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갈래
코비드 코모리: COVID-19와 히키코모리를 합친 합성어로,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반 강제적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집에 갈래
시카고에 도착한 지 이틀이 되었다. 걱정한 만큼 춥지는 않았지만, 묵직한 바람을 몇 차례 맞다 보니 아 진짜 돌아오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전과 달리 조금 더 조용해진 도시. 하지만 여전한 회색 빌딩 천지. 여기는 시카고 다운타운이다.
첫날은 아파트 직원 실수로 내 방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다른 층에 있는 빈 집에서 잠을 청해야만 했다. 담당 에이전트는 미안하다며 하룻밤이지만 제일 좋은 집을 내어주었는데, 혼자 있기에 지나치게 넓은 그 집은 되려 두고 온 남편을 떠올리게 해 울적한 마음이 들게 만들기 딱 좋았다. 탁 트인 뷰와 아늑한 침실, 여럿이 함께 저녁시간을 즐기기에 손색없는 주방. 누가 봐도 가족이 살기에 적당한 집. ‘나도 집에 가고 싶다.’
돌이켜 보면 과거에도 다운타운 내에 살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문제들은 계속 겪어왔던 것 같다. 소매치기를 당한다던지, 투숙 중이던 호스텔의 내 짐들을 직원들이 맘대로 다른 방에 옮겨두어 찾아다니게 만든다던지 등등…. 비행이 순조롭기에 웬일인가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자마자 문제가 잦다. 오늘은 카드를 도용당해 사용 중지를 당했으니 말이다. (나한테 왜 그러는데)
오랜 기간 숨어 웅크리고 지내던 나는 여느 때 보다 가장 유약한 마음 상태로 이곳에 다시 입성했다. 자극과 동떨어진 생활은 심신을 안정시키기엔 좋았으나, 다시 삶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만큼 다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지속될 때는 몰랐던 고충이었지만, 멈추었다 다시 시작하려니 그것이 꽤 골치 아픈 어려움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 원래 조용할 날 없고, 안 겪어도 되는 일을 굳이 겪어 고생하는 게 나였지. 집을 계약했지만 집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거나 카드 도용당한 정도는 귀여운 일이잖아. 괜찮아 좀 피곤할 뿐이야.
그 사이 나이를 한 두 살 더 먹어서인지, 아님 너무 오랜 시간을 청정지역에서 얌전히 지내서인지. 홀로 감내해야 할 타지 생활의 첫 시작이 순탄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은근한 불안이 내심 부담스럽고 피하고만 싶다. 사건 사고가 아닌,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 그래, 지금의 난 그런 것을 원한다. 원래는 혼자서도 잘 견뎠던 시간들이지만, 결혼 후 남편이 생기면서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부분을 짝꿍에게 의지했었나 보다. 똑같은 일을 겪더라도 같이 있었더라면 좀 더 별 일 아니게 느껴질 텐데. 빈 옆자리가 괜히 야속하다.
전기도 인터넷도 다 설치하고, 청소도 빨래도 어느 정도 끝냈다. 당장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먹을거리도 구비해 두었고, 곳곳에 내 흔적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수업 시작까지는 한 주가 남았고,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한국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마저 해야 한다. 적응해야지. 적응을 해야 뭐든 하겠지.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다. 코모리도 혼자 보다는 둘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