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합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건지 모르겠다. 처음 코모리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비행기 안에 앉아있다.
예전과 달리 한산한 공항에서 남편과 단둘이 긴 작별과 아쉬움의 시간을 보낸 뒤 출국장에 들어섰다. 이질적일 만큼 적막하고 조용한 분위기. 떠난다는 느낌보다는 격리의 터널이 조금 더 길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단지 기분 탓일까. 남편은 오랜만에 긴 휴가를 내었는데, 그 휴가의 끝이 작별이란 사실에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두던 나도, 마지막 10분을 남겨두고서는 눈물이 터져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지난 2년간 틈만 나면 어디로든 나가고 싶다며 투정을 부려왔지만, 정작 너무 멀리 (혼자) 나가게 되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직항 티켓을 구하기가 어려워 2시간 남짓의 짧은 경유 일정을 가진 비행기를 예약해야만 했다. 오랜만에 돌아가는 미국이라 어색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 와중에 환승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간이 모자랄까 봐 추가 요금을 내고 빨리 내리기 좋은 좌석을 잡았는데, 제설 작업을 한다며 출발 예정시간보다 30분이 지나고 있다. 벌써부터 마스크와 두툼한 터틀넥 스웨터가 갑갑하게 느껴진다. 나 제대로 도착할 수 있을까.
항공편이 많이 줄어들었고, 승객들도 많지가 않다. 비행기 안에 자리를 피고 눕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간다. 다행히 나도 앞 뒤 옆 자리가 모두 다 비어 이리저리 몸을 구겨 조금이나마 편한 자세를 취해보려 노력 중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허리가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오랜만에 바라보는 비행 중 창 밖 풍경이 그나마 피로를 잊게 해 준다. 나 정말로 돌아가는 중이구나.
집에 대한 애착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원래도 이곳 저곳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고, 떠돌아 다니는 만큼 '내 것'에 대해 크게 마음을 두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살아 왔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허나 긴 격리기간, 또 그 속에서의 결혼생활을 하고난 이후로는 무언가 좀 바뀐 느낌이다.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던 칩거 생활인데, 아득한 바다 위를 나는 중에도 반복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집에 가고싶어." 였다. 완벽한 집순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안정감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 더 그렇다. 막연한 희망사항 같던 그것을, 어쩌면 군 마을에서의 코모리 생활동안 잠시 맛보았던 것일 수도 있다. 갇혀있는 것 자체로는 기쁘지 않았으나, 신뢰하는 이와의 아늑하고 보장된 시간이 가져다 주는 안정감은 꽤 많은 위로를 동반하고 있었다. 아마도 난 그 안정감이 주는 맛을 알아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말일지도.
점점 더 집에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도착할 그 곳에도 거주할 곳은 마련되어 있지만, '집'이라고 느껴지긴 힘들겠지. 1년의 학업이 남았고, 그 사이에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처음 그 곳을 떠날 때에도, 코로나니 락 다운이니 그런 걸 예상하고 맞닥뜨린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난 다시 그 곳에 돌아가고 있다.
원래도 혼자 떠나갔던 곳이었으나, 이번에 혼자가는 길은 어딘가 좀 더 어색하고 무언가를 빠뜨린 느낌이 든다. 마음은 준비가 덜 된 것 같지만, 이미 떠난 비행기는 내 마음은 상관없이 곧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아마 그 곳에서의 삶도, 시간도, 별 일 아니라는 듯 정처없이 흐르겠지.
비행은 순조롭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의 또 다른 코모리 생활을 하러 가는 중이다.
그리운 것이 많아지는 여행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