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9~2025.5.19,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17명의 이름과 나이, 간단한 소개이다. 1960년대생부터 2013년생, 노동자부터 활동가, 아들까지 다소 줏대없이 보이는 듯한 이 목록은 마치 어떤 기념관의 견고한 벽면처럼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어리둥절하게 읽어 내렸던 이름들은 공연의 시작과 함께 무대에 살아나고, 특정한 집단으로 명명될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우리’를 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산재일기>는 실제 사례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고 재배열하며 새롭게 맥락을 만들어 내는 ‘버바텀 연극’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에 따라 공연은 산업재해의 피해자와 주변 인물들의 말을 무대에 그대로 재현한다. 이와 같은 형식의 장단점은 무대 위에서 명확하게 보여진다.
재현의 방식은 산업재해가 ‘우리’의 이야기임을 명시한다. 17명의 산업재해 피해자들은 단 두 명의 배우로 무대에 재현된다. 배우들은 때에 따라 60대 일용직 남성이었다가 40대 여성이 되기도, 20대 학생이 되기도 한다. 한 명의 배우가 다양한 사람을 연기하며 느껴지는 시각적인 통일성은 결국 이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완전히 개별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들은 나와 다른 타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는 내가 되기도 하는 나와 같은 노동자인 것이다. 행위자, 하청, 청년과 같은 큰 개념으로 나뉜 공연의 챕터는 산업재해의 피해자는 물론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까지도 지칭한다. 공연장 안의 모두가 속할 수 있는 거대한 개념들은 끊임없이 무대 위의 인물들이 관객과도 이어져 있음을 상기시킨다.
공연이 채택한 재현의 방식은 오로지 텍스트에 국한된다. 인물의 외양이나 행동이 아닌, 그가 한 말에 초점을 맞추고 말의 내용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투리나 말투와 같은 언어적인 요소가 일부 재현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물을 구분하는 지표가 될 뿐이다. 텍스트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신체의 감각을 공연은 ‘노동’으로 만들어 낸다. 의자를 옮기고 구르고 앉았다 일어나는 과정에서 가빠오는 배우의 숨은 노동의 강도를 신체적으로 재현하고 감각하기에 충분하다. 발화하는 내용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행동은 관객을 오롯이 텍스트에 집중하게 한다. 노동자가 겪은 일의 인과와 감내한 노동의 강도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삭제된 무대에 관객은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이 아닌, 거리를 두고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한편 텍스트 중심의 구성은 관객의 몰입을 어렵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기도 했다. 공연의 초반부는 방대한 양의 대사와 더불어 스크린으로 다른 내용이 동시에 제시되어 다소 혼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보 과잉 상태는 산업재해가 걷잡을 수 없을만큼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집중력을 저해하기도 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공연의 전반부가 흘러갔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공연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물론 공연이 취하는 태도가 산업재해와 그것을 만들어낸 자본 구조에 마땅히 지녀야 하는 자세임을 통감하고 있지만, 방대한 텍스트와 더불어 단언되는 주장들은 관객을 압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불합리한 노동 환경과 산업재해를 통해 관객이 부조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유도하기보다는 관객의 혼을 쏙 빼놓으려는 강연처럼 느껴졌다. 버바텀 연극의 특징을 반영하여 관객이 참여하는 장면이 잠시 있었지만, 일회성으로 그쳤다.
공연의 후반부로 갈수록 두드러지는 의자의 활용은 어느 정도 텍스트 과잉 상태를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의자를 쓰러진 노동자나 사회 구조로 활용하여 보다 시각적으로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자 사이로 몸을 집어넣고 통과하며 춤을 추듯 구르는 배우의 모습은 사회 구조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노동자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의자로 만들어진 사회 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보며 산업재해가 자신의 일임을 체감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들의 모습과 동일하다. 결국 의자 위에서 계속해서 쓰러지는 다인이 엄마의 신체에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인물이 동화되는 것은, 공연을 보며 점차 산업재해를 ‘나’의 일로 체화하고 있는 관객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공연을 보고 나온 사이에 또 하나의 노동자가 죽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또 다른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운명을 달리했다. 연극 속 제시되는 수치나 인터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 오늘 우리 앞에서 또 다시 죽은 노동자가 있기에 <산재일기>는 더 이상 연극이 아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연극의 앞과 뒤를 채운 스크린의 이름들은 거대한 추모의 벽이 된다. 대충 훑어보는 것도 밭을만큼 빠르게 넘어가는 이름 하나하나는 연극이 아닌 현실에서 오늘 또 다시 죽은 노동자의 이름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
현실에 충실하다는 점이 역으로 현실에서 입증된 이 공연은, 재현을 넘어서 현실에 그어지는 하나의 기록이 된다. 실시간으로 현실로 확장되고 있는 이 공연에서 관객은 무대에 올랐던 이름 하나하나에 책임감을 느끼며 목격자에서 증언자로 변화하게 된다. 무대의 사건이 여전히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산재일기>는 막을 내리지만 새로운 증언자가 나선 사회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