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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베러 Oct 28. 2024

독서모임 호스트가 된 치과위생사

독립서점 지기를 꿈꾸는 7년 차 치과위생사 이야기 2탄


독서모임 멤버들과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얘기하게 된다.

삶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직업이지 않는가. 개인적으론 직업 얘기를 제외하고 각자의 삶만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만 주말반 독서모임에선 직업과 관련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멤버들 대부분이 전문 직업군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유독 직업을 관련 시킨 질문들이 많이 오간다.



"그럴 때마다 저는 보건계열 종사자이고요. 치과위생사예요. 현재는 N 연차 치과위생사인데요"

라고 얘기를 한다. 



처음 보는 멤버들 중 일부는 인문학과는 전혀 관련 없는 학과를 전공하고 일하고 있는 내가, 독서모임 호스트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고 이색적이다는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대학생 때도 교양으로 광고홍보학과 수업을 듣는 유일한 의료보건 단과대 학생이었다.

심지어 당시 교양 수업 교수님께서도 어떻게 치위생학과에서 이 수업을 들으러 왔냐며 출석부를 부를 때 수많은 학생들 중 나를 콕 집어 물어보시곤 했다. 해당 수업에서 나는 인문사회과학 대학의 학생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A+를 받은 학생이었다.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하지만 내 안에선 항상 인문학과 관련된 공부에 대한 갈망이 존재했던 것이다.



치과위생사라는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한참 새로운 일들을 배운다고 정신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쳐내기 바빴다. 틈틈이 책을 읽으며 나만의 힐링 시간을 가지기도 했지만 내게 주어진 일 말고도 막내로서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았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시간이 흘러 4년 차쯤이 되었을까 직업의 기술적인 부분은 많이 익힌 상태였다. 하지만 늘 아쉬움과 갈망이 느껴졌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환경이었다. 학교에선 치과의사와 함께 하는 협력자이자 예방 교육자라며 자부심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우리를 배출시켰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임상에서는 수직관계가 너무나 명확했고 어시스트의 역할이 가장 주 업무가 되는 수동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물며 대학교 시절 느꼈던 것처럼 여초 학과 특유의 공기는 공간만 달라졌을 뿐 치과 내부에선 더 온전했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사색하는 걸 즐기는 비주류의 사람이라서 그랬을까. 직장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대화라기보다는 수다에 가까운 말들만 공간을 메웠다.

그때부터 조금씩 내가 있는 환경을 넘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양질의 매개체가 필요했다. 



바로 책, 쉬는 날이 주어지면 하루 종일 좋아하는 카페에 틀어박혀 읽고 읽는 책.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소중한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검색창에다 지역 독서모임을 검색했다. 그런데 독서모임의 수가 적기도 했고 당시 나의 근무 시간과도 맞지 않았다. 아쉬움으로만 남을 것인가 내가 만들 것인가에, 당연 후자를 택했던 나는. 그렇게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이미 대학교 시절 고등학교 친구들 두 명을 모아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는 호스트로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다"라고 미국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취지로 한 권의 책을 선정해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조금 더 깊은 우리들의 생각들이 오고 갈 수 있다는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코로나 상황이었고 4명의 인원수 제안이 있었던 시기였다. 독서모임 멤버를 모집한다고 글을 올린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4명의 멤버들이 다 구해졌다. 모두가 직장인이라는 점, 나를 제외하고선 독서모임이 처음이라는 점을 참작해 비교적 가벼우면서 현실적인 소설책을 첫 독서모임 책으로 정했다. 그 만남을 기점으로 2주에 한 번꼴로 멤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고, 1기 멤버들과 1년을 함께했다. 첫 시작을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돌이켜보면 큰 복이었다.

각기 다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삭막한 나의 직장 생활에 있어, 진부하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인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독서모임을 2번째 정도 진행하였을 때 나는 우리 독서모임의 이름과 컨셉을 정했다. 

한가람 독서모임 : 한가람은 물이 풍족하게 흐르는 큰 강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 평소 푸르고 잔잔한 물결이 흐르는 강을 좋아하는 나는 우리 멤버들이 읽는 책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물이 풍족하게 흐르듯, 우리의 생각들이 유연한 물결처럼 흐르고 서로 섞이기를 바랐다. 그리곤 모토도 함께 정했다.

「유연한 사고를 통해 당신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요」 이 마음 하나를 가지며 독서모임을 이끌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의 흐름 또한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인 현재, 나는 3년 동안 한가람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을 주축으로 주말반, 평일반 정규 독서모임 2개, 고전반 (한 작가를 디깅해서 그 작가의 시대별 작품을 같이 읽어보는 독서모임, 올해는 헤르만 헤세 편), 그 외에도 온라인으로 치과위생사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여전히 함께 하거나 스쳐 지나간 멤버들이 족히 서른 명이 가까이가 되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내 공간에서 나의 사람들과 책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다 되도록 꾸준히 챙겨 먹는 약이 없지만 유일하게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루테인, 눈이 건강해야 많은 책들을 계속 읽을 수 있으니깐. 이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내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나의 사람들과 인문학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이다. 그럼 그냥 공간을 빌리지 왜라고 생각을 할 테지만, 언젠가부터 멤버들이 내게 종종 개인적으로 말을 하거나 연락이 와서 해주는 말들이 있었다.


"재이님과 함께 독서모임 하면서 호스트가 독서모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재이님이 편안한 분위기로 잘 이끌어주셔서 말을 선뜻 잘 못하는 저도 부담 없이 함께 할 수 있었어요.", "이 모임에 대한 믿음이 있다, 실은 리더인 재이님이 대한 믿음이겠죠", "재이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재이님의 밝은 기운에 감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등


멤버들은 나라는 리더에게 진심 어린 말들을 많이 해줬고 해당 얘기들을 들을 때면 내가 책과 사람들을 대하는 그 진정성이 그들에게 가닿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고 고마웠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은 모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와서 서로 이야기 나누고 성장할 수 있는 독립서점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호스트의 취향과 지향성을 담뿍 담은 독립서점, 특례시임에도 여전히 문화 불모지라고 불리는 이 지역 사회에서 인문학적인 공부를 하며 서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독립서점이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현실적 낭만주의자답게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독립서점에서 사람들과 공부하는 사람.

이를 실현 시키려고 발버둥 중인 스물아홉 살의 미혼 여성의 꿈이 시작 되었다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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