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에필로그 : 나는 왜 끝까지 설명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고.
왜 분명한 일이 있었는데,
왜 모두가 불편해하면서도
누군가를 정확히 가리켜 말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그 질문이
언제나 조금 어긋나 있다고 느낀다.
설명은 상대가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 설명은
사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또 하나의 재료가 된다.
자신이 얼마나 억울했는지,
얼마나 오해받았는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를 증명하는 재료.
나는 이미 보았다.
사과 뒤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을.
침묵 뒤에도 다시 “저요!”라고 손을 드는 얼굴을.
그 얼굴 앞에서
설명은 해결이 아니라 연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누군가를 내쫓지도 않았다.
정의의 이름으로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한 발씩 물러났다.
차를 태우지 않았고,
개별 연락을 끊었고,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그 선택은 비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도망이 아니라
생활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전쟁터에서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나는 이제 안다.
모든 관계에는
끝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건 패배가 아니다.
설득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고,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언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을
끝까지 무너뜨리지 않아도 된다.
그 얼굴은
자기 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많은 말을 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나르시시스트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얼굴이 없는 쪽으로
조용히 걸어 나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