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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Feb 25. 2024

식당의 탄생

23. 딜레마 하나, 밥집이냐 술집이냐


 식당을 시작하면서 제가 품게 된 오랜 고민 하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는 아니고,      


'술을 파느냐 마느냐.'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게 이 물음은 햄릿의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고민거리였습니다(지금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니건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인 것을, 그것이 왜 그다지도 어려웠을까요?       


   



      

 어느 날 지인의 식당을 방문했습니다.

요식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그분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저녁에 밥을 왜 팔아? 음식 장사는 술장사라고. 술을 팔아야 돈을 벌지."     

 

 요식업계의 햄릿으로 분하여 밥집이냐 술집이냐로 번민하던 저로서는 의문의 1패를 당한, 받아들이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습니다.    

      

 ㅇㅇ낙지를 시작하며 점심에는 밥을 팔고 저녁에는 술을 팔면 되겠다고 생각하며(물론 저녁에도 밥은 팔지요) 이를 실천에 옮겼습니다. 낮술이 빠지면 애주가로서 안 될 일이기에 브레이크 타임 따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사실 빚내어 장사하는 형편에 쉴 것 다 쉬며 일한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어요 ㅠㅠ).      

 다행히도 개업하고 많은 지인이 저녁에 와서 술을 팔아주었습니다. 또한 해산물 요리를 찾는 술손님이 끊임없이 저녁 자리를 메워 주었지요. 그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며 일을 하던 제게 어느 날부턴가 남모를 고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진상 취객'이라는 빌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못 본 척 참고 외면했을 따름이지요. 권투 선수가 누적된 잔 펀치에 쓰러지듯 거듭된 빌런의 몹쓸 짓으로 제 몸 곳곳에 보이지 않는 내상이 쌓였던 것이지요. 화병까지 생겼습니다. 싸우기도 하였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저와 초능력자는 어느 정도 가게의 틀이 잡힌 시점에 이르러 아예 식당의 정체성을 ‘아늑하고 정갈한 밥집’으로 잡으려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밥집으로 콘셉트를 잡으면 술손님에게 시달리는 일은 줄어드는 대신 술을 팔아야만 전체적인 매출이 상승하는데 술손님을 멀리하니 아무리 밥을 많이 팔아도 몸만 힘들지 매출은 만족스럽게 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사투를 끝냈습니다.     


저는 술집을 거부하였습니다(술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요리를 몽땅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입구에 안내문을 써 붙였습니다.      


"저희 식당은 술집이 아닙니다. 가벼운 반주로 모두가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세요."     

 

 술집에서 밥집으로 돌아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부끄럽게도 오랜 시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괴로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저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일인 것을. 돈은 덜 벌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그것으로 좋은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바보였습니다.      

이제는 그저 단순하게 살기로 하였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마음 편한지 저 자신 이미 알고 있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 와중에 마음 흔드는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건물주가 식당 건물을 팔겠답니다.     

그의 뜻대로 진행된다면 곧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지난 21화에서 말씀드렸듯이 어차피 2년 전에 이미 생을 마감할 뻔했던 땡땡낙지이기에 이미 최악의 상황은 피했습니다. 그날 이후 좋지 않은 상황은 이미 각오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올해 들어 다짐한 것 중의 하나가 '힘들다, 어렵다.'라며 부정적이고 나약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젠장) '식당의 탄생', 참 어렵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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