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너의 고백과 너의 편지
나와 내 친구는 비슷한 보폭으로 걷는다. 사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조금 다른 점이 많았었다. 하지만 우린 비슷한 걸 좋아했다. 그 관심사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둘 다 문학 작품이라던가, 미술 작품이라던가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었다. 우리는 같이 프란츠 카프카에 관해 이야기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둘 다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친구는 미술에 관심이 있었고, 그 미술을 제대로 배워보고픈 욕심이 있었다. 친구가 당시 가장 좋아하던 미술가는 에드바르 뭉크,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고흐와 키스 해링. 친구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한 이유를 이 미술가들 때문이라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그 당시,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고흐의 그림을 정말로 좋아해. 왜냐면 사실 그는 어렸을 때 매우 어려운 생애를 보냈거든. 사실 고흐가 살아있을 때, 고흐의 그림은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그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어. 그게 바로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이유야. 또 그의 그림의 화풍과 스타일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는 마치 만족한 듯이 밝게 웃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 그리고 여전히 손도 잡고 있다. 하지만 너는 도대체 어떤 길을 보고 있는 걸까. 길가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우리는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다. 주머니 속의 친구의 손. 우리는 말없이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무언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꼼지락거리며 움직인다. 난 친구의 눈을 바라본다. 친구도 곧 눈을 바라본다. 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때 이후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거의 5년 동안. 그날 집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었다. 아까 전에 나눈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정적 속의 일들에 대해, 분명 무언가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내가 잡을 수 없는 곳까지, 이미 너무 멀리 펼쳐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느끼며,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너’를 보았다. 우리는 꿈속에서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낄낄대고, 시답잖은 농담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갑자기 손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손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이상함을 느낀 나는 친구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친구는 그곳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남은 건 내 손에 남은 온기뿐. 이제 그 온기도 점점 희미해져 간다.
20xx. 12. 27일, 눈이 내리는 날.
있잖아, 난 예전부터 꼭 생각해왔어. 그게 어떤 생각이냐 하면, 내 자신을 누군가에게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야.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정말로 나와 함께 있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곤 돼. 그러니까, 대강 이런 거야. 어떠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게 될 때, 스스로 계속 이렇게 생각하게 돼. 나는 그 이야기에 참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대한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지. 그런데 정말로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한동안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많이 말하고 있는데도 전혀 말하고 있지 않은 기분이 든다는 건, 내가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 진정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기분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내 마음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게 너무 어려워. 어떤 식으로 내 마음을 밖으로 꺼내야 하는 걸까. 내 마음속에 담겨져 있는 무언가는 실제적인 말로써 밖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 어디 한가운데 눌려진 채로 계속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러니까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야.
계속 그렇게 느껴왔어. 그래서 나는 그런 어려운 방법을 택하는 대신에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택했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좋아해줬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이야기해 주면서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지.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분이 나름 좋았던 것 같아. 하지만 그게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진짜 나는 어디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너무너무 많이 들었어. 그러니까 이런 거야.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때,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가벼운 것처럼 이야기해. 나는 그게 적응이 되질 않아. 예를 들어서 오늘 회사에서 일이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해. 근데 그들은 그것을 너무나도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지. 실제로는 가볍지 않은 감정이지만 가볍게 말하는 것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말하기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그게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해.
누군가와 옆에서 걸을 때도,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응어리진 것은 전혀 풀리지 않았어. 나는 그것을 어떻게 푸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것 같아. 만약 그것을 알았다면,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방법을 제대로 알 수 없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왜 그것을 알 수 없는지, 그런 것과 관련돼서 말이야. 그래서 나는 보다 더 편리한 방법을 찾았어. 나는 내 감정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돌려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갔어.
예를 들어서 오늘도 카페에서 이야기한 것 중에 나비 이야기가 있었잖아. 우리가 그 카페에 들어갔을 때 이상하게도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지. 나는 그런 카페는 정말로 처음 봤어. 아마도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점원의 취미인 것 같아. 어찌되었든 나는 그 나비를 보자마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어. ‘나도 저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라고. 사실 실제적으로 따지면 나비는 자유롭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왠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어. 두 개의 팔랑거리는 날개, 그리고 양쪽에 달려 있는 작은 날개들. 총 네 개의 날개로 나비는 유연하게 날아다니지.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 발달시킨 얇고 섬세한 날개로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고, 저속 저고도 비행을 하기도 하지. 때로는 높은 곳에 날아다니기도 하고, 꽃에서 꿀을 빨아먹기도 해.
나는 왜인지 그런 나비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어. 물론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걸지도 모르지. 인간보다 동물은 생존이라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테니까 말이야. 물론 그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나비가 너무도 부러웠어.
내가 얘기하는 거 잘했잖아. 돌려서 이야기한다고, 잘한다고 말했잖아. 나는 돌려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택했어. 나는 왜인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지거든. 그래서 내가 너에게 그렇게 얘기한 거야. 나비의 영혼, 저승과 이승의 이야기, 그리고 나비의 진화 메커니즘에 대해서. 나는 나비처럼 어딘가 계속 떠나고 싶었어. 왜냐면 나는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거든. 내가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도 내 감정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어.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이 반응하는 것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어. 그 반응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것을 맞닥뜨리는 건 생각하는 것과는 정말로 다르다고 느껴졌어.