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판도 Jun 23. 2024

식당의 탄생

40.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마스터낙지가 오픈하고 어느새 5년 4개월이 지나고 있네요(하루하루는 힘들게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눈 한번 깜빡거린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엊그제 건물주의 대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부턴가 그로부터 전화가 오면 깜짝깜짝 놀라기부터 합니다.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니 1년 후에는 가게를 비워야 한다, 아파트를 못 짓게 되어 건물을 내놓았으니 그리 알아라, 하는 식으로 그가 전하는 말 중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 긴장부터 하게 되고 맙니다.


  이번 전화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으니 법원에서 담당자가 와도 놀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에혀, 이제 뭘 더 놀라겠습니까. 놀라기는커녕 겁나지도 않습니다.

  기껏해야 쫓겨나는 일밖에 더 있겠습니까? 쫓겨나는 일이라면 개업 2년 차부터 각오했던 일이고, 쫓겨나면 또 어떻게든 살아내지 않겠습니까.

  이 식당에서 나가야 한다고 해서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너무너무 정이 많이 들었기에 아쉽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제가 어찌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저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내야 할 뿐입니다.






  엊그제 건물주 대리인의 전화를 받고 저희 부부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일 뿐이다."


  "지금까지 6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게를 하면서 많이 느끼고 배우지 않았느냐. 이 세상에서 네 생각으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너희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배움의 연속입니다.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을 보며 닮으려 애썼습니다. 그들의 흉을 바라보며 나의 흉을 깨달았습니다.


  신은 네가 모르는 세상을 보라 하십니다.

아직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식당이 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대로 될 리 없습니다. 내일이라도 나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렵지 않습니다. 그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가벼운 찬에 한 끼 밥 먹고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영업 환경이 갈수록 나빠져서 늘어나는 카드 빚에 진저리가 쳐지지만 그래도 어찌하겠습니까.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음에 먼저 감사하고 불평을 하더라도 해야겠지요.


  인생 뭐 있겠습니까.

위를 우러러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도 모르게 겸손해집니다.






  아시나요?

식당을 경영하는 자는 행복을 나눠주는 사람인 것을요.

당연히 저희 부부 또한 행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입니다.


  바로 어제의 일입니다.

토요일 12시도 되기 전의 시각.

제법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손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테이블 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세 팀의 손님들. 흐르는 조용한 음악 속에 서로가 다정하게 먹어 봐요. 맛있어요. 이것도 먹어봐요. 서로서로 음식을 권하고 나누어 드시는 손님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초능력자가 제게 말합니다.

"정말 행복한 모습이야."

제가 답했습니다.

"그치, 우리는 행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잖아."




작가의 이전글 식당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