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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Mar 17. 2024

식당의 탄생

26. 2019, 겨울 축제


 2019년 그해 겨울,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일이 있었어요.  

         

 1. 크리스마스 고객 사은 이벤트

(언제나 나를 어린아이처럼  설레게 만드는 단어, 크리스마스, 참 좋아)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마스터낙지에도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어느새 12월이 되었고 성탄절이 머지않았습니다. 무언가 의미 있고, 식당에도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고객이 보내주신 한 해의 성원과 사랑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능력자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고객이 기뻐할지 궁리를 거듭하였지요.     

   

   

12월 한 달 ‘기간 한정 무료 서비스’를 진행해 볼까?

    

백설기나 시루떡을 맞추어 성탄절 하루 방문하는 고객에게 돌릴까?     

 

아니면 기념품을 만들어 선착순으로 나누어 드릴까?           



 결국 고민 끝에 마련한 소박한 이벤트.

식당 입구에 응모함을 비치하여 손님이 명함(또는 성함과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을 넣어주시면 추첨하여 소정의 선물을 드리기로 하였지요. 결정한 후에는 일사천리였습니다. 선물 목록을 정하고 구입하고 포장하고 화이트보드에 안내문을 써서 테이블 위에 세팅하기까지.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런 일이 다 그렇듯, 이벤트란 준비하는 나날들이 더 기쁘고 즐겁고 막 그런 거 있죠. 참 좋았습니다. 초능력자와 선물을 고르는 순간들, 간택받은 그 선물을 포장하는 짧은 시간, 그리고 선물을 받은 고객이 기뻐하는 상상조차 말이죠.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벤트는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응모하여 주셨고, 초능력자와 딸과 아들까지 참여한 가족 추첨단이 집 거실에 모여 떨리는 마음으로 추첨하여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선물은 나누어 주는 사람이 더 기쁘더군요.

    

 옥에 티라면 어떤 손님은 가게에 처음 오셔서 응모하고, 당첨됐다는 문자를 받고는 식사도 하지 않고 선물만 받고 가버리시더군요. 그건 솔직히 속이 쓰렸습니다. 부끄럽네요, 조건 없는 나눔에 흔들리는 마스터의 마음이라니.     


          

 2. 우리들의 송년회     


 2019년 12월 15일 일요일 저녁, 저희 부부와 직원들은 마스터낙지 테이블에 모여 앉았습니다. 사전에 직원들 모두 먹고 싶었던 메뉴를 각각 신청하였고, 초능력자와 제가 정성껏 준비하였습니다.      


 먼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직원의 대다수가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입니다. 그들은 수업이 없는 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기에 점심과 저녁 시간 짧은 틈새 알바를 합니다. 따라서 한 명이 일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고, 일하는 학생 수는 비교적 많습니다. 물론 지금도 똑같은 시스템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루에 한 시간이건 두 시간이건 아무리 짧은 시간 알바를 하더라도 모든 직원에게는 점심과 저녁 식사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메뉴(낙지볶음, 우삼겹볶음, 새우카츠, 생선카츠 등) 중에서 골라 먹거나 또는 초능력자가 그때그때 만드는 스페셜한 요리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초능력자는 수많은 메뉴로 직원들의 노고에 보답했습니다. 저의 최애 메뉴인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을 비롯하여 파스타, 비빔밥, 포케, 청국장, 삼겹살구이, 고등어구이, 김밥, 초밥 등등 한식과 일식, 양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솜씨를 발휘하여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한때는 저도 이것저것 실험 정신을 발휘하여 초능력자를 거들기도 하였고요.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대부분의 식사 메뉴는 섭렵하였지만, 술안주에 해당하는 요리는 평소 먹을 기회가 없었지요. 그들이 희망한 파티 메뉴는 해물파전, 연포탕, 탕탕이, 산낙지회 등 손님들에게 서빙은 많이 했지만, 평소 먹어볼 수 없었던 메뉴들이었습니다. 마침내 송년 파티 테이블에는 직원 개개인이 신청한 다양한 메뉴들이 조금씩 일품요리로 올랐습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말은 정말 이럴 때 쓰는 말 같아요. 식당에 대해서는 아는 것 하나 없는 초보 부부 두 사람이 좌충우돌하며 일 년을 보냈습니다.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며 영업을 중단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슬픔과 고통만이 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정성껏 만든 음식을 맛있게 드셔 주시고 ‘오래도록 남아달라, 힘내라.’는 고객의 따뜻한 격려의 말씀이 하나둘 모여 마스터낙지라는 어린나무를 조금씩 자라나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밝고 힘찬 에너지를 온몸으로 발산하며 손님들을 응대하고 저희 부부의 힘이 되어준 젊은 청춘들 덕분에 창업 원년 한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진을 보세요. 그때는 이렇게 말이죠, 모두가 함께 자리할 수 있었답니다. 거리를 두지 않아도, 어깨가 닿아도 될 만큼 가까이 다가앉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라는 그들의 밝은 인사와 함께 식당의 하루는 시작되었고, '고맙습니다!'라는 그들의 감사 인사로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저희 부부는 지쳐도 지치지 않았고 힘들어도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아, 고마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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