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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도 May 12. 2024

식당의 탄생

34. 선한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 2

   책을 나누다 


  처음부터 좋은 일을 하겠다고 시작하지 않았음을 먼저 고백합니다. 더구나 이제는 밑천이 바닥 나서 멈춰버린,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구요. 


  그때는(2021년 즈음) 말이죠, 미니멀 라이프와 무소유의 삶에 꽂혀 사용하지 않는 집안 물건을 하나하나 버리는 것에 재미를 붙일 때였습니다. 안 입는 옷은 골목 어귀 헌 옷 수거함에 넣거나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나눠주고, 서랍 구석구석 다람쥐 도토리 숨겨 놓듯 모아둔 잡동사니들은 물욕과의 갈등 끝에 버리고 또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아쉽기도 하고 후회하는 마음도 컸지만 조금 지나 기억 속에서 사라지자 곧 평온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답니다. 놓아버리면 홀가분한데 그걸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집착이 영혼을 구속합니다.


  그러다 눈에 띈 것, 그게 바로 책이었어요. 솔직히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전에는 책 욕심이 많아 책을 많이 사고 책장에 가득 채우길 좋아했지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읽지 않은 책이 꽤 많았으니까요. 아버지께 물려받은 책도 제법 있었고요. 그런데 중국과 호주 생활을 거치면서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며 짐을 줄여야 했고 결국 아끼던 책도 주변에 나누어 주면서 책에 대한 집착을 강제로 떨궈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미니멈 라이프에 꽂혀 책도 없애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집 앞에 버리려는 순간, 이렇게 버려 폐지로 만드느니 식당의 고객들께 나누어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또한 책을 가져간 사람 자신도 다 읽은 책이 있으면 나누자고 하였고요. 


  책 나누기를 시작하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 책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들 중에서는 책을 가지고 간 분이 많지만 정작 나누어 준 분은 없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책을 가져가기만 할 뿐 아무도 책을 나누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평화로웠던 마음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을 나눌 뿐 그 이상은 제가 관여할 영역이 아니라고 애초에 선을 그었지만 아름다운 결심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누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마저 아파지기는 싫었던 겁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말이죠. 아무튼 이 세상에는 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엄청 많다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함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꼭 나타날 것으로 굳게 믿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어요.  입구 앞에 못 보던 책 몇 권이 놓여 있는 겁니다. 아, 드디어 일반 손님이 책을 나눈 거예요. 아침부터 너무너무 기분이 좋고 신이 나는 거 있죠. 

  그날 이후로 소중한 책을 나누라 하며 수십 권의 무거운 책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단골손님이 계셨고 글쓰기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은 멀리서 책을 가지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냥 폐지로 버리면 끝날 일이었지만, 발상을 전환하니 제 마음부터가 밝아지고 이 세상도 훈훈해짐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사회를 위해 거창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하고 고민하면, 작지만 빛나는 일들이 아주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니 하지 못할 뿐이었던 것이죠.






  최근에는 책 나누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멈춘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결국은 핑계였습니다.

그날 이후 시간이 흘러 이제 제법 책이 모였으니 다시 책을 나눌 때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오직 나눔만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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