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자 손 내미는 그, 윷놀이

2025.3.27~2025.4.6,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by 임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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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밝은 분위기와 상반되게, 공연은 상여소리로 문을 연다. 어스름하게 켜진 조명 속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줄 지어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이나, 이미 죽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장시간 이어지던 상여소리가 끝나고, 그제야 켜진 불 아래에서 인물들은 제각각 흩어져 앉거나 서있다. 그마저도 그림인 나무 한 그루와 작은 조명 두 개만이 있는 휑한 무대에 띄엄띄엄 자리한 인물들은 못 박힌 듯 굳어 있다. 상대를 향해 움직이거나 돌아 앉지도 않은 채, 자신의 자리에서 느릿하게 말을 나누는 모습은 마치 무덤 위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누는 유령들 같다.

신명나는 농악대를 보고 있던 윤조병의 원작과는 달리, 이들은 상여 행렬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상여소리를 들으니 살 맛 난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은 산 사람인지 죽은 사람인지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윷놀이를 시작하면, 이들은 그 누구보다 생의 활력으로 가득하다. 먼저 둔 말을 계속 움직일 것인지 새로운 말을 둘 것인지, 옆으로 선 윷가락이 뒤집혀졌는지 아닌지를 열정적으로 다투는 이들의 목표는 단지 윷놀이 판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모두 동일한 종착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윷놀이의 규칙은 삶과 닮아 있다. 결국 모든 인간의 종착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바퀴 돌면 끝나는 윷놀이를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멈춘 죽음에 흐르는 삶
윷판이 벌어지면, 다섯 명의 인물들은 상여소리와 유령 행색을 잊은 듯 윷놀이에 몰두한다. 그 자신이 윷가락이 되기도 하고, 윷을 던지는 사람이 되기도 하며 활기차게 움직인다. 던져지는 윷가락에 따라 마치 희극과 비극의 가면을 갈아 끼우는 것처럼 인물들의 기분과 극의 분위기는 오르내린다. 이와 같은 모습은 앞선 장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흥겨운 윷판을 보고 있으면 이들이 상여 행렬의 참가자였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끼어든다. 더불어 놀이 중간에도 주변을 맴도는 상여 행렬에 대한 언급과 함께, 자식을 잃은 석구과 연희의 이야기까지 추가된다. 이처럼 자신이 죽음의 당사자라는 사실과 별개로, 인물들의 곁에는 언제나 죽음이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놀이에 임하는 모습은 죽음의 존재를 잊게 한다. 죽음과 삶 두 영역 중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신경쓰지 않고, 놀이에 몰두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이 아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윷놀이는 현대의 놀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현대의 놀이는 홀로 즐기는 것이 대중적이다. 게임 역시 팀을 이룬다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혼자 하는 경우가 많고, 영상을 볼 때에도 유튜브나 OTT 등, 대부분의 매체가 홀로 보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야외에서 함께 활동적인 놀이를 하고, 온 가족이 함께 TV를 보던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기술의 발달과 매체의 다양화로 인해 과거보다 볼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이 다양해졌지만, 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현대의 희노애락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윷놀이는 혼자서 할 수 없다. 따라서 윷놀이의 참여자들은 함께 희노애락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같은 순간에 서로 다른 주장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함께 희열과 절망을 느낀다. 이것은 비단 같은 편만이 공유하는 감정이 아니다. 승리는 같은 편과 공유하지만, 윷놀이에서의 패배는 종종 모두의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함께 모든 순간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과정에 개인적인 승리는 없다.

등장인물들은 윷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승패를 건 시시비비를 따진다. 격렬한 싸움으로 번질 무렵, 기대가 느린 말투로 이들의 긴장을 늦추고 석구와 봉달이 너그럽게 양보하며 일단락 된다. 당장의 승패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겁게 임하는 모습은 무대 위에서 매번 윷가락이 던져질 때마다 강조된다. 삶의 축소판인 윷놀이에서 화해를 하고 놀이를 지속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레 삶에서 지녀야 할 태도 또한 생각해볼 수 있다.


