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스포주의
한 달 전 지인분께 한강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선물 받았다. 조금씩 읽다가 감정이 동요되어 힘들어질 때면 독서를 멈추곤 했더니 한 달 내내 책의 오분의 일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연말에 책을 선물해 주신 분과 만나 ’독서의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지만 의지가 부족하다‘라고 토로했다가 함께 일주일에 한 권씩은 책을 읽어보자고 다짐하며 헤어졌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이튿날부터 <소년이 온다>를 일주일 간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책이 얇아 놀랐고, 역설적이게 아름다운 문장들에 또 한 번 놀랐다.
첫 장 <어린 새>는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의 총에 맞아 사망한 친구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중학생 동호가 상무관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호는 그곳에서 은숙누나, 진수형, 선주누나와 함께 시신을 가족들에게 찾아주는 일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다음 장에 차례로 이어져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어린 새>에서는 친구 정대의 시신을 찾는 동호를 2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며 서술하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동호가 된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소설 속 현장으로 독자를 이끌어 준다.
내가 가장 힘들게 읽은 부분은 정대의 혼이 말하고 있는 2장 <검은 숨>이었다. 시신들이 열십자로 매일매일 쌓이며 썩어가는 중에 정대의 혼은 다른 혼들과도 대화할 수 없는 채, 겨우 서로의 존재만을 감지하며 그곳에 붙어있었다. 그러다가 군인들이 시신들에 불을 지르면서 정대의 혼은 자유로워졌고 정대는 동호에게 가려던 중 폭약 소리, 비명 소리와 함께 정대는 아무 곳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동호가 군인들의 총에 맞은 순간 정대의 혼은 목적을 잃고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정대와 정미누나와 동호. 그 어린 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사후세계의 모습일지라도 시신조차 남지 않은 이들을 우리는 이렇게라도 기억해야 한다.
4장 <쇠와 피>는 동호와 상무관에서 함께 했던 대학생 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심리부검을 통해 진수와 함께 감옥생활을 하며 한조가 되어 밥을 먹었던 남자의 인터뷰로 전개된다. 진수는 군부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하고 나서 이듬해 석방되었지만 몇 년 후 자살을 했다. 남자는 마지막 장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작가가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인간의 잔혹함에 본인조차 인간이라는 것이 역겹기까지 하며, 결국 죽음을 통해야만 그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은 살아남은 자의 처절한 비명 속에 계속된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선주는 기록 보존을 위한 논문에 증언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결국 응하지 않는다. 수십 년을 그 기억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트라우마를 누가 감히 치유해 주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보상받을 수 없는 그 시간들은 오로지 개인이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하는 몫인 걸까.
6장 <꽃 핀 쪽으로>는 중학생 아들을 잃은 동호 엄마의 독백이다. 이 부분은 내가 감히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없어 감상평을 적지 못하겠다. 집에서 책을 읽으며 꺼이꺼이 울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간결한 문장들이 하나하나 가슴에 꽂혀 오랫동안 남았다. 도서관이었으면 큰일 났을 뻔했다며 안도를 하며 읽었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중에서
인간 본성의 악을 보여주는 사건 속에서도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모두가 함께 꽃 핀 쪽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악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을 항상 기억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스스로 그러지 못함을 반성하며 책장을 덮었다.
중학생 이후로 독후감을 적는 것이 처음이지만 이 책을 계기로 나는 문학의 위대함을 정말 오랜만에 맛보았고 갑자기 독서에 빠져들어 1일 1독을 목표로 책을 읽고 있다. 1일 1독을 하며 1독후감을 쓰는 것은 그저 목표로만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어제도 오늘도 책 한 권씩 읽으며 만족스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한강 작가의 위대함을 글로 어떻게 칭송해야 할지 모르겠어 수준 낮은 독후감을 썼지만 쓰다 보면 점점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