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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Mar 10. 2024

식당의 탄생

25. 가을이 오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장사꾼들'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장사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쉽지만 그 길을 온전히 걸어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기란 험난한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든 일이다."      


 흠…… 글쎄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회사 때려치우고 장사나 해볼까? 하는 치기 어린 말도 옛날이야기로 들릴 만큼 요즘 장사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제는 누구나 장사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의 말은 시류에 걸맞게 아래와 같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장사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은 인생을 거는 모험이다. 더구나 그 길을 온전히 걸어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기란 험난한 산을 오르는 것보다 수백 배 힘든 일이다."    


       




 20191005

 가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브레이크 타임에 초능력자와 잠시 산책을 나갔는데 강바람이 너무 거세고 차가워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돌아왔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느낌이네요.

     

 마스터 낙지를 시작하고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모두 비슷하지만, 식당을 한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들을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지구력 있게 일을 해 나가느냐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 구태의연하게 지내서는 안 되겠지요.      

 요즘 들어 새롭게 알게 되는 일들이 하나둘 생길 때마다, 정말 나는 아는 것이 너무 없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륜이고 내공이란 말이 있나 싶습니다.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는 하늘이 주신 일인 것은 알 것 같습니다. 거창하지요? 지난여름에는 너무 지쳐 지냈는데 이제 다시 힘을 내어 제 길을 신나게 가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힘을 내어 주는 초능력자와 찾아주시는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개그맨인 고명환 씨의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내용이 가슴에 와닿기에 다시 한번 정독한 후, 좋은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초능력자에게도 권하였지요. 아쉽게도 책 제목처럼 돈 버는 법까지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나름의 소득은 있습니다. 그가 권유하는 대로 '도서관에서 아침 책 읽기'를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평소 아침 일찍 가게에 나와 영업 준비를 마치면 대략 8시에서 9시 사이가 되는데 전에는 2번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물론 노트북으로 인터넷 서핑도 하고 뉴스도 본다든지 딴짓도 살살하면서 말이지요. 그걸 장소만 옮긴 것뿐이지만, 조용히 자리에 앉아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곳이라는 도서관이 갖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책 읽기의 효율이 올랐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도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고 도리어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아침의 한 시간 독서, 지친 영혼을 달래는 제법 행복한 시간입니다. 여러분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고명환 씨 고마워요~.       


   




 20240310 오늘

며칠 전 저녁, 젊은 부부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게를 찾았습니다. 두 사람은 맥주를 곁들여 식사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더군요.  

    

 다른 손님은 없고, 손님이 더 올 것 같지도 않기에 저는 주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무라키미 하루키의 '하루키 일상의 여백'(부제: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을 읽었지요.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던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저는 깜짝 놀라 주위를 살폈지요.      

'아니, 웬 고라니 소리? 아차산에 언제부터 고라니가 살았지?'      

 그런데 고라니가 아니었습니다. 아이고 미안해라. 그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젊은 부부의 아이였습니다. 한두 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가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엄마 아빠를 시샘하듯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가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저는 아이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비명에 가까운 아이의 고함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결국 저는 마음속으로 '저 고라니 소리 정말 듣기 싫네'하며 투덜거렸지요. 그러나 초능력자는 달랐습니다. 평소에도 아기들을 예뻐하는 그녀는 아기가 고라니처럼 울부짖어도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일부러 눈을 맞추고는 까꿍 까꿍 얼러대며 마력의 미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고라니도 초능력자의 해맑은 미소가 눈부셨는지 고함을 멈추었지요. 저는 저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시침을 떼고 두 사람이 나누는 교감 행위를 지켜보았지요. 저는 짜증을 참았지만, 초능력자는 아기를 천사로 만들어 주더니, 저마저 인내심 많은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젊은 부부는 초능력자 덕분에 미안함을 덜어내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맛있게 식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 죄송하다는 예의 바른 인사도 잊지 않는 멋진 부부였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이를 안고 나간 젊은 아빠가 곧 다시 돌아온 겁니다. 혹시 내가 고라니라고 하는 마음속의 소리를 들었나 하고 저는 내심 긴장하며 주방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지요.      


 그러나 다시 온 남자는 의외의 말을 꺼내었습니다.

"맥주를 추가로 한 병 더 시켰는데, 한 병밖에 계산하지 않으셨네요."      

아, 감동 속의 부끄러움이라니.

5년 동안 술값 계산을 잘못한 것이 이번 한 번뿐이었을까 하는 불순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라니 아빠 죄송해요. 아니, 아니, 아가야 미안해. 앞으로는 절대로 천사들을 보고 고라니라고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고마워요. 저도 잘못 찍힌 계산서를 보게 되면 꼭 다시 돌아가 정당한 값을 치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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