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떠나가는 너와 고독한 나
너는 정말 좋은 친구고, 내가 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도 그것을 모두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내 스스로 그게 너무 무섭게 느껴져서, 너에게 말하지 못했던 거야. 나도 마음 같아서는 너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었어. 우리는 소중한 걸 공유한 사이니까 말이야. 처음 고등학교 때 널 보았을 때, 그리고 너와 함께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구원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지금까지는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만 사람들과 해왔으니까 말이야.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타인과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따분하고 재미없는 건가?’라는 생각이었어.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은 너와 이야기하면서는 모두 다 사라진 것처럼 바뀌었어. 내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들, 그런 것들을 너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세상에는 나 말고도 예술에 관심이 있고, 창의력이 넘치는 작품에 흥미를 느끼며, 심지어 그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 전부 다 자신의 커리어나 돈과 관련된 일밖에는 생각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나의 부모님도 그랬어.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고 하셨지. 나를 위해서 하신 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그때는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만 해야 하는 그러한 삶 말이야.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건 아마 어렸을 적부터 이런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 난 항상 같이 있으면서도 더 빈 느낌이 들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했을 때의 비참한 기분을 느끼면서 살아야 했지. 그리고 나는 그런 삶의 방식에 익숙해졌고, 그런 방식이 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어. 이 이상도 이하도 없는 삶처럼. 하지만 그런 불안한 상황에서 너라는 사람을 만났고, 너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난 정말로 너에게 구원받은 것처럼 느껴졌어. 너는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난 너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너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해. 하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거야.
말도 없이 떠나서 미안해. 사실 언제 돌아올지는 잘 모르겠어. 나는 미국으로 갈 거야. 너와 함께 보냈던 추운 겨울밤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주었어. 나는 그러한 추억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아. 그곳에서 너와 함께 이야기했던 이 세계의 구조와 그 안에 살아가는 예속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정말로 흥미롭게 만들었어. 난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속박되어 있던 과거의 시절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잘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너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 항상 고마웠고, 만약에 돌아오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만약 내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너에게 순수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할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 거야.
그 편지를 보내고 난 뒤, 친구는 정말로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친구를 떠나보낸 채 계속해서 살아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친구를 보내고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처음에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친구가 저 편지를 보냈을 때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로 충격이었던 건, 친구가 저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옆에 있으면서도 친구의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가 독심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꿰뚫어볼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되니 내 마음이 다 아팠다. 만약 친구가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해줬다면, 아마도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비극적인 건 아니었다. 친구는 자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더 개선하기 위해 미국으로 직접 떠났고, 지금까지 배워온 미술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싶다고 나에게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 이후로는 친구에게서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딱히 연락이 오지도 않았다. 나는 초반에 친구가 떠난 뒤 직접 연락을 해봤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고, 심지어 내 메시지를 읽지도 않았다. 아마도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미국에 가기 전에도 친구는 자신의 그림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친구는 굉장히 상상력이 풍부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었고 스스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걸 좋아했다. 친구는 고흐와 뭉크 같은 화가들을 좋아했지만, 애니메이션풍 그림을 그리는 것도 선호했다. 입체적인 얼굴을 묘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친구가 그림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친구는 내 초상화를 많이 그려주기도 했고, 내 표정을 묘사하거나 유명한 명화를 오마주한 작품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인상 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