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과 모스크와 첨탑으로 둘러싸인 궁전, 그리고 그속의 알 수 없는 나
사실 예전에 내가 친구와 함께 대학교에 합격한 기념으로 미국에 10일 정도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여행지에서 MOMA 미술관도 갔었다. 나는 영어 쪽으로 전공을 정했었고, 내 친구는 미술 쪽으로 전공을 정했었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합격을 축하하자는 의미로 예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관심이 있었던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뉴욕과 보스턴, 매사추세츠, 워싱턴 D.C. 등 유명한 주(도시)에 놀러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의 계획에서 타임스퀘어 근처를 걷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은 일정 초반부에 있었다. 큰 전광판에 메인 캐릭터라고 해도 좋을 만한 지니와 알라딘, 자스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니는 전광판에서 손을 뻗은 채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옆에는 자스민 공주와 알라딘이 있었다. 그리고 위에는 Step into a whole new world라고 적힌 글귀가 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짧은 스커트에 목폴라, 그리고 무스탕을 걸쳤었다. 내 친구는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Love”라고 적힌 목걸이를 하고, 나와 비슷하게 목폴라와 무스탕을 걸쳤다. 나는 흰색 목폴라를, 친구는 검정색 목폴라를 입었다. 무스탕은 나는 갈색, 친구는 밤색이었다. 신발은 나는 워커였고, 친구는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우리는 브로드웨이 티켓을 들고 유난히 추운 그날 밤을 정처 없이 배회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영하 4~5도 정도였다.
그래도 길거리에는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우리는 그런 상점에 들어가서 30분 정도 남은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상점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기념품들을 구경했다. 미국을 상징하는 컵과 자유의 여신상 모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리는 뉴욕을 상징하는 티셔츠를 하나 샀다. “I NY”라고 적혀 있는 귀여운 티셔츠였다. 점원에게 티셔츠를 가져다주고 현금으로 계산했다. 교과서와 문헌으로만 접하던 영어를 실제로 듣는 경험은 정말 흥미로웠다.
친구는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말했다.
“시간 벌써 다 됐어, 빨리 가자!”
그때는 오후 9시였다. 극장은 총 2시간 정도 진행됐다. 들어가자마자 빨간색에 금색 자수가 놓여 있는, 마치 양탄자 같은 무대 막이 올라갔다. 배우들이 등장했고,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역시 파워풀한 배우들의 목소리와 톤이 인상 깊었다. 지니를 연기하는 배우는 정말 연기를 잘했다. 또 Arabian Night로 시작하는 초반의 노래는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해서 나에게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안겨주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설에는 없는 영화 특유의 부분을 좋아한다. 원래 아라비안 나이트의 알라딘은 영화와 내용이 꽤 다르다. 원작과 영화에 차이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슬픔을 가져다주는 느낌이 강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영화에서는 지니가 단순히 알라딘의 종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친구’라고 한다. You never have a friend like me라는 가사만 봐도 그렇다. 사실 원작 소설에서 알라딘은 지니와 친구가 된다기보다는, 지니를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만 생각한다.
뮤지컬이 점점 고조되면서 나는 기분이 격양됐다. 이상하게도 몸이 심하게 떨렸고 가슴이 답답했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순식간에 재미있게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흘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그냥 잡힌 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때 나는 꽤 깊은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친구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나 보다. 나는 호흡을 고르게 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날 나는 꽤 이상하고도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 한복판에 있었다. 그곳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사진 속에서 본 것처럼 선인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새로운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온통 모래뿐인 사막이었다. 바람이 불면 모래가 위로 날렸다. 나는 앞으로 걸어갔다. 모래 위에 내 발자국이 찍혔다. 나는 고독한 사막을 홀로 걸었다. 바람은 차갑게 불었다.