무대 위에 홀로 선 ‘연희’
원작에서는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여인A’로 잠시 등장했던 인물이 이철희가 각색한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이하 <윷놀이>)에는 이름과 서사를 가지고 전면에 등장한다. 석구의 아내 연희는 유일하게 첫 장면의 상여 행렬에 참가하지 않은 인물이다. 또한 유일하게 죽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며 절망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희는 등장인물 중 홀로 명확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다.

‘연희’라는 이름은 무대 예술을 뜻하는 단어와 동일하다. ‘배우가 각본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보여 주는 무대 예술’을 뜻하는 단어인 ‘연희’는 석구의 아내에게 이름 붙여졌을 때 모순적인 효과를 낳는다.

‘연희’는 무대 예술이라는 특성상 개인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다. 혼자서는 공연을 올릴 수 없을 뿐더러,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공연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함께’라는 가치가 필수적인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무대의 다른 인물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연희에게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은 모순적이다. 나아가 공연은 오로지 한 순간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예술이다. 매번 무대가 새롭게 시작되면 이전의 공연 회차는 잊혀지고, 마치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모든 사건이 무대 위에 반복된다. <윷놀이>의 연희 역시 첫째의 죽음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삶은 계속해서 첫째의 죽음과 둘째가 떠나던 순간을 반복하며 환영과 현실이 교차한다. 윷이 던져지는 다른 사람들의 멍석과 달리 연희의 멍석 위에는 첫째와 둘째가 번갈아 올라올 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연희에게 ‘연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모순적이면서도 절묘하다. 연희는 죽음을 오롯이 재난으로 느끼는 인물이다. 자신의 현재보다 떠난 사람에 대한 염려와 후회에 잠식되어, 죽음에 대한 비탄이 연희가 현재에 ‘함께’ 할 수 없도록 막는다. 이 때문에 연희는 눈앞에 있는 가족(석구)을 보지 못하고, 서울로 떠난 둘째에게 전화조차 하지 못한다. 정신 좀 차리라는 석구의 대사와 눈물은 연희에게 현재로 돌아와 함께 할 것을 간절하게 촉구한다. 결국 연희의 이름은 연희가 겪고 있는 현재의 절망을 상징하면서도 동시에 연희가 나아가야 할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윷판을 지나 안녕을 남기고
무덤으로 향하는 상여 행렬로 시작된 공연은 삼도천을 건너는 모습으로 마무리 된다. 유쾌하게 윷놀이를 이어가던 등장인물들은 별안간 들리는 물소리와 함께 첫 장면으로 돌아간다. 다시 어두워진 조명과 함께 배 위에 서있는 인물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하나 둘 퇴장한다. 미련이 남는 듯 배에서 내려보려고 하고, 빛을 향해 손을 뻗어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나는 모습에는 웃음이 걸려 있다.

삼도천의 배에서 내리며 끝나는 공연은 관객에게 관점의 전환을 제시한다. 공연의 시작과 끝에 떠나는 사람들을 위치시키면서 극의 초점을 남겨진 사람이 아닌 떠나는 사람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떠나는 과정 중간에 자리한 윷놀이는 죽음이 온전히 비통하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임을 보여준다. 윷놀이의 끝이 죽음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의 희노애락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봄과 동시에 남겨진 사람으로써 일종의 위안을 얻는다.

현대의 한국 사회는 몇 년을 주기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반복되며, 끊임없는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있다. 집단적인 죽음이 반복되며, 그 때마다 남겨진 사람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남겨진 사람의 입장으로, 떠나는 사람을 애도하고 재난 상황을 만든 책임자를 찾으며 분노했다. 떠나는 이들이 어떤 기분일지, 어떤 방식으로 떠나고 싶을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윷놀이>는 떠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있다. 떠나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이 윷놀이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돌아보고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을 보여준다. 떠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희노애락의 과정은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과거의 것이다. 품을 들여 실패하고, 그 과정을 온전히 소화하면서 서로를 보듬는다. 서로의 잘잘못이나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함께 과정을 겪으며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것이다. ‘한 바퀴 돌면 끝나버리는 윷놀이’에서 윷판을 떠나는 사람들은 위에 남은 사람들에게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같은 윷판 위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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