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씨는 나의 엄마다.
그녀는 원래 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새롭게 이름이 생겼다. 태경.
좋은 이름은 자주 불러줄수록 좋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녀를 앞으로 태경씨라고 자주자주 불러줄 예정이다.
얼마 전 <음악 소설집>에 수록된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를 읽었다.
그 작품을 읽고 며칠 전 태경씨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죽게 되면 딸인 내 주변에 머물며 나를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저녁을 먹으며 자연스레 오갔던 말인데, 찰나의 순간이 감동이었고 뭉클했다.
구천을 떠돈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없는 공간에서 내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겠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자장가] 속 딸이 잠 못 드는 엄마의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태경씨도 나를 지켜주면서 자장가를 불러줄 것만 같아서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났다.
태경씨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자란 나도 많이 닮았다.
사랑이 많고 사랑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어릴 땐 사랑이 많다는 게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엄청난 자산인지 몰랐다. 이렇게 살아오기도 했고 누구나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자녀들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크면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이야기 나누며 새삼 느끼고 알게 된 점이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몇 가지 풀어보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아날로그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지닌 아이였다. 그래서 각자의 방 문 앞에다가 편지함을 만들었고, 같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포스트잇에다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 떠올려 보면 별 내용은 없었다. 그리곤 아침에 편지함 속에 넣어두고 가면 저녁이나 밤이 되면 항상 내 방문 앞 편지함에 답장이 꼭 돌아왔다. 몸이 피곤한 날엔 성가실 수 있었을 텐데 항상 답장을 해준 태경씨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태경씨는 당시 저녁에 잠깐 아르바이트 형식의 일을 하러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냉동 만두를 굽거나 스팸 한 조각을 구워 식탁에 두고 가는 날엔 그 음식들 옆에 항상 빠지지 않고 함께 남겨진 게 있었다면 작은 포스트잇이었다.
태경씨는 항상
"사랑하는 딸, 아들 -이라고 시작해서 오늘은 어떤 메뉴를 만들어 놓았어."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면 엄마가 빨리 돌아올게" 등의 쪽지였다.
실은 이 쪽지들을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모아놓았기에 지금도 태경씨 집에 있는 편지함 속에 다 남아있다. 그녀는 훗날 내가 이 쪽지들 기억나?라고 보여줬을 때 이걸 다 들고 있었냐며 놀래기도 했다.
(이 얘기를 읽고 있노라면, 누군가 내게 가족 3명이서 어렵게 지냈나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아빠는 항상 한 공간에 있으며 저녁엔 우리 남매 곁에 계셨다 ㅋㅋㅋㅋㅋ 마치 한 공간에 있는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이랄까!) 그리고 여느 날이면 내 책상 위에 한 통의 편지들이 올라왔는데. 예쁜 편지봉투 안에 담겨 있는 편지가 아닌 공책 한 장을 북 - 찢어 적은 편지였다. 여전히 "사랑하는 우리 딸"로 시작되는 그녀의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딸아, 오늘도 엄마는 퇴근 후 곤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보았어.
요즘 새로운 수학 학원을 다녀서 많이 힘들지? 엄마가 너의 문제집을 보는데 빨간 비가 내리는 부분이 많더라.(ㅋㅋㅋ) 다른 아이들보다 뒤늦게 시작해서 힘들겠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언제나 우리 딸을 응원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주변 이들로부터 듣는 얘기가 있다.
"재이님은 표현을 잘해요, 상대에게 말했을 때 기분 좋은 표현은 하면 할수록 좋잖아요. 알지만 그게 내 입에서 선뜻 나오지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재이님은 표현을 잘하잖아요. 그게 정말 장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제게 말해주시는 당신도 이미 표현을 잘해주시는 분인걸요라고 답했다.)
사랑이 많고 표현을 잘하는 것이 엄마로부터 배운 것들이란 걸 안다. 무뚝뚝한 경상도 츤데레 아빠 밑에 자라면서 가끔 억압받는 느낌도 들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태경씨가 곁에 있어 주었기에 우리 남매는 더 잘 자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항상 태경씨에게 고맙다. 여전히 가끔 티격태격하고 그녀가 이해 안 되고 미울 때도 있는 애증의 관계라지만, 나라는 사람이 존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태경씨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있어 참 행복한 삶이다.
사랑의 감정은 전파된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무궁무진한 많은 사랑을 서로에게 줄 것이다.
태경씨, 욱이씨, 민석씨 뿐만아니라 내가 애정하는 많은 이들에게 주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나의 짝지와 자녀에게까지 온전히 주고 싶다. 나는 오늘도 태경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