노을이 지면서 사막이 붉게 물들었다. 아름답지만 오직 나 혼자만 존재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내가 걸어온 발자국뿐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빵 조각도 없으니, 바람이 불면 발자국은 사라져버렸다. 동서남북 구분도 없는 사막을 나는 무작정 걸었다. 꿈속에서 나는 낮에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짧은 미니스커트에 워커. 그런데 신발을 신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신발을 신는 것이 옳지 않은 행동처럼 느껴졌다. 나는 워커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모래를 걸었다. 모래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이게 꿈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한참을 걷다 다리가 저려 주저앉았다.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였다. 물을 마시기 위해 다가갔다. 양손을 포개어 물을 마셨다. 세 모금쯤 마시고 다리를 뻗으며 쉬었다. 그런데 오아시스가 일렁였다. 이대로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 줄까, 은도끼 줄까?” 하고 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산신령 대신 요술램프가 물 위에 떠올랐다. 나는 램프를 잡아 세 번 문질렀다. 당연히 지니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나온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지금의 나, 짧은 미니스커트에 맨발인 나였다.
또 다른 나는 나에게 말했다.
“있잖아, 무언가 빌고 싶은 소원이 있어?”
나는 빌고 싶은 소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다른 나는 계속 나를 부추긴다.
“너, 이거 갖고 싶어하지 않았어?”
무표정인 내 얼굴을 바라보며 또 다른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따라와 봐. 깜짝 놀랄 광경을 보여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또 다른 나는 내 오른팔을 꽉 움켜잡고 앞으로 걸어간다. 왜인지 나보다 훨씬 더 악력이 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손에 손자국이 날 정도로 센 악력이다.
왜 이렇게 세게 잡는 걸까? 나는 이 손 놓으라고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왜인지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나는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고, 배에서부터 소리를 내보려고 애썼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너무나 신나 보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는 ‘진짜 나’의 손을 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나는 그냥 끌려가고 있을 뿐, 어디로 갈지는 여기에서 이 생각을 하고 있는 ‘나’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마치 해적이 보물을 찾아 바다를 항해하고 또 다른 배들을 약탈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로 무기를 들고 실제 피가 흐르는 과격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는 무언가 폭력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나에게 조금 화가 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 때문일까?
그녀는 한참을 걷더니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 평지로 치자면 거의 1000평 남짓한 곳에 서서 내가 소원을 빌지도 않았는데 궁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순간에 궁전이 완성되었고, 그 궁전은 마치 『알라딘』에 나오는 궁전과도 매우 닮았다. 모스크와 돔, 그리고 저녁 노을이 그을려져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본 알라딘의 궁전은 아랍과 인도의 건축물을 합쳐놓은, 타지마할을 닮은 종류의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색이 다양했다. 타지마할이 온통 하얀색 건축물이라면, 또 다른 내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은 건물은 색이 좀 더 다양했고,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동화에 나올 법한 건축물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롤리팝처럼, 색 두 개가 서로 트위스트된 돔과, 열쇠 구멍 모양을 크게 안으로 들여놓은 듯한 문, 그리고 바닥도 아랍의 전통 무늬인 아라베스크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피곤한 나머지 아마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궁전에 대자로 뻗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는 이제 곧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있다. 달은 무언가 내가 알던 달과 조금 다른 모양과 색이다. 원래 달은 노르스름한 빛이지만 지금 이곳에 뜨고 있는 달은 푸른 달이다. 너무 파랗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연한 푸른빛도 아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페인트를 칠한 것 같은 느낌이라기보다는 연한 물감을 물에 많이 타서 섞은 듯한, 창백한 색감의 달이다.
나는 아라베스크 무늬의 대리석에 대자로 뻗어 달을 올려다본다. 어쩐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저기 있는 또 다른 나는 갑자기 대리석 바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도대체 저런 건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또 다른 나는 작은 주머니에 요술램프를 넣어두고 있다. 아마 저게 없으면 소원도 빌지 못하는 걸까 하고 생각한다.
강 건너 불구경 삼아 또 다른 나는 나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그 제안은 바로 이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