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이 집이 된 세상이니
집에 틀어박혀
하늘 아닌 천장 보다,
문득 나의 집은 어디였나
시시각각 변하는 창문 너머
세상 속
덜컹임으로 말 걸어주는
버스라 불리우던 여기였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속
기억에도 없는
좁은 공간 화목한 세가족의
차라 불리우던 여기였나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디었나
정처 없이 떠돌다
지쳐 멈춰 서는 순간
따스한 햇살이 닿는
공간 밖
길이라 불리우던 거기가
집이었나
보통 낙이라고 하죠
편하고 행복하고 정말 쉬는 느낌이 나는 무언가와 그걸 하는 시간을 우리는 낙이라고 하죠.
그리고 우리는 그 낙을 쫓죠
하루의 시작이든 끝이든 중간이든
짧은 시간의 형태로든 취미의 형태로든
음주나 다른 행도의 형태로든.
어쩌면 우리가 거주하는 집보다도
그 순간, 시간 공간을 사랑하죠.
어쩌면, 가족보다
거기서 만난 사람과
더 깊은 연결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걸 잊고
할 것을 잃은 사람들은
집에만 처박혀 있음에도
불안과 아픔에 방황하곤 하죠.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저희에게 편안한 안식 안전 안정을 주는 존재로 지어진 건 집인데.
우리는 대부분 낙을 쫓고,
낙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집에만 있으면 그것이 방황이 되고.
원래라면 저녁에 함께 먹을 밥상에서의 대화,
한 침대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빠져들 잠,
분주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응원을 건네는 아침 등, 우리는 집에서 가족과 느껴야 할 유대감 없이, 모르는 사람과 유대감을 쌓죠.
그들은 가족이 아니라
떠난다면 언제나 떠날 수 있는 사람들임에도요.
물론 이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의 집은 가족들과의 공간이 아닌
낙이 되어버렸다는 건.
낙을 잃는다면
거기에 무너져 일상을 잊는다면
방황 속에 철저히 고립되죠.
특히 아직 낙이 집이 되고,
가족이 희미해진 걸 인정하지 못했다면
더욱 깊이 빠져버리죠.
그렇게 내 집은 어디었나하며
헤매고
그 안에서 내 집은 없구나하고
절망하다
그렇게 결국 지쳐 쓰러지죠.
나 또한 아주 오래 그런 방황 속에 살았으니까
그 과정을 너무나 잘 알아요.
그리고, 아직 헤매는 중이어도
아주 오랜 시간 그 속에서 헤매어서 답도 알아요.
아직 집이 왜 집의 역할을 하지 않나,
어째서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나만 보지 말고
낙이 집이라는 걸 떠올린다면 당신도 알아요.
낙원이라는 쉼터는 멀지만
낙이라는 쉼은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정처 없이 떠돌다 지친 나에게 닿는 따스한 햇빛들도 낙이라면 집이 될 수 있으니
우리 이제는 잘 알고 있으니
모든 걸 낙이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