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욕의 덫을 들여다보다.
그날,
단톡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다음 주에 커피 모임 어떠세요?”
문장은 평범했다.
이모티콘도 없었다.
말투도 무난했다.
그런데 모두가
그 문장을 다르게 읽고 있었다.
누군가는 반가웠고,
누군가는 부담스러웠고,
누군가는 이미
‘좋아요를 누를지 말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신호다
도현은 메시지를 읽고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좋아요는 공감이 아니라 신호라는 것을.
누가 먼저 누르는지,
누가 끝까지 누르지 않는지,
누가 누군가의 말에만 누르는지.
그 작은 아이콘 하나에
사람의 위치가 드러난다는 것을.
프롤로그에서 시작된 질문이
여기까지 왔다.
“왜 우리는 말보다 반응에 더 민감해질까?”
왜 모두 읽었는데, 아무도 누르지 않을까
메시지 아래에는
‘읽음 27’이 떠 있었다.
그런데 좋아요는
하나도 없었다.
도현은 그 숫자를 한참 바라봤다.
읽음 27.
반응 0.
그건 무관심이 아니었다.
과잉의식이었다.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누르면 어느 편이 되지?
내가 누르면 누가 불편해하지?
지금 누르는 게 이득일까?
좋아요는
손가락 하나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체성의 선택이다.
“좋아요가 제일 무섭더라”
그날 밤,
기석에게서 개인 톡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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