, 문제는 맛이 아니었습니다. 관건은 바로 손님이 와서 주문했을 때 바로바로 쳐낼 수 있느냐였습니다.

 우리처럼 부부 둘이 주방에서 모든 음식을 소화해야 하는 작은 식당에서 감자전은 태어나기 자체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재료의 준비 시간과 재료의 보관 및 조리 시간의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첫째, 감자는 믹서기에 갈면 식감이 살아나지 않기에 손으로 일일이 강판에 갈아야 하는데 이걸 미리 준비해 두면 갈변 현상이 일어나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둘째, 다른 메뉴도 쳐내기가 바쁜데 감자전 주문이 들어온다고 그걸 붙들고 조리할 물리적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식당은 어떻게 그 많은 감자전 주문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요?      

일단 식당의 규모가 크기에 감자전만을 전담하여 조리하는 직원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불티나게 팔리기에 갈변이 일어날 틈이 없었겠지요. 즉, 감자전은 저희처럼 작은 식당에서는 처음부터 태어나기 어려운 메뉴였습니다. 아쉽지만 출시로 이어지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메뉴였습니다.   


감자전


       

2.

네기토로동(참치뱃살덮밥)          


 '네기토로동'은 일본식 덮밥인 돈부리의 일종으로 따뜻한 밥 위에 잘게 다진 참치 뱃살과 파를 올려 비벼 먹거나 김에 싸 먹는 요리입니다. 참치 뱃살이 메인 재료라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맛이 일품으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음식이지요. 어렸을 때 간장에 마가린에 생계란 넣고 비벼 먹기 좋아했던 저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음식이기도 하고요.    

  

 이 메뉴는 출시까지 했지만, 재료 보관상의 문제로 결국은 판매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영하 50도에 이르는  전용 냉동고가 있어야 하는 재료임에도 이를 가볍게 여기고 일반 냉장고의 냉동실에 보관하다 결국 제품 보관이 쉽지 않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욕심만 부리다 또 멍청한 짓을 하고 말았지요. 제 딴에는 특별한 음식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일본 본토에서는 그저 그런 음식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네기토로동

    


3.

낙지볶음 에비카츠동           


 새우카츠와 낙지볶음을 접목한 새로운 메뉴를 생각하다가 이런 걸 만들어 보았습니다.       

밥 위에 낙지볶음 반, 에비카츠 반, 이렇게 구성하여 시식하였는데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처음에는 달달한 에비가츠동을 먹다가 조금씩 단맛에 질릴 때쯤 매콤한 낙지볶음으로 갈아타는 느낌의 맛.      

그런데 이걸 조금 틀어서 맨 아래에 낙지볶음, 그 위에 밥, 그리고 맨 위에 에비카츠를 올리면 어떨까 생각하여 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에비가츠동을 먹다가 중간쯤에 바닥에 숨어 있는 낙지볶음을 들추어 섞어 먹는 재미. 

 이 녀석은 이렇게 혼자만 실실 웃으며 시식만 몇 번 하다가 결국 접고 말았습니다.      

낙지볶음과 새우카츠를 주문하여 함께 먹으면 될 일을 굳이 반반 메뉴를 만든다 한들 혼밥족 손님들만이 가끔 찾을 메뉴라는 평가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감자전 이야기를 다시 해봅니다.

저희 식당의 형편으로는 감자전은 언터처블의 메뉴가 확실했습니다. 사장의 욕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해보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면 못 할 것도 없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즉, 작은 식당에서도 감자전을 만들어 판매할 방법이 있었던 거지요.

 해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처음에 보통 감자전처럼 부치다가 마지막에는 튀겨서 마무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식힌 후에 냉동 보관을 하면 언제든지 손님상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미쉐린 별 세 개 식당의 폐업 소식을 전해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대단한 식당도 그들 나름의 이유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현실에 안타깝기도 했고요. 저녁 한 끼 식사가 서민 한 달 식대에 이를 만큼 비싼 식당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고급 식당이 반드시 좋은 식당인 것은 아니겠지요? 좋은 식당, 착한 식당은 우리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